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넷플릭스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
편집자주
극장 대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작품을 김봉석 문화평론가와 윤이나 칼럼니스트가 번갈아가며 소개합니다.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 에 연재됩니다. 한국일보>
인간은 왜 인간을 죽이는 것일까. 초등학생 때 ‘셜록 홈즈’를 만나고 아가사 크리스티와 엘러리 퀸의 추리소설 등을 읽으면서도 늘 궁금했다. 보통 추리소설은 밀실이나 알리바이, 정교한 트릭을 통해 독자가 생각하게 만든다. 탐정, 형사가 증거를 통해 범인을 추리하듯 독자도 게임에 참여한다. 흥미로운 논리 게임이자 멋진 승부가 된다.
하지만 나는 이유가 더 궁금했다. 살인사건이 벌어지면 동기는 보통 돈 아니면 치정이라고 했다. 은밀하게 사람을 죽이는 이유는 대체로 돈을 갈취하려 하거나 배신과 질투에서 비롯된 뒤틀린 집착이거나.
주변 사람을 먼저 조사하고, 관계를 파고드는 이유다. 그런데 동기는 점점 복잡해진다. 쾌락살인도 존재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겨우 그런 정도로 사람을 죽이나’를 보여주는 소설을 쓰기도 했다. 사소한 감정이나 사건으로 시작하여 점점 증폭되고 뒤틀리며 살인에까지 이르는 것.
혹자는 인간에게 살인 DNA가 있다고도 한다. 어째서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은 것일까. 크로마뇽인과 네안데르탈인은 유럽 지역에서 같은 시기에 함께 살고 있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생존을 위해 다른 종을 모두 죽여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경쟁 상대를 모두 죽여 두려움에서 벗어났다.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한 살인의 기억이 만들어낸 유전자가 지금은 주변의 타인을 죽이는 것이 아닐까. 범죄물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동기가 궁금해서. 나아가 인간이 대체 무엇인지 궁금해서.
넷플릭스에는 좋은 범죄드라마도 많고, 범죄를 다룬 다큐멘터리도 다양해서 만족스럽다. 살인자들을 인터뷰한 ‘나는 살인자다’, 실제 형사가 등장하여 가장 인상적인 사건을 말해주는 ‘리얼 디텍티브’, 1970년대의 살인마 테드 번디의 범행과 재판 과정을 보여주는 ‘살인을 말하다:테드 번디 테이프’, 기이하고 사악한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는 ‘이블 지니어스:누가 피자맨을 죽였나’ 등등.
올 초에 공개된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는 미제사건을 다룬 6부작이다. 편마다 하나의 사건을 다룬다. 1편 ‘옥상의 미스터리’는 시나리오 작가가 갑자기 사라진 후 도심의 호텔에서 발견된 사건을 다룬다. 고층에서 뛰어내려 중간 옥상을 뚫고 건물 안에서 발견되었다. 왜 호텔로 갔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밝혀내지 못했다. 황급히 집을 떠나기 전 이상한 메시지를 감추고 갔는데 누구도 풀지 못했다. 음모론이 나올법한 사건이다.
2편 ‘13분 사이에’는 미용실 주인이 친구와 통화를 끊고 손님이 찾아오기까지 13분 사이에 사라진 사건을 추적한다. 4편 ‘파티는 끝났는데’는 백인들의 마을에서 열린 파티에 갔다가 실종되고 살해된 채 발견된 흑인 청년의 사건이다. 모두 범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사건을 되짚어보고, 새로운 단서들을 따져본다.
반면 6편 ‘사라진 목격자’는 범인이 누구인지 거의 확실하나 증거를 찾을 수 없는 사건이다그자비에 친엄마가 계부를 살해했다고 고백했던 소녀가 얼마 후 철회한다. 그리고 몇 년 뒤, 성인이 된 그녀가 실종된다.
5편은 약간 뜬금없다. ‘UFO를 만난 사람들’. 1969년 9월 1일, 매사추세츠주 버크셔에서 주민 몇 명이 이상한 경험을 한다. 대단히 밝은 빛을 보고, 거대한 공중의 물체를 보고, 납치된 기억이 있고 등등. 그들은 한 장소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아는 사이도 아니다. 어떤 가족은 목격담을 이야기했다가 따돌림을 당하고 마을을 떠났다. 어떤 어머니와 아들은 집안과 마당에서 동일한 경험을 했지만 그동안 사건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작진은 버크셔의 곳곳을 다니며 50년간 침묵을 지켜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아무 것도 증명할 수 없지만, 그들의 ‘증언’은 서로 일치하고 같은 경험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모두 궁금증을 자아내는 사건이었지만, 3편 ‘공포의 집’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대서양 연안의 평화롭고 문화적인 대도시, 프랑스 낭트. 2011년 4월, 뒤퐁가의 일가족이 살해당한다. 그자비에 뒤퐁 드리고네스 백작의 아내 아녜스, 대학생인 장남 아르튀르와 차남 토마, 사립 가톨릭학교에 다니는 장녀 안과 막내아들 베누아. 귀족 가문인 뒤퐁가는 누가 보아도 화목하고, 쾌활하며, 멋진 가족이었다. 그자비에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다정하고 편안한 사업가이고, 아녜스는 가톨릭 학교에서 일했다.
시작은 평이했다. 4월 11일, 집에 인기척이 없는 것을 본 이웃이 신고했다. 경찰이 문을 열고 들어가 봤지만 사람이 없을 뿐 이상한 점은 없었다. 14일에 그자비에와 아녜스가 보낸 편지가 도착했다. 갑자기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사실 미국 마약단속국의 비밀요원이었고, 그래서 아무에게도 연락할 수 없었다는 것. 아녜스의 가족은 믿지 않았고 다시 경찰에 수사 요청을 했다. 15일부터 매일 뒤퐁가를 수색한 경찰은 마침내 21일 테라스 아래에 묻힌 일가족을 발견한다. 남편만 그곳에 없었다.
그자비에가 아내와 아이들을 살해하고 사라졌다. 왜? 몇 가지 이유가 나온다. 2000년대 초반 미국 이주를 시도하다가 실패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자비에는 능력 있는 사업가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사실 수익이 난 사업은 하나도 없었다. 조만간 살고 있는 집을 날릴 수도 있었다.
그러던 중 2011년 1월 20일 부친이 사망한다. 그자비에는 아버지가 살던 아파트에 가서 귀족의 인장 반지와 남겨진 재산을 찾는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미 파산 상태였고 아파트도 임대였다. 백작의 말년은 질병과 외로움과 빈곤뿐이었다. 그자비에가 찾은 것은 22구경 라이플뿐이었다. 그는 바로 총기 면허를 획득하고 사격 훈련을 시작한다. 3월 12일에는 소음기를 구입한다. 그의 가족은 모두 22구경 라이플에 맞아 사망했다.
아버지인 그자비에의 범행이라는 것이 확실해지는 순간, 가슴이 답답했다. 16살 때부터 알았다는 친구는, 그자비에가 대단히 상냥하면서도 용기 있는 남자라고 말한다. 미혼모 아녜스와 기꺼이 결혼했고 아이를 입양했다. 귀족으로서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으로서도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언제나 아내, 아이들과도 친밀하고 다정했다. 그들 가족에게 문제가 있다고 본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살인자의 본성이 숨어 있었던 걸까, 어느 순간 변해버린 것일까.
문득 한 사건이 떠올랐다. 명문대를 나오고 대기업을 다니던 남자가 퇴직 후 사업을 하다 망하자, 일가족을 살해하고 자살한 사건. 수억원대의 고급 아파트가 여전히 있었지만,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자비에도 그랬을까. 긍지가 높고, 자존심도 강한 남자. 실패자로 드러나는 것이 싫었고, 아이들이 겪어야 할 수치심이나 곤경을 원하지 않았다. 결국 그자비에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자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알 수가 없다. 궁지에 몰린 것은 분명하지만, 너무나 ‘좋은’ 남자였던 그는 왜 그런 끔찍한 선택을 했을까. 무엇보다 왜 그는 도망을 치고, 혼자만 살아남은 것일까. 보통 가족을 모두 살해한 가장은 마지막에 자살한다. 자신이 죽은 후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갈 것이라 생각하며 먼저 가족을 살해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중심적이고, 가족을 소유물로 생각한다.
그런데 그자비에는 살인 후, 마지막 여행의 흔적을 유유자적 남기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그는 어디로 가서, 지금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친구는 말한다. ‘매일 밤, 매일 아침 그가 어떻게 거울을 보면서 이를 닦고 면도를 하며 사랑하는 아이들을 떠올릴까. 그렇게 사랑했던 아이들을.’
‘공포의 집’에서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는 그자비에의 행방이 아니라 마음이다. 그는 대체 어떤 마음이었던 것일까. 사건이 있기 전, 누가 보아도 거의 완벽하게 좋은 남자였던 그는 정말로 어떤 인간인 것일까. 착한 남자인 그자비에는 궁지에 몰리면서 마음의 심연에 있던 무엇이 표면에 드러난 것일까? 아니면 그동안 악한 마음을 감추고 ‘백작’에 걸맞는 역할을 연기해 온 것일까? 그 마음이 무엇인지, 그 마음은 어떻게 흘러온 것인지, 나는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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