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 마곡산업단지. '산업' '단지'란 말에 걸맞게 네모 반듯한 빌딩들이 줄이은 이 곳에 최근 동그스름한 건축물이 들어섰다. 지난 16일 문을 연 미술관 ‘스페이스K(서울)’다. 스페이스K는 코오롱그룹이 인근에 신사옥을 지으며 기부채납 형식으로 지은 서울 서남부 지역 첫 공공미술관이다.
둥그스름한 미술관은 각진 마곡의 풍경을 바꿔놨다. 미술관 부지 자체는 도시개발계획에 따라 8,298㎡(약 2,510평) 규모로 평평하게 조성된 공원 안에 있다. 하지만 건축가는 이곳에 4개의 언덕을 만들었다. 언덕처럼 완만한 경사가 있는 미술관과 흙을 쌓아 올려 잔디와 나무를 심은 3개의 언덕이다. 올록볼록한 언덕들은 주변 도로와 상업시설을 자연스럽게 가리면서 사람들의 시선과 발길에 재미를 더한다.
설계를 맡은 매스스터디 대표 조민석 건축가는 "서울 인사동이었다면 이렇게 설계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도시계획에 따라 잘 구획된 신도시에서 새로운 흐름을 부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공원은 별도 출입구 없이 사방으로 연결돼 있다. 네 언덕 사이로 자연스럽게 길이 연결돼서다. 자유롭게 공원을 드나들며 미술관과 우연찮게 마주치게 하기 위한 장치다. 미술관 또한 동선을 방해하지 않는다. 우회해서도, 통과해서도, 오르내리면서도 미술관을 지나갈 수 있다.
“여기처럼 사각형으로 구획된 공원을 걸어갈 때 사람들을 대개 가로지르는 지름길로 가고 싶어해요. 그 자연스러운 사람들의 동선을 기하학적인 호(弧)로 풀어내 반영했어요. 공원을 향해 평면으로 그려지는 호, 미술관 입구에 수직으로 드리워진 호, 미술관 상부 옥상정원의 경사가 만드는 호 같은 3개의 둥근 호를 중심으로 미술관도 공원의 일부처럼 느껴지도록 하는 거죠.”
미술관의 다양한 얼굴도 여기서 나왔다. 도로 모서리 쪽에선 높이 11m의 날카로운 직선이 맞닿은 사각형처럼 보이지만 공원 내부에서는 27m에 달하는 낮고 긴 곡선을 가진 타원형으로 보인다. “집이나 직장은 오래 머무르는 곳이라면 공원과 미술관은 누구나 오가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공간이에요. 사진 한 장으로 설명되는 ‘인스타 성지’보다는 사람들의 오감을 자극하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660㎡(약 200평)규모의 전시장은 기둥 없는 하나의 공간이다. 외부 형태를 따라 내부 벽은 둥글고 천장 높이는 3.3m에서시작해 최대 9.2m까지 높아진다. 전시 연출의 폭은 높이 만큼이나 커진다.
마침 개관전으로 기획된 ‘일그러진 초상’ 전시에는 글렌 브라운, 안드레 부처, 아드리안 게니, 이불 등 세계적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이장욱 스페이스K 수석큐레이터는 “미술관이 매개가 돼 사람들이 쉽고 편안하게 미술을 즐길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무실이 있는 2층은 옥상으로 바로 연결된다. 옥상 한쪽에는 정원이, 한쪽에는 계단식 공연장이 있다. 기존 관념을 깨는 파격적 현대미술 작품을 잘 포용할 수 있는 가변적 공간을 목표로 했다. "가벽을 세우고 암막도 쓰고, 자유자재로 활용해서 저 조차 올 때마다 놀라는 미술관이 됐으면 합니다.”
스페이스K뿐 아니다. 마곡지구엔 독특한 건축물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2018년 모포시스 건축사무소가 설계한 코오롱의 원앤온리 타워를 비롯, 지난 5월 완공된 서울식물원(더시스템랩ㆍ삼우건축)과 이대서울병원(정림건축)에 이어 2022년에는 일본 출신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LG아트센터가 들어선다. "이 모든 것이 도시 내에 문화 생태계를 살리는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며 조민석 건축가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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