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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대체 뭘 위한 싸움인가

입력
2020.09.21 04:4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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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로버트 케네디, 에드워드 케네디 형제. 사진 촬영 일자, 장소는 남아 있지 않다. 정치 명문가로 이름 얻었으나 비극적 죽음으로 '케네디가 비극'이란 말을 낳았다. AP 연합뉴스

왼쪽부터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로버트 케네디, 에드워드 케네디 형제. 사진 촬영 일자, 장소는 남아 있지 않다. 정치 명문가로 이름 얻었으나 비극적 죽음으로 '케네디가 비극'이란 말을 낳았다. AP 연합뉴스


‘라스트 캠페인’. 1968년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 나섰다 암살당한 로버트 케네디의 82일간에 걸친 선거운동을 되짚은 책이다. 얼른 집었다. 형인 존 F 케네디보다는 동생 로버트에 대해 궁금한 게 더 많아서였다.

로버트에게 관심이 생긴 건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때문이다. 잘못된 이라크전쟁 등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8년 적폐를 끝장낼 것이란 기대를 받으며 당선된 최초의 흑인 대통령. 하지만 4년 뒤 재선거 때는 “중후한 목소리로 멋진 말만 늘어놓을 뿐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이 발목 잡아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요’라고 징징댄 무능력자”라고 진보진영에게 융단폭격당한 대통령. 그럼에도 자유와 시장을 내세운 ‘티 파티’ 같은 극우세력이 준동하고 도널드 트럼프가 등장하면서 두 번째 임기 말에는 열렬한 인기를 누렸던 바로 그 대통령 말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전진 못하는 것처럼 보여도, 때론 제자리에서 버텨주는 것만 해도 진보라는 걸 온 몸으로 보여줬달까.


2017년 1월 퇴임 고별 연설 중 눈물을 훔치는 버락 오바마. 4년 전 재선 도전 당시에는 충분히 진보적이지 못하다며 격한 비난을 받았으나 두 번째 임기가 끝나갈 무렵에는 극우세력의 준동 때문에 그의 퇴임을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시카고=AFP 연합뉴스

2017년 1월 퇴임 고별 연설 중 눈물을 훔치는 버락 오바마. 4년 전 재선 도전 당시에는 충분히 진보적이지 못하다며 격한 비난을 받았으나 두 번째 임기가 끝나갈 무렵에는 극우세력의 준동 때문에 그의 퇴임을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시카고=AFP 연합뉴스


이 책을 열고 미국 출간연도부터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2008년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첫 대선에서 승리한 그 해다. 고로 이 책에는 당시 대선 과정에서 ‘다음 대통령은 로버트의 못 다 이룬 꿈에 도전해야 한다’는 진보 진영의 강력한 요청, 오바마 전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좌절 등 당선 이후 진보진영이 품은 복합적인 감정, 현재 민주당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둘러싼 노선갈등의 속살 같은 것들이 녹아 있다.

50여년 전 로버트가 지금까지도 불려 나오는 건 ‘진정성’을 보여준, 두루두루 좋은 얘기 적당히 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핵심 이슈에 제 한 몸을 정면충돌시킨 마지막 정치인으로 꼽힌다는 점 때문이다.




책에서도 다뤄지지만,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당한 1968년 4월 4일 밤 인디애나폴리스의 흑인 밀집 지역에서 그가 행한 연설은 미국 정치사에서 진보 정치란 무엇인가를 보여준 ‘섬광’ 같은 순간으로 기록돼있다.

킹 목사 암살 소식이 전해지면 엄청난 폭동이 예상되던 그 곳에, 경찰마저 그 어떤 책임도 질 수 없다며 모두 철수해버린 그 곳에, 형이 죽는 걸 지켜본 수많은 사람들이 말리던 그 곳에, 로버트는 맨 몸으로 뛰어들어 킹 목사의 죽음을 알리는 연설을 강행했다.




라스트 캠페인

라스트 캠페인


마케팅 전문가, 이미지 컨설턴트 등이 만든 ‘작전계획’에 맞춰 의도적인 우클릭 몇번, 좌클릭 몇번 재는 게 아니라, 문제가 거기 있다면 위험과 논쟁과 갈등을 마다하지 않고 그 곳으로 뛰어드는 정치인이었다는 얘기다. 당장 눈 앞의 이해득실에 개의치 않는 결기를 지닌 정치인에 대한 그리움이, 미국에도 진하게 남아 있는 것이리라.

그 때도 지금도 미국 정치판에선 이례적이라는 로버트의 그 전투적 진정성이, 지금까지도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건, 그것이 흑인, 히스패닉계, 인디언, 애팔래치아 산맥 일대의 가난한 백인 등을 위한 것이어서다.

작금의 이 날선 공방이 공허한 건 그 때문이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사회적 약자 보호 대책을 두고 제안과 토론이 있어야 할 이 때에, 고작 군대 휴가 문제나 따지고 있는가. 장혜영 의원의 연설은 폼 내느라 현장감을 잃었다. 누구를 타도해야 이 두려움이 사라지는지 알 수 없는 두려움이라니. 타도 대상이 바로 거기 눈 앞에 뻔히 있지 않던가.

[기자사진] 조태성

[기자사진] 조태성


조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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