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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임도 학대다

입력
2020.09.20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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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지난 14일 오전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 초등학생 형제끼리 음식을 해먹으려다 불이 나 중태에 빠진 인천 미추홀구 용현동 한 다세대주택의 내부. 인천 미추홀소방서 제공.

지난 14일 오전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 초등학생 형제끼리 음식을 해먹으려다 불이 나 중태에 빠진 인천 미추홀구 용현동 한 다세대주택의 내부. 인천 미추홀소방서 제공.


기초생활 보호대상자인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 라면을 끓여먹으려다 발생한 화재로 사경을 헤매고 있는 인천 용현동의 10살, 8살 형제. 이들의 비극은 ‘코로나 블루’로 힘겨운 우리들 마음을 더 먹먹하게 만든다. 동시에 우리 사회가 재난 속에서도 최우선으로 보호해야 할 이들이 누구인지를 알려준다.

□2013년 의붓 어머니의 무차별 폭행으로 사망한 ‘이서현양 사건’ 을 계기로 아동학대특례법이 제정되는 등 관련 제도는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 이 문제에 사회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인식도 확산됐다. 용현동 형제의 경우도 이웃들이 2018년부터 엄마가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고 3차례나 신고하면서 아이들은 관련 기관들의 관심 대상이 됐다. 이후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의한 경찰 수사 의뢰, 법원에 대한 피해아동보호명령 청구 등 절차가 진행됐지만 사고를 막지 못했다. 법원이 보호명령 대신 엄마와 아이들이 함께 지내며 치료ㆍ상담만 받도록 한 결정은 결과적으로 아쉽다.

□아동보호 전문가들은 제도와 인식의 개선에도 불구, 신체학대나 성적학대에 비해 가시성이 낮은 ‘방임’(의식주를 제공하지 않거나 의료처리를 하지 않는 등 아동을 방치하는 행위)에 대한 감수성을 좀 더 높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당국 조사를 종합하면 용현동 형제들에게 폭행 피해 흔적은 거의 없다고 한다. 이는 법원의 느슨한 결정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2018년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아동학대 사망 유형 중 방임(30.0%)에 의한 사망이 신체학대(53.3%)에 이어 두번째로 높았다. ‘방임’을 아동학대의 전조(前兆)가 아닌, 학대 그 자체로 인식해야 하는 이유다.

□비등교수업의 일상화로 취약계층 아동들이 방임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방문조사가 가장 효과적인 예방수단이지만 코로나19 유행으로 여의치 않다고 한다. 정부는 7월부터 지자체 공무원들의 가정 방문조사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으나 대상 1만8,000가구의 절반 정도 밖에 방문하지 못했다고 한다. 학대받는 아이는 모두 우리의 아이라는 마음으로 공동체가 ‘방임’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는 방법밖에 없다.

이왕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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