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노래방도 못 가고"… 30년 흥 깨지는 'K-노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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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노래방도 못 가고"… 30년 흥 깨지는 'K-노래방'

입력
2020.10.0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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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부산 대학가에 첫 선 보인 국내 '노래방'
대표적 여가문화 자리매김… 코로나19로 휘청

8월 20일 서울 성동구청 문화체육과 직원들이 고위험시설로 분류된 관내 노래방에 집합금지명령서를 붙이고 있다. 뉴시스

"추석에 모처럼 다들 모였으니 노래방이나 갈까?"

'흥의 민족' 한국인들이 명절을 맞아 만난 일가친척들과 노래방을 찾는 풍경,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는데요. 이렇듯 기쁜 일이 있을 때뿐만 아니라 슬프거나 화나는 일이 있을 때도 노래방은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소중한 친구였죠.

일본에서 건너왔지만, 어느덧 한국의 국민 오락으로 자리 잡은 노래방. 한류가 퍼져나가면서 '코리아 가라오케' 대신 NORAEBANG(노래방)이라는 단어를 쓰는 외국인들마저 생겨났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런 노래방 문화, 최근 급속히 기울고 있다고 합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삶에 끼친 영향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특히 노래방은 고(高) 위험시설로 폐쇄되는 등 우리와 당분간 거리 두기에 들어간 상황이죠.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문을 닫은 곳만 1,307개에 달할 정도로 어느 때보다 큰 위기에 처한 노래방의 어제와 오늘, 내일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왜색에 '눈총'… 추방운동 벌어지기도

한국일보 1992년 2월 3일자 지면


왜색 ‘노래방’ 젊은층에 열기(熱氣)

한국일보 1992년 2월 3일 기사

지금은 전국에 총 3만여 개의 업소가 있어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노래방.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부산에 첫선을 보였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국내 최초 노래방은 1991년 부산 동아대 앞 로얄전자오락실에 생겼다는데요. 300원을 넣으면 반주와 영상, 가사가 나오는 일종의 코인 노래방 형태였다고 합니다. 이후 전국에 빠르게 퍼진 노래방은 얼마나 인기가 있었던지 예약 없이는 가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해요. 다만 '가라오케'라는 일본 문화를 그대로 들여온 터라 간판이나 장식, 영상도 전부 일본풍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죠.

또 초반에는 관련 법이 없다 보니 미성년자에게 술을 파는 등 탈선의 온상이 되거나, 퇴폐업소처럼 운영되는 사례도 생겼어요. 서울의 일부 대학 총학생회에서는 대학가에 우후죽순 생겨나는 노래방의 추방 운동을 벌일 정도였습니다.

정부는 결국 논란 끝에 노래방을 '풍속영업'으로 지정, 자정부터 오전 9시까지 영업을 중단시켰어요. 또 만 18세 미만의 출입은 금지하고, 투명 유리창을 설치해 밖에서 안이 들여다보이도록 했죠.

논란 딛고 '온 국민의 여가 문화'로

2003년 7월 서울 홍익대 앞 노래방 럭셔리수에서 청년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박서강 기자

이렇게 눈총을 받던 노래방은 1999년 영업시간 제한이 사라지고, 보호자 없이도 미성년자 출입(오후 10시 이후는 금지)이 가능해지면서 직장인들의 회식 2차를 책임지는 대표적인 장소이자 온 가족이 함께하는 여가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야말로 '노래방 공화국' 시대가 열린 겁니다. 직장인은 물론 대학생, 연인들의 만남이나 친목 모임에도 노래방은 빠질 수 없는 코스가 됐죠. 노래방에서 만나 비슷한 점수를 받은 사람끼리 짝을 이루는 '노래방팅'도 등장했어요. 기업이나 관공서, 심지어 군부대나 사찰에서도 친목ㆍ사기 진작을 위해 노래방 기계를 설치하는 곳이 적지 않았죠.

남북의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었던 2001년에는 국내 대중가요 5,000곡이 노래방 기계가 지원 물품으로 북한에 보내진 적도 있었습니다.

자영업자들이 별다른 기술 없이도 상대적으로 쉽게 뛰어들 수 있다 보니 노래방 창업 붐은 한동안 계속됐는데요. 이 때문에 악기를 짊어지고 이집 저집 불려 다녔던 거리의 악사들은 생계를 잃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노래방이 싫어요"… '노래방 포비아'도 등장

연말연시 피할 수 없는 술자리와 노래방 극복 방법 관련 한국일보 자료 사진. 홍인기 기자

노래방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이른바 '노래방 포비아(공포증)'를 호소하는 이들도 나타났습니다. 자신이 없어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기 싫은데도 다들 자연스레 가는 분위기라 억지로 노래방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2003년 12월 한국일보는 연말을 맞아 '대한민국은 열창 중! 노래방의 모든 것'이라는 기사를 실었는데요, 당시 27세 회사원이던 김용길씨는 "노래방에 가면 군 시절 악몽이 떠오른다"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억지로 노래를 부르라고 강요하던 고참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는 겁니다. 김씨는 "노래하고 싶은 사람만 하면 되지, 안 하는 이에게 '왜 그렇게 못 노냐'고 핀잔주는 건 황당하다"고 전하기도 했어요.

한국일보 2003년 12월 5일자 지면

이런 이유 때문일까요. 2000년대에는 '음치 클리닉'이 덩달아 인기를 끌었습니다. 노래방에서 '점수' 잘 받는 방법도 알음알음 공유됐죠. 노래방 반주기 생산업체 태진미디어는 당시 "점수 채점은 박자가 기준"이라고 귀띔했습니다. 이전에는 멜로디의 정확도도 따졌지만, 수만 곡에 달하는 노래를 일일이 채점하기 힘들어 적용하지 않게 됐다네요.


혜성처럼 등장한 '코인노래방'… 노래방의 진화

인천 미추홀구의 한 코인노래방이 닫혀 있다. 뉴스1

시대가 흐르면서 노래방도 진화했습니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벗어나 카페형 실내 장식을 도입하고, 프랜차이즈 산업이 생겨나기도 했죠. 특히 2015년 즈음에는 '코인(동전) 노래방' 열풍이 거세게 불었습니다.

혼자 즐기는 문화가 빠르게 퍼지면서 단체 회식의 장소였던 노래방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 '혼방'의 장소로 변화하게 된 거죠. 눈치 보지 않고 혼자서 노래방을 즐길 수 있고, 또 저렴하다는 장점까지 더해져 대학가 중심으로 코인 노래방은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었는데요.

특이한 것은 노래방의 원조인 부산에서 1991년 처음 선보였던 노래방이 코인 노래방의 모양새를 갖췄다는 점에 비춰보면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셈이네요.

이런 뼈를 깎는 노력에도 노래방의 침체기는 계속됐습니다. KB금융경영연구소 등에서는 그 이유를 '회식ㆍ여가 문화의 변화'에서 찾았습니다. 워라밸(일과 삶의 조화) 확산 등으로 직장인의 회식이 줄어 노래방 수요도 감소했다는 거죠. 또 커피 전문점이나 PC방, 스크린 골프 등 노래방 말고도 즐길 수 있는 대체 시설은 늘어나 저절로 발길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래반주기 제작업체에서도 새로운 수익원을 찾고 있습니다. 이들 기업은 한류 바람을 탄 해외 시장 진출, 모바일 노래방 출시, 유튜브를 비롯한 인터넷 플랫폼 진출 등으로 전방 산업의 부진에 대응하는 모양새입니다.

30년 역사 송두리째 뒤흔든 코로나?

지난달 16일 고위험시설로 지정돼 영업하지 못하는 노래방 업주들이 충북 청주시 오송읍 질병관리청 정문 앞에서 정부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뜩이나 내리막을 걷던 노래방 문화는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집합금지 명령을 받아 거의 문을 열지 못하는 데다, 문을 연다고 해도 감염 우려에 손님은 뜸하고요. 노래연습장협회 측은 "업장마다 평균 1,500만 원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줄폐업에 서울의 전자 상가에 중고로 나온 노래방 기계, 마이크 등이 쌓인 모습이 보도되기도 했죠. 노래방 업주들은 서울과 세종, 경기 고양 등에서 잇따라 집회를 열고 "더 이상은 못 살겠다"고 호소하고 있어요. 경기 고양 백석동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는 한 업주는 "가게를 접으려고 해도 원상복구 비용이 또 들고, 인수하겠다는 사람도 나타나지 않는 처지"라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지난달 16일 서울 종로구 전자상가 한 중고 노래방 기기 판매점에 폐업한 노래방에서 들여 온 기기들이 쌓여 있다. 뉴스1

노래방 애호가들도 괴롭긴 매한가지입니다. 직장인 김다영(31)씨는 "평소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노래방에 갔었는데, 벌써 반년 이상 발길을 끊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는데요. 방 안에서 블루투스 마이크로 노래를 부르며 취미 생활을 대체하며 버티고 있지만, 실제 노래방에는 못 미친다는 겁니다.

코로나19가 사라지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로 노래방을 꼽는 이들도 있죠. 거리낌 없이 노래방을 찾아 마음껏 목청을 높일 수 있는 날을 기다려봅니다.

전혼잎 기자
박서영 데이터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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