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주문 폭주 시대, 라이더들은 과연 웃고 있을까
'5,400만' (2020년 3월 기준 '배달의민족' 어플리케이션 다운로드 수)
대한민국은 ‘주문 중’이다. 남한 인구(5,183만)를 상회하는 이 거대한 숫자에 '코로나19 시대'가 압축돼 있다. 배달은 선택이 아닌 필수, 나아가 ‘일상’이 됐다. 모두의 생계가 전례 없이 힘겨운데, 오직 배달업만 황금기를 누리는 것처럼 보인다. 때마침 “배달 라이더 연봉 1억 시대가 열렸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은근하던 멸시에 묘한 호기심이 섞이기 시작했다.
“하루 16시간씩, 단 30분도 쉬지 않고 1년 내내 일하면 겨우 가능하려나요.” 라이더들은 고개를 내저었다. 사람의 몸이 기계가 아닌 이상,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어쩐지 초조하다. “한편으론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강남에선 저렇게 번다는데, 나도 서울로 올라가 일을 해야 하나’하고…” 고작 하루, 이례적으로 ‘많이 번 날’을 기준으로 산정한 이 1억이라는 터무니없는 숫자는 폭주하는 물량 아래 이들이 수시로 마주하는 어둠을 가뿐히 지웠다. 한국일보 뷰엔(view&)팀이 신기루에 가려진 배달 라이더의 그림자를 쫓아가 봤다.
日14시간 노동에 식사 ‘30분’ 그렇게 주6일 일해도 1억? ‘남의 나라’ 얘기
배달노동자들은 ‘한 명 한 명’이 사장님이다. 민트색 배달통을 싣고 달려도 ‘배달의 민족’ 직원은 아니다. CU편의점 직원이 CU 소속 직원이 아닌 것과 비슷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라이더들에겐 ‘최저임금’과 ‘법정근로시간’과 같은 명문화된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거다. 오토바이 대여료, 보험료, 유류비, 엔진오일 교환비, 콜비, 통신비 등 모든 비용을 스스로 충당한다. 버는 돈의 3.3%는 세금으로 '원천징수'된다.
“그러니까, 고수익이라고 해서 그게 순수익은 아닌 거죠. 아무리 적게 잡아도 버는 돈의 1/4 이상이 기타 비용으로 빠져나가요. 정말 열심히 해서 월 600을 벌었다 해도, 실제 수입은 약 400만원 남짓 정도라고 보시면 돼요. 그것도 하루 14시간씩 주 6일을 빠짐없이 일했을 때의 얘기고요.” 실제로 이 정도를 버는 라이더들은 손에 꼽는다.
배민라이더스에서 3년째 일하고 있는 라이더 박선우(33, 가명)씨의 하루는 오전 9시 시작해 오후 11시에 끝난다. 콜이 뜸해지는 오후 4시가 돼서야 배달 동선에 있는 식당에서 후다닥 식사를 한다. 13시간의 노동 중 유일한 휴식이다. 하루 평균 80콜 이상씩 채우지만, 어제와 오늘 똑같이 80콜을 뛰었어도 거머쥐는 돈의 액수는 천차만별이다. 하루 수익이 많게는 15만원씩 벌어진다.
'연봉 1억'의 신기루는 배달료에 추가되는 할증(프로모션)이 빚어 낸 착시 현상이기도 하다. 악천후 또는 배달물량에 따라 배달료가 ‘따따블’로 뛰기 때문이다. 후발주자로 뛰어들어 신입 라이더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는 ‘쿠팡이츠’의 경우, 최대 건당 2만원까지 내건다. 그 때문에 매일 같은 수의 콜을 받아도 거머쥐는 돈은 그때그때 다르다. 이 같은 프로모션은 그나마 서울, 대형 배달대행 플랫폼에나 해당하는 이야기다.
지방은 사정이 다르다. 기본 배달료부터가 서울은 3,000원인데 부산은 2,600원이다. “천안은 2,700원 정도? 비 올 때는 300~500원 정도 할증이 붙지만, 파격적으로 높진 않죠. 서울에선 흔하다는 프로모션도 없거든요.” 5년째 천안에서 배달 일을 하고 있는 라이더 김성해(41)씨는 “지방에서 '고수익 라이더'는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한다.
지방 라이더들은 주말, 비 오는 날 등 콜이 몰릴 때마다 ‘강제 배차’를 당한다. 소규모 인원으로 계약을 맺은 식당들의 주문물량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말 바쁠 때는 프로그램을 켜 둔 채로 식사를 해요. 콜이 오면 10분만에도 욱여넣고 나가지요."
배달 주문 폭주 시대, 라이더들은 과연 웃고 있을까.
인간의 몸엔 명백한 한계가 있다. 체력은 소모품이다. 배달 물량이 빗발친다고 쾌재를 부를 수 없는 이유다. 콜이 쌓일수록 노동강도는 육신의 한계를 넘어선다.
“올해 유독 장마가 길어서 콜 수가 늘어났죠. 아주 오래, 위험한 환경에서 일했어요. 라이더들이 정말 많이 다쳤습니다.” 김성해 라이더가 씁쓸해 했다. “요즘 아파트들은 소음 민원 때문에 배달 기사가 지상으로 출입을 못 해요. 그런데 주차장 바닥에 물기가 있으면, 오토바이가 바로 미끄러져요. 저도 이번 장마 때 주차장에서 넘어져 음식값을 전부 물어주기도 했죠.”
박선우 라이더는 비오는 날엔 식당 출입도 자제한다. 단골집 사장님들은 ‘상관없다’며 손을 내젓지만,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비를 입고 홀에 들어가는 게 어쩐지 미안해서다. “최근엔 코로나19 여파로 편의점 야외 취식 자리도 막혀 있더라구요.”
비 오는 날, 라이더들은 ‘초인적' 힘을 발휘해야 한다. 평소 최저임금 수준을 밑도는 배달료에 할증이 배로 붙는 ‘대목’이자 오토바이가 더 자주, 더 크게 넘어지는 '빗길'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우리도 태풍 불고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에는 안전하게 일하고 싶어요. 그런데, 거기에 돈을 두 배, 세 배씩 붙여 유인을 하는 거죠.”(김성해)
라이더들은 지속가능한 배달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선 전국 기준의 ‘안전 배달료’를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정훈 라이더 유니온 위원장은 “’프로모션’은 서울에서만 벌어지는 일시적이고 이례적인 현상인데다, 라이더들을 사고 위험으로 내몰기까지 한다”며 “기본 배달 수수료를 4,000원 정도로 통일해, 시간에 쫓기지 않고 안전하게 배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진짜 1억 벌어요?” 보험 없는 오토바이 끌고 10대 소년들까지 뛰어든다
박선우 라이더의 헬멧엔 ‘액션캠’이 붙어있다. 일종의 블랙박스다. ‘사고란 게, 나만 조심해서 안 나는 게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 부랴부랴 달았다. “요즘은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5분만에도 라이더가 될수 있어요. 킥보드 타고도 배달을 하니까. 특히 최근엔, 신입 라이더들이 정말 많이 쏟아졌죠. ‘진짜 1억 버나?’하면서 들어온 젊은 분들이 대부분인데, 십중팔구 배달 시작하자마자 사고가 나요.”
거리에선 지금도 반바지에 슬리퍼를 꿰어 신은 젊은이들이 헬멧도 없이 서툴게 오토바이를 몬다. 신호는 가뿐히 위반하고,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지 않고 달리는 목숨 건 곡예운전이 시작된다. “스무 살, 심지어 열아홉 살? 이런 어린 친구들이, 보험도 안 든 바이크를 타고 나와요. 고수익이 왜 고수익일까요. 그만큼 위험하다는 뜻인데…”(박선우) 실제로 2916년~2018년 청년의 산재사망 원인 1위는 ‘배달’이었다.
플랫폼에 소속된 라이더들은 일할 땐 ‘근로자’지만, 사고가 나는 순간 ‘사장님’이 된다. 노동은 직원처럼 해도, 책임은 사장처럼 져야 한다. “주행 중 무단횡단을 하는 어린이를 피하려고 오토바이를 꺾다가 발목이 부러졌어요. 치료비 수백만 원을 자비로 충당하고, 반년 정도 일도 못했죠. 그때 알았어요. 사고란 게 정말 무섭구나.” 김성해 라이더는 배달일을 하는 5년 동안 ‘종합 보험’에 가입한 라이더를 본 적이 없다.
대인 사고 시 형사상 면책을 받을 수 있어 라이더에겐 필수인 ‘종합보험’의 연간 보험료는 800만원가량, 웬만한 외제차 보험보다 비싸다. 20대 초반에 운전 경력이 없다면 보험료는 1,000만원을 훌쩍 넘는다. “사람이 다치는 사고라도 나면 뭘 어찌해 볼 수가 없어요. 신속하게 현금으로 합의를 볼 밖에요.”(김성해)
배달물량 폭주로 이득을 보는 플랫폼 기업은 언제나 이 번거로운 책임의 ‘바깥’에 머문다. '가정용 보험’에만 가입돼 있어도 누구나 라이더로 나설 수 있다며 '모집'에만 몰두하고 있다. 배달대행 플랫폼들이 창업 초기, 음식점들을 상대로 뿌린 광고 중엔 이런 문구도 있었다. “사고가 나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오늘도 턱없이 낮은 진입장벽 너머의 ‘1억’이라는 신기루는 ‘코로나19’ 시대, 생계의 벼랑 끝에 내몰린 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우리도 노동자다"
주 6일 내내, 오토바이 말고는 엉덩이를 붙일 수 없다던 두 라이더가 마지막으로 덧붙인 말은 “우리도 노동자다”였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플랫폼 노동’이라는 새로운 토양 위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이들에게, 배달은 더 이상 임시직이 아닌 ‘진지한 생업’이다. 자신의 목숨과 가족의 생계를 싣고 달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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