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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바위를 캔버스 삼아…

입력
2020.09.23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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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Be A Casey Nocket"(9.23)

유타주 캐년랜즈 국립공원 바위에 마커펜으로 '작품'을 그리는 케이시 노킷. 인스타그램

유타주 캐년랜즈 국립공원 바위에 마커펜으로 '작품'을 그리는 케이시 노킷. 인스타그램


1948년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창설됐고, 한국은 1963년 12월 '한국 자연 및 자연자원보존학술조사위원회(KNCCN) 창립과 함께 자연 보호에 처음 눈을 떴다. 1977년 '환경보존법'이 제정되면서 '계몽'이 법 규제에 포함됐고, 그해 10월 대통령 박정희는 고향 경북 구미시 금오산을 방문, 자연보호 범국민운동을 위한 기구 설치를 지시했다. 며칠 뒤 사단법인 '자연보호협의회'가 출범했다.

금오산 입구엔 '자연보호운동 발상지'라 쓰인 집채만 한 기념비가 들어섰고, '자연보호헌장'을 새긴 비도 전국 각지에 자리 잡았다. '자연'의 취지를 살리려 그랬는지, 빗돌은 대부분 자연석이었다. 국보 석굴암과 서산마애삼존불, 미국 러시모어산의 전직 대통령 조각상(국가기념물)도 행위 자체만 보자면 자연 훼손이다. 과연 저 기념비들은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까.

2014년 9월 23일 미국 뉴욕의 한 여성 그라피티 화가 케이시 노킷(Casey Nocket, 당시 21세)이 캘리포니아주 데스밸리국립공원 정상에 올라, 바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여성 얼굴을 그리고, 'Creepytings'라는 서명과 날짜를 써넣었다. 그렇게 그는 9월 12일 콜로라도주 로키마운틴국립공원에서부터 10월 7일 오리건주 크레이터레이크국립공원까지, 4개주 7개 국립공원에 '작품'을 남겼고, 사진까지 찍어 인스타그램으로 '자랑'했다.

미 국립공원관리청은 그를 국유재산 훼손 등 혐의로 고발했고, 법원은 2년 보호관찰형에 200시간 봉사명령, 벌금형을 내렸으며, 모든 국립공원과 산림청 등 전 국토의 약 20%에 해당하는 공간 접근을 금했다. SNS 명사의 꿈은 그렇게 수치스럽게 망가졌지만, 그의 '반달리즘'은 역설적으로 그 어떤 자연보호 캠페인보다 강렬한 효과를 발휘했다. 'Don't Be Casey Nocket!'이란 환경 구호도 만들어졌다.

어쩌면 '자연보호'를 위한 한국의 자연석 기념비들이 노린 게 그런 걸 수도 있겠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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