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윤리와 균형감각...정치적 리더십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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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윤리와 균형감각...정치적 리더십의 방향

입력
2020.09.22 04:30
수정
2020.09.27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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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막스 베버의 정치가론

편집자주

2020년대 지구적 사회 변동의 탐색을 통해 세계와 한국의 미래를 생각합니다. 매주 화요일 <한국일보>에 연재됩니다.


정치가의 존재적 의미와 사회적 역할을 선구적으로 다룬 것은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다. 나남출판사 제공


미래는 절로 열리지 않는다.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선택이 요구된다. 근대 이후 국민국가 차원에서 이 선택을 담당했던 것은 정부와 정당으로 대표되는 정치다. 그리고 이 선택의 제도적 바탕을 이룬 것은 민주주의다. 국민의 의사결정권이 선거를 통해 대리인인 정치가에게 위임되는 것이 근대 대의민주주의의 요체다. 바로 이점에서 어느 나라든 정치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직업으로서의 정치

우리 인류의 삶을 결정짓는 데 정치가가 이렇게 중요하다면, 정치가의 역할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2020년대를 전망하는 이 기획에서 적절한 주제다. 정치가에게 부여된 소명을 그렇다면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정치가의 존재적 의미와 사회적 역할을 선구적으로 다룬 것은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다. 이 책은 본래 강연문이다. 베버는 1917년 11월 뮌헨대학의 진보적 학생단체 ‘자유학생연합’ 초청으로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강연했다. 1919년 1월 다시 초청받아 맡은 강연이 ‘직업으로서의 정치’였다.

이 강연에서 베버는 정치란 무엇이고, 정치가의 덕목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선보였다. 사회학자 전성우는 ‘직업으로서의 정치’가 ‘직업으로서의 학문’과 함께 베버의 ‘학문적 유언장’ 같은 위상을 가진다고 평가했다.

정치란 한 사회 안에 있는 가치와 자원의 합리적 배분을 최종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앞서 말했듯 이 최종 결정이 선거와 투표를 통해 정치가에게 위임된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 어느 나라든 정치에는 서로 다른 가치와 이익이 경쟁하고 대립한다. 이 점에 주목해 베버는 정치를 천직(天職)으로 부여받은 이들을 정치가로 파악하고, 이들은 ‘악마적 수단’을 가지고 ‘천사적 대의’를 실현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여기서 악마적 수단이란 은유는 강제력 등 목표 달성을 위해 활용하는 다양한 방식을 포괄한다.

‘직업으로서의 정치’가 널리 읽혀온 까닭은 베버가 정치가에게 필요한 윤리와 자질을 제시했다는 데 있다. 먼저 베버는 정치가에게 요구되는 두 가지 윤리로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강조했다. 신념윤리가 선과 악의 구별에서 도덕적 선을 선택하고 행동하는 태도를 말한다면, 책임윤리는 정치적 선택의 결과에 대해 무제한적 책임을 지는 태도를 의미한다.

바람직한 정치가는 모름지기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모두 갖춰야 한다. 정치가 결국 ‘결과’로써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특히 책임윤리에 대한 베버의 통찰은 날카로운 것이었다. 베버는 무책임성을 정치의 치명적인 죄악으로 파악했다.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


이어 베버는 정치가에게 필요한 자질로 ‘열정·책임감·균형감각’을 들었다. 정치가에게 부여된 기본적인 역할은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들의 가치와 이익을 대표하는 데 있다. 이 정치적 대표성에 헌신하려는 태도가 열정이라면, 그 대표성에 책임을 다하려는 태도가 책임감이다. 그리고 이러한 열정과 책임감 사이에서 요청되는 게 균형감각이다. 균형감각은 사물과 사람에 거리를 둘 수 있는 태도이자 주어진 현실을 수용할 수 있는 역량을 뜻한다.

베버가 열정·책임감·균형감각을 특별히 강조한 까닭은 정치가 국가의 운영을 떠맡는다는 점에 있다. 어느 나라든 국가의 운영은 국민의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베버에 따르면, 정치의 치명적인 두 가지 죄악은 ‘객관성의 결여’와 앞서 말한 ‘무책임성’이다. 객관적 조건을 무시한 채 주관적 판단에만 의존하고 결과를 고려하지 않은 채 무책임하게 국가 정책을 추진할 경우 그 정책이 국민 다수에게 불행을 안겨준다는 점을 생각할 때, 정치 실패에 대한 베버의 통찰은 결코 작지 않은 교훈을 안겨준다.


2020년대와 정치가의 미래

2020년의 현 시점에서 100년 전 베버의 정치가론을 소환한 까닭은 포퓰리즘에 있다. 21세기에 들어와 포퓰리스트라는 새로운 유형의 정치가들이 대거 등장해 왔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대표적인 포퓰리스트 정치가들이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과 프랑스 마리 르 펜 국민전선 대표도 여기에 속한다.

포퓰리스트 정치가들은 기득권에 맞선 국민을 불러내는 ‘엘리트 대 국민’의 균열을 부각시켰다. 이들은 이 반엘리트주의를 무기로 기성 정치사회를 비판함으로써 집권에 성공했다. 그리고 세계화를 거부하고 반이민 정서에 부응하는 포퓰리즘 정책을 구사했다. 세계화가 낳은 불평등의 강화가 이들이 성장할 수 있는 정치·사회적 토양을 제공했다.

문제는 이 포퓰리스트 정치가들, 다시 말해 스트롱맨들의 리더십에 있다. 정치학자 얀 베르너 뮐러가 지적하듯, 포퓰리즘의 그늘은 반다원주의에 있다. 포퓰리스트 정치가들은 자유주의적 다원주의를 거부하고,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내세워 기성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한다. 베르너 뮐러는 ‘누가 포퓰리스트인가’(2016)에서 포퓰리스트들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포퓰리스트가 집권하면 오직 자신만이 국민을 대표한다는 사고에 충실하게 통치할 확률이 높다. 국가를 통째로 접수하고, 후견주의와 부정부패에 빠지고, 비판적인 시민사회를 탄압할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포퓰리즘적인 정치적 망상으로부터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받음으로써 공공연히 이루어진다.”

이러한 뮐러의 분석은 2010년대 후반에 들어와 현실화돼 왔다. 포퓰리스트들은 국민주권을 앞세우지만 국민 분열을 시도하고, 결국 국민통합을 저해한다. 이와 연관해 주목할 것은 베버의 민주주의론이다.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베버는 독특한 민주주의론을 내놓는다. 베버에게 민주주의란 시민의 직접투표로 대표를 선출하는 ‘국민투표제적 원리’에 기반하고 카리스마적 리더가 정치를 이끄는 ‘지도자 민주주의’다.

베버가 이러한 민주주의론을 제시한 데에는 당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후발 국가였던 독일의 역사적 특수성이 반영돼 있었다. 영국 등 앞선 나라의 발전을 독일이 추격하기 위해 베버는 정치사회 리더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오늘날 세계화가 강제한 불평등과 소외를 해결하기 위해 포퓰리스트 리더십이 부각되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2020년대 정치가의 미래에서 그렇다면 베버의 통찰이 갖는 의미는 뭘까. 두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첫째는 정치가의 책임윤리다. 오늘날 어느 나라든 국민 다수가 소망하는 정치는 포퓰리즘적 통치가 아니라 자신들의 삶의 질을 제고하는 정책적 성과 및 결과다. 정치는 레토릭 이상의 것이다. 결과로써 말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는 균형감각이다. 사회의 복합성이 크게 증대한 2020년대 현재, 국가가 직면한 문제들의 해결에서 유일한 정답은 없다. 여러 해법들이 공존한다. 예를 들어, 오늘날 어느 나라든 제1의 정책 과제인 일자리 창출에서 보수적 경제성장 전략도 중요하고, 진보적 일자리 나누기 정책도 중요하다. 이러한 ‘이념적 통섭’에 대한 균형감각을 발휘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사회와 정치가

우리 사회를 대표해온 리더십으로 어떤 이들은 박정희(왼쪽)의 리더십을, 다른 이들은 김대중(오른쪽)의 리더십을 떠올릴 것이다. 한국일보자료사진


우리 현대사에서도 정치가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했다. 후발산업화와 민주화 국가였던 만큼 빠른 산업화와 민주화를 위한 일차적 조건의 하나는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이었다. 우리 사회를 대표해온 리더십으로 어떤 이들은 박정희의 리더십을, 다른 이들은 김대중의 리더십이나 노무현의 리더십을 떠올릴 것이다.

2020년대를 맞이한 현재, 정치가의 리더십이 갖는 중요성에는 변함이 없다. 저성장을 극복하고 불평등을 완화하며, 나아가 진정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선 정치가의 리더십과 국민의 팔로워십이 생산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그런데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의 리더십을 잇는 새로운 리더십이 눈에 잘 띠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 오늘날 지구적 차원에서 포퓰리즘 리더십의 도전이 거세다. 포퓰리즘 리더십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포퓰리즘에 담긴 반엘리트주의와 국민주권주의는 21세기적 정치의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포퓰리즘의 반다원주의적 경향은 민주주의를 훼손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마땅히 경계해야 한다.

2020년대 우리 사회 정치적 리더십은 새로운 변화가 요구된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의 대처에서 볼 수 있듯, 국민 다수는 유능하면서도 섬세한 리더십을 원하고 있다. 바람직한 리더십이란 국민의 목소리에 늘 귀 기울이되 때로는 국민에 앞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국민주권주의를 존중하되 다원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변화하는 세계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하는 정치적 리더십을 기대하고 또 소망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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