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배달 음식을 자주 시켜 먹는다. 외식이 어려워지니 집에서 다양한 음식을 먹는 방법으로 배달을 선택한다. 먹는 일 외에는 즐거움을 만들기 어려운 시기이기도 해서다. 집을 사무실 삼아 온종일 일하고 밥을 차려 먹고 설거지를 하다 보면 저녁 식사 정도는 나의 노동력을 최소한으로 투입해서 먹고 싶어지기도 한다. 배달음식이 건강에 나쁘다거나 하는 부작용은 나중 문제다. 내 노동력을 약간 아끼기 위해 다른 사람의 노동력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배달 음식을 주문해 먹고 나면 오늘도 사 먹었다는 후회보다, 어마어마한 플라스틱 쓰레기로 인한 죄책감이 밀려온다.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걸 알면서도 배달 음식을 선택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다. 2인 가구인 우리 집의 경우 일주일이나 열흘 동안 모아 한 번만 내다 버리면 충분했던 재활용품 쓰레기가 이제는 사흘에 한 번은 내다 버려야 할 지경이 됐다. 남기는 음식물이 많지 않은 것만이 다행한 일이다. 코로나19 이후 배달 음식을 자주 시켜 먹게 된 건 나뿐만이 아니라서, 통계청에 따르면 온라인 쇼핑에서 배달음식 거래액은 올해 1~7월 누적 8조6,574억원을 기록했고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3.6% 늘었다고 한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너무 많이 나와서 수거 업체가 도리어 손해를 보는 상황이라는 기사도 봤다.
여름의 끝자락에 50일 이상 내리던 비, 그리고 코로나19 등 기후 위기가 당장 내 문제라는 것을 감각하면서도 ‘풍요로운 삶’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요즘, ‘랩걸’을 쓴 과학자 호프 자런의 신작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를 읽게 됐다. 책은 전 세계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그래서 최대치의 풍요로움을 누리는 전 세계 인구의 10%가 어떻게 나머지 90%의 삶을 점점 더 위험에 빠뜨리는지 이야기한다. 한쪽에서는 음식물이 남아돌아 고스란히 쓰레기가 되고, 다른 한쪽에는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지구의 온도 상승을 유발하는 원인을 주로 제공한 곳과 그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를 보는 곳이 같지 않다. 어렴풋이 알았던 사실을 데이터를 통해 구체적으로 눈앞에 들이미는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이 부분에서 특히 충격을 받았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 집을 떠나 일을 하고 또 일하고 일하는 것은, 이런 공급의 엄청난 전 세계적 연결을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해서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이루어낸 모든 것의 40퍼센트를 쓰레기통으로 던져 넣는다.”
버려지는 음식이 너무나도 많아 결국 우리가 쓰레기에 노동을 허비하고 있다는 지적이었지만, 음식물 쓰레기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노트북 앞으로 출근하고, 늦은 시간까지 차를 운전하고, 빵을 만들고, 요리하고, 아무튼 수많은 다양한 노동이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해 이루어지는 거라면, 기후 위기가 점점 더 심각해지는 지금 우리가 쓰레기에 노동을 허비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동안 일이 너무 힘들 때마다 나는 종종 이런 질문을 떠올렸다. ‘뭐 때문에 이렇게까지 일하고 있지?’ 이제는 이 질문을, 다른 때에도 떠올려볼 생각이다. ‘내 손으로 내가, 우리가 사는 곳을 망칠 거라면, 뭐 때문에 이렇게까지 일하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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