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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밉던 경찰이 아내를 살렸다... 마음 속 미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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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밉던 경찰이 아내를 살렸다... 마음 속 미움 버렸다"

입력
2020.09.16 18:51
수정
2020.09.16 21:56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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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상연합회 때 분신하고 백골단과 대치했던 인물
극단적 선택 암시 한 아내...3시간 수색 끝에 발견
안산단원 대부파출소 직원들 장대비 속 우산도 없이 끝까지 포기안한 모습에 감동
박씨 "경찰에 평생 감사하며 아내와 열심히 살 것"

경기남부경찰청 전경. 임명수 기자

경기남부경찰청 전경. 임명수 기자

“경찰이 내 인생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상상도 못 해 봤습니다.”

16일 오전 본보와 통화한 박호규(60)씨는 경찰에 대한 자신의 고정관념이 바뀐 이유를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하며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박씨에게 경찰은 맞서 싸워야 할 존재, 주적이었다.

그의 직업이 과거에는 전국도시노점상인연합회 회원이었고, 현재는 장애인기업연합회 중앙위원이다. 시민단체 등에 가입돼 집회와 시위로 경찰과 대치하며 늘 공격의 선봉에 섰던 인물이다.

과거 백골단(1980∼1990년대 시위 군중을 진압하고 체포하기 위해 구성된 사복경찰관)의 곤봉에 맞서 돌을 던지기도 했다. 1989년 7월 22일에는 명동성당 일대에서 당국의 노점상에 대한 무차별 단속에 항의해 돌을 던지며 시위를 하다 분신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그 일로 목숨은 건졌지만 장애3급 진단을 받았다.

그는 “백골단 XX들은 늘 사람만 때리고, 공권력을 앞세워 서민을 탄압하는 조직”이라고 항상 비판해 왔다고 한다.

죽도록 밉고, 때려도 시원찮은 경찰이 고마움의 대상으로 바뀐 것은 지난 9일 아내의 극단적 선택 때문이다.

37년간 함께해 온 아내(59)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경영악화로 운영하던 점포를 접으면서 빚만 늘어나게 되자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문자를 보내왔다.

박씨는 “아내가 지난 9일 오후 4시26분쯤 ‘너무 미안해 차는 그 바다에 있어요, 보험료로 해결하세요’라는 메시지를 남겨 곧바로 전화를 했는데 흐느껴 울고 있었다”며 “전화가 끊겨 다시 했지만 받지 않아 112에 신고했다”고 긴박했던 당시를 전했다.

위치 추적 결과 박씨 아내가 마지막으로 통화한 곳은 경기 안산시 대부도 낙조전망대 인근 야산이었다.

박씨는 “택시를 타고 현장으로 갔는데 장대비가 쏟아져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며 “그럼에도 경찰은 우산도 없이 그 험한 야산을 뛰어다니며 아내를 찾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내가 저명인사도 아닌데 파출소장부터 퇴근도 미룬 직원 등 경찰관이 모두 아내를 찾는 모습에 울컥했다”고 말했다.

당시 수색은 안산단원경찰서 대부파출소 직원들이 투입됐다.

아내를 찾은 건 수색 3시간여 만인 오후 7시30분쯤. 야산 등산로 중간 지점에 쓰러진 상태로 발견됐다. 굴러 떨어진 듯 얼굴엔 크고 작은 상처가 있었고, 저체온증으로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박씨는 “파출소 직원들이 그렇게까지 나서지 않았다면 아내는 저체온증으로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됐을 것”이라며 “비를 맞으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아내를 찾아 준 경찰에 너무나 감사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과거 경찰을 비방했던 모습이 부끄럽다. 경찰에 대한 미움과 비판은 앞으로 없을 것"이라며 "평생 경찰에 감사하며 아내와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다시금 감사인사를 전했다.

임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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