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완화해도 나라 안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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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완화해도 나라 안 망한다

입력
2020.09.21 18:00
수정
2020.09.2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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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철
장인철논설위원

선물 상한 20만원으로 완화 타당한 조치
현실 외면 정책ㆍ법규 원리주의는 해악
얼치기 ‘혁명’ 대신 경제 실용주의 절실

홈플러스는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의 농·축·수·산 선물 상한액이 기존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완화됨에 따라, 상한액에 맞춘 축산선물세트 11종을 새로 출시했다고 지난 21일 밝혔다. 연합뉴스


정부가 ‘김영란법’을 일시 완화했다. 법에 저촉되지 않는 선물 상한액을 20만원으로 올린 게 골자다. 코로나19 불황이 워낙 심각하니, 추석선물 특수라도 살려 보자는 안간힘인 셈이다. 급기야 성역 같던 김영란법 부패 기준까지 완화하는 걸 보며, 두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하나는 정책과 법규의 상대성이다. ‘삼국지’의 제갈공명은 등용되자 법을 엄하고 촘촘하게 짰다. 유비는 선조인 한고조 유방의 ‘약법삼장(約法三章)’을 거론하며 법이 너무 엄한 것 아니냐고 우려한다. 진나라 말 봉기한 유방이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에 처하고, 사람을 상해하거나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죄값을 받는다’는 매우 간명한 법만을 시행함으로써 민심을 얻은 일을 떠올린 것이다.

그러자 공명은 “그땐 진나라 법이 너무 엄혹해 순화할 필요가 있었고, 지금은 세상이 어지러워 되레 엄한 법이 필요하다”고 간언했다. 요컨대 정책과 법규의 구체적 시행은 현실에 맞춰 유연하게 조정될 필요가 있다는 얘길 한 셈이다. 그렇게 보면 이번에 김영란법 선물 기준을 조정한 건 바람직한 시도다.

김영란법 완화를 보며 드는 또 하나의 생각은 현 상황에서 보다 유연한 접근이 필요한 정책과 법규가 비단 김영란법뿐이냐는 것이다. 법 제정 당시 누군가는 “김영란법이 경제 망친다는데, 그것 때문에 망할 정도면 한국경제가 얼마나 엉터리라는 얘기냐”며 경기 위축 우려를 일축했다. 그런데 식음료업체를 운영해 온 나의 지인은 지금도 그 주장을 거론하며 분통을 터뜨린다.

그는 김영란법에 이은 현 정권의 잇단 개혁조치가 자영업자들에겐 동화 ‘해님달님’에 나오는 호랑이 같았다고 말한다. 아랫마을 잔칫집에서 온종일 품 팔아 얻은 떡 몇 조각 아들, 딸 주려고 산골짜기 집으로 돌아가던 엄마가 첫째 고개에 이르자, 호랑이 한 놈이 눈에 불을 켜고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했단다. 떡 하나 주면 괜찮을 줄 알았던 엄마처럼, 내 지인 역시 김영란법에 장사 망하랴 싶어 떡 하나 내놓는 셈 쳤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이래 팔 한 짝 떼 주면 안 잡아먹지, 다른 팔 떼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식으로 최저임금부터 주52시간, 주휴수당에 이르기까지 장사 해먹기 힘든 정책이 쉬지 않고 이어졌다. 정권에선 “좋은 일인데, 떡 하나, 팔 한 짝 떼 준다고 죽기야 하겠냐”며 어르고 달랬지만, 장사는 점점 힘들어졌고, 급기야 코로나19가 덮치자 속수무책이 돼 버렸다는 것이다.

국난을 빌미로 ‘좋은 나라’ 만들자는 정책과 법규들을 도매금으로 매도하려는 게 아니다. 전체에 대한 통찰 없이, 그저 당연한 일이니까, 이 정도까진 괜찮을 거니까, 하면서 여기저기서 동시에 강행된 혁신정책과 법규의 영향들이 겹치며 결과적으로 풀뿌리 삶의 터전을 황폐화시키고, 생업을 위기에 빠뜨리는 ‘과도한’ 부작용을 일으켰다는 점만은 분명히 짚자는 것이다.

원리주의 정책과 법규로 무리가 빚어진 부문은 비단 풀뿌리 업계뿐만 아니다. 옳든 그르든, 정권은 이미 일련의 친노동 및 경영규제 조치로 기업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렸다. 그럼에도 기업 경영권 방어(상법)나, 가업승계제도 개선(상증법) 관련 입법은 외면하더니, 이번엔 업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공정경제 3법’을 처리해 내겠다는 기세다.

공정경제 3법, 좋은 얘기다. 하지만 경직된 접근은 안 좋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제(상법) 등 업계의 몇몇 보완 요구는 일리가 충분하며, 경영권 방어 입법 등도 절실하다. 정권이 아무리 수십조 원을 지원해 한국형 뉴딜을 추진해도, ‘혁명적 강박증’을 극복하지 못하면 부작용만 커질 뿐이다. 뜻은 견지하되, 현실을 살피며 한걸음 한걸음 소처럼 나아가는 ‘진중한 실용주의’가 절실하다.

장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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