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노력해서 뭐해요?" 불공정이 18세를 투표소로 불러냈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노력해서 뭐해요?" 불공정이 18세를 투표소로 불러냈다

입력
2020.09.21 04:30
수정
2020.09.21 08:09
3면
0 0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던 지난 4월 15일, 경기 수원시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첫 투표를 마친 만 18세 학생유권자들이 투표 확인증을 들고 인증샷을 남기고 있다. 뉴시스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던 지난 4월 15일, 경기 수원시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첫 투표를 마친 만 18세 학생유권자들이 투표 확인증을 들고 인증샷을 남기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고3이었어요. 수능을 준비하면서 조국 전 장관 가족이 일으킨 공정성 논란을 지켜봤죠. 올해 꼭 투표하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21대 총선에서 생애 첫 투표권을 행사한 '만18세 유권자' 이지민(19)씨의 말이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이씨는 "권력자 자녀들이 온갖 특혜를 누리는 것을 보며 사회 부조리를 느꼈다"고 했다. 또 "나와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권력자 한 명의 행동이 교육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을 보고 정치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했다.

54만8,986명. 선거 연령을 만 19세에서 18세로 낮추는 공직선거법 시행으로 지난 총선에 새로 등장한 유권자 수다. 55만명에 달하는 최연소 유권자들의 표심은 아직은 '미지의 영역'이다. 이들의 정치 의식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가 '공정'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공정 이슈를 선점하는 정치 세력이 이들을 강력한 지지층으로 포섭할 수 있다는 의미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제1회 청년의 날 연설에서 '공정'을 무려 37번 강조한 것은 이런 맥락과 닿아 있다.

한국일보는 스칸디나비아정책연구소와 한국청소년재단이 실시한 ‘만18세 청소년의 제21대 총선 선거참여 실태조사'(엠브레인 의뢰ㆍ7월15일~21일 실시ㆍ만18세 410명 대상) 보고서를 20일 분석했다. 분석 결과, 청소년 유권자의 정치 참여 열기는 기성세대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응답자의 78.5%(231명)가 '이번 총선에서 한 표를 행사했다'고 했다. 정치 적극 참여층의 응답이 높은 온라인 설문조사 방식의 특성을 감안해도, 세대 전체의 평균 총선 투표율인 66%를 웃도는 수치다.

주목할 대목은 응답자 중 13.2%만이 '우리 사회가 평등하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48.8%는 '우리 사회에선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을 수 없다'고 답변했다. 62.7%는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했다. 한국 사회를 '매우 공정하다'고 평가한 응답자는 한명도 없었다.

2001~2002년생인 18세 유권자의 생애는 '오직 입시'였다. 부모 잘 만나는 게 곧 능력으로 치부되는 사회를 겪었다. 진로 선택과 병역 등 인생의 큰 관문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 조국 사태와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 문제 등을 목격하며 불공정에 대한 반응성을 체득했다.

불공정, 부정의, 불평등에 대한 높은 감수성은 이들의 정치 참여 의지를 활활 불태우는 동력이 되고 있다. 조사에서 '한국 사회가 불공정하다'고 답한 응답자 257명 중 209명(81.3%)이 "오늘이 선거일이라면 투표에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한국 사회는 불평등하다'고 바라보는 답변자의 81.4%도 적극적인 정치 참여 의사를 밝혔다.

18세 유권자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 때인 2016년 부모의 손을 잡고 광장에 나가 민주주의를 생생하게 체험했다. 청소년 참정권 운동을 접해 정치 참여 의식도 상당하다.

이들은 '청와대 국민청원'을 비롯한 온라인 공간에서 정치적 의견을 적극 표현하고 있다. 응답자의 73.3%(복수 응답)가 청와대 국민청원을 이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청원 참여 주제는 '범죄·안전·환경(80.1%)' '인권·성평등(45.5%) '정치개혁(22.8%)' 순이었다.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 변화'라는 이들의 지향점이 뚜렷이 드러난다.

해당 조사와 연구를 진행한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정치학 교수는 "지지 정당이 고정적인 30대 이상 기성세대와 달리, 청소년 유권자는 정당과 무관하게 기성 정치가 보이는 특권이나 불공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은 냉소하는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 참여로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믿는 '능동적 시민성'을 갖췄다"며 "정치권이 이들의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혜미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