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캠페인’. 1968년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 나섰다 암살당한 로버트 케네디의 82일간에 걸친 선거운동을 되짚은 책이다. 얼른 집었다. 형인 존 F 케네디보다는 동생 로버트에 대해 궁금한 게 더 많아서였다.
로버트에게 관심이 생긴 건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때문이다. 잘못된 이라크전쟁 등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8년 적폐를 끝장낼 것이란 기대를 받으며 당선된 최초의 흑인 대통령. 하지만 4년 뒤 재선거 때는 “중후한 목소리로 멋진 말만 늘어놓을 뿐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이 발목 잡아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요’라고 징징댄 무능력자”라고 진보진영에게 융단폭격당한 대통령. 그럼에도 자유와 시장을 내세운 ‘티 파티’ 같은 극우세력이 준동하고 도널드 트럼프가 등장하면서 두 번째 임기 말에는 열렬한 인기를 누렸던 바로 그 대통령 말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전진 못하는 것처럼 보여도, 때론 제자리에서 버텨주는 것만 해도 진보라는 걸 온 몸으로 보여줬달까.
이 책을 열고 미국 출간연도부터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2008년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첫 대선에서 승리한 그 해다. 고로 이 책에는 당시 대선 과정에서 ‘다음 대통령은 로버트의 못 다 이룬 꿈에 도전해야 한다’는 진보 진영의 강력한 요청, 오바마 전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좌절 등 당선 이후 진보진영이 품은 복합적인 감정, 현재 민주당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둘러싼 노선갈등의 속살 같은 것들이 녹아 있다.
50여년 전 로버트가 지금까지도 불려 나오는 건 ‘진정성’을 보여준, 두루두루 좋은 얘기 적당히 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핵심 이슈에 제 한 몸을 정면충돌시킨 마지막 정치인으로 꼽힌다는 점 때문이다.
책에서도 다뤄지지만,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당한 1968년 4월 4일 밤 인디애나폴리스의 흑인 밀집 지역에서 그가 행한 연설은 미국 정치사에서 진보 정치란 무엇인가를 보여준 ‘섬광’ 같은 순간으로 기록돼있다.
킹 목사 암살 소식이 전해지면 엄청난 폭동이 예상되던 그 곳에, 경찰마저 그 어떤 책임도 질 수 없다며 모두 철수해버린 그 곳에, 형이 죽는 걸 지켜본 수많은 사람들이 말리던 그 곳에, 로버트는 맨 몸으로 뛰어들어 킹 목사의 죽음을 알리는 연설을 강행했다.
마케팅 전문가, 이미지 컨설턴트 등이 만든 ‘작전계획’에 맞춰 의도적인 우클릭 몇번, 좌클릭 몇번 재는 게 아니라, 문제가 거기 있다면 위험과 논쟁과 갈등을 마다하지 않고 그 곳으로 뛰어드는 정치인이었다는 얘기다. 당장 눈 앞의 이해득실에 개의치 않는 결기를 지닌 정치인에 대한 그리움이, 미국에도 진하게 남아 있는 것이리라.
그 때도 지금도 미국 정치판에선 이례적이라는 로버트의 그 전투적 진정성이, 지금까지도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건, 그것이 흑인, 히스패닉계, 인디언, 애팔래치아 산맥 일대의 가난한 백인 등을 위한 것이어서다.
작금의 이 날선 공방이 공허한 건 그 때문이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사회적 약자 보호 대책을 두고 제안과 토론이 있어야 할 이 때에, 고작 군대 휴가 문제나 따지고 있는가. 장혜영 의원의 연설은 폼 내느라 현장감을 잃었다. 누구를 타도해야 이 두려움이 사라지는지 알 수 없는 두려움이라니. 타도 대상이 바로 거기 눈 앞에 뻔히 있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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