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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파업과 사회복지 공공성

입력
2020.09.23 20: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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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개입 반감, 의사 파업으로 드러나
민간 위주 사회복지 취약점 보완 시급
공공성 강화정책 뚝심 있게 추진돼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의료계 집단휴진 사태가 마무리되면서 진료 현장이 정상화 되고 있는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뉴시스

의료계 집단휴진 사태가 마무리되면서 진료 현장이 정상화 되고 있는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뉴시스


의대 정원 확대를 골자로 한 정부의 의료 정책에 반발해 이달 초까지 의사들이 3주 가까이 벌인 집단휴진의 파괴력은 컸다. 가까스로 사태는 봉합됐지만 이는 한국 사회에 여러 질문을 던졌다. 코로나19 재유행이 시작된 상황이라 여론의 역풍은 불 보듯 했지만 전공의의 80~90%가 휴진에 참여했고 의대생 90% 가까이가 국가시험을 보이콧했다. 의대 정원 확대에 대체로 우호적인 일반인들과는 확연히 다른 의사들의 집단사고를 우리 사회가 수용 가능한지는 이번 사태가 던진 질문 중 하나다.

아프면 누구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권리가 보장돼야 하기에 많은 나라에서 의료 서비스는 상품이 아닌 공공 서비스로 간주된다. 그런데 이런 통념과 달리 많은 의사들은 "의사가 되는데 정부가 한 푼 도와준 것도 없이 아쉬울 때만 공공재로 취급한다"는 식의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물론 이유는 있다. 전체 병상의 70% 이상이 공공병원에 있는 유럽 선진국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병원을 짓는 건 모두 민간의 몫(공공병원 비중 5.7%, 공공병상 비중 10%, 2018년)이다. 의대 학비도 개인이 전부 부담한다. 여기에 건강보험제도 때문에 마음대로 비용을 받을 수 없다는 불만이 더해진다.

의료라는 전문가 영역에 국가가 개입해선 안 된다는 ‘의료 자유주의(medical liberalism)’ 이념이 의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걸로 해석할 수 있다. 역대 정부는 모두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등 국민들의 보편적 의료 서비스 접근도를 높이는 공공성 높은 의료 정책을 추진했지만 이걸 ‘의료 사회주의’니 '관치 의료'니 하며 몰아붙이고 있는 집단이 의사 사회에서 득세하는 현실도 이렇게 설명이 된다.

문제는 이와 같은 필수적인 복지 서비스에 정부가 관여하는 데 반발하는 움직임이 의료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보육, 간병, 노인ㆍ장애인 돌봄 같은 사회서비스 영역이 심각하다. 사회 서비스의 전달 기관인 민간 공급자들의 저항은 이미 도를 넘었다. 장기요양 보호 기관의 방만한 운영을 바로잡으려 하자 시설장들이 거칠게 반발했던 일이 대표적이다.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시작된 이후 요양 보호 기관들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이들은 장기요양보험 재정을 눈먼 돈처럼 빼돌리며 허위ㆍ부당 청구를 일삼았다. 그러자 국회는 2014년 요양 기관에 재무ㆍ회계기준을 적용하는 법안을 냈고 보건복지부도 관련 규칙의 신설을 준비했다. 재정의 80%가 국민이 낸 보험료이기 때문에 시설 회계의 투명성을 높이고 정부가 시설의 관리 감독을 강화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당시 시설장들은 “복지부의 야만적ㆍ공산당식 행정조치를 규탄한다”며 오히려 위력 시위를 벌였다.

잘 알다시피 비슷한 사례는 지난해 사립 유치원에서도 되풀이됐다. 연간 2조원이 넘는 국가 예산이 사립유치원에 지원되지만 회계 투명성을 높이려는 ‘유치원3법’이 발의되자 사립유치원장들은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며 집단 휴원까지 서슴지 않았다.

한국 사회복지 분야의 주요한 문제는 정부는 재정 지원만 하고 복지 서비스의 전달은 민간에 떠넘겨 버린, 그러나 관리 감독은 형식적으로 일관하는 점이다. 그 결과는 종사자들의 열악한 처우, 낮은 서비스의 품질, 기관들의 무분별한 영리 추구다. 그런 점에서 공적 주체의 복지 시설 운영, 복지 재정의 공적 통제, 취약 계층의 복지 서비스 접근도 향상 같은 공공성 확대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 국공립 어린이집 이용 비중을 40%로 높이고, 민간 사회복지ㆍ보육시설 종사자의 공공분야 채용을 확대하는 사회서비스원을 만드는 등 사회복지 분야의 공공성 확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관치도 사회주의도 아니다. ‘의사파업’처럼 이해당사자들의 반발로 꺾이거나 좌절돼서는 안 된다.

이왕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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