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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저금리인가

입력
2020.09.18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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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이번 달 초 난생 처음 공모주 청약이라는 걸 해봤다. 모두가 예상하는 그 회사, 카카오게임즈에 말이다. 카카오에 게임 계열사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지만, 그런 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SK에 바이오 계열사(SK바이오팜)가 있었나 주저하는 사이 '대박' 기회를 놓치지 않았나.

A증권사에 주식계좌를 만들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돈을 죄다 끌어 모았다. 적어도 10주는 배당 받지 않겠나 기대를 했는데,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생각이었나 보다. 이틀 동안 58조원의 청약증거금이 모여 SK바이오팜의 기록(31조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결국 손에 쥔 건 2주. 다행히 주가는 '따상상'(공모가 2배+2거래일 연속 상한가)까지 올라갔고, 상장 이틀째 '전량' 매도해 8만원 가량 수익을 남길 수 있었다.

월급쟁이가 된 후 줄곧 예적금만 해오다 ‘투자’의 세계에 발을 들인 것은, 대부분 그렇듯 은행 이자가 너무 형편없어서다. 부동산도 오르고 주가도 오르는 ‘자산버블’의 시대에 아무 것도 안 하면 손해 아니냐는 조바심도 들었다. 일종의 '패닉바잉'(불안감에 쫓긴 구매)인 셈이다.

하지만 투자의 뒷맛이 개운치만은 않다. ‘꽁돈’에 가까운 8만원을 벌기는 했지만, 말이 좋아 청약이지 ‘돈 놓고 돈 먹기’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현금이 많을수록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부자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구조다.

지난 7월 SK바이오팜 공모주 청약도 그랬다. 1억원을 넣어 16주를 받은 투자자가 고점에서 주식을 팔았다면 240만원 가량 수익을 봤을 것이다. 투자금이 10억원이라면 2,400만원, 50억원이 넘으면 수익은 '억대'로 불어난다. 실제로 억 단위 ‘잭팟’을 터트린 자산가들이 적지 않다는 게 증권가의 정설이다.

사실 공모주 청약만 그런 건 아니다. '돈이 돈을 불리는' 상황은 최근 몇 년간 익숙한 풍경이 됐다. 2017년께부터 본격 상승한 부동산 가격이 대표적이다. 종잣돈이 있어야 매입이 가능한 부동산 자산의 가파른 오름세는 시장에 진입한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 사이의 극명한 양극화를 불러왔다. 부동산에 규제가 심해지자 올 들어서는 그 불길이 금융시장으로 번진 형국이다.

이 상황의 근원에는 저금리가 있다. 한국은 2015년 이후 1%대 기준금리를 이어오다 올해 들어 0.5%까지 내려갔다. 경제이론에 따르면 금리를 낮추는 것은 자산가격 상승이 소비와 설비투자로 이어지게 하기 위해서다. 코로나19 사태 같은 비상 상황에선 위기에 빠진 가계와 기업에 숨통을 터주려는 목적도 있다.

하지만 저금리로 풀린 막대한 시중 자금이 실물경제로 가지 않고 부동산ㆍ주식 등 자산시장으로 쏠리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취약 계층을 돕고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저금리 정책이 애초 기대했던 효과를 내지 못한 채 부자들의 자산 증식을 도와 부의 양극화만 확대시키고 있는 셈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금력이 부족한 젊은 세대들이 보다 못해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음)과 ‘빚투’(빚내서 주식 투자)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가계부채는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이쯤되면 온 나라가 '돈 놓고 돈 먹기'에 빠진 투기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저금리인가. 이제라도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기자사진] 유환구

[기자사진] 유환구


유환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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