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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의 역설... 천 년 만에 도약 꿈꾸는 'Green Land'

입력
2020.09.26 14:0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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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세기 인구 늘었지만 기온 낮아져 얼음 뒤덮여
강대국 군사 요충지 싸움판에 경제 독립도 못해
빙하유실 속도 빨라지며 '희토류' 대량 매장설도

편집자주

오늘날 세계경제는 우리 몸의 핏줄처럼 하나로 연결돼 있습니다. 지구촌 각 나라들의 역사와 문화, 시사, 인물 등이 ‘나비효과’가 되어 일상에까지 영향을 미치곤 합니다. 인문학과 경영, 디자인, 사회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경제학자의 눈으로 세계 곳곳을 살펴보려는 이유입니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가 <한국일보> 에 3주에 한번씩 토요일 연재합니다.


그린란드의 두꺼운 얼음층 윗부분이 녹은 상태에서 썰매개들이 발목 깊이의 물 위를 지나고 있다. 개들이 물 위를 달리는 듯한 착시를 일으키는 이 사진은 작년 6월 덴마크기상연구소의 스테펜 올센 연구원이 그린란드 북쪽에 설치해 놓은 장비를 수거하러 가던 중 찍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린란드=AP/뉴시스

그린란드의 두꺼운 얼음층 윗부분이 녹은 상태에서 썰매개들이 발목 깊이의 물 위를 지나고 있다. 개들이 물 위를 달리는 듯한 착시를 일으키는 이 사진은 작년 6월 덴마크기상연구소의 스테펜 올센 연구원이 그린란드 북쪽에 설치해 놓은 장비를 수거하러 가던 중 찍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린란드=AP/뉴시스

<10>날씨가 국가 운명을 바꾼 나라, 그린란드

그린란드는 캐나다 북쪽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큰 섬이다. 면적이 217만㎢로 멕시코보다 크다. 표면의 84%가 빙하로 둘러 싸여 있고 인구도 원주민 이누이트족이 대부분으로 5만6,000명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내수경제가 미약하고 특정 산업이 성장하거나 경제활동을 하기는커녕 사람이 살기조차 어려울 만큼 척박한 땅이다.

더구나 사법권과 경찰권 등 나름의 자치권을 행사하곤 있지만 실제 땅의 소유권은 18세기 초부터 덴마크에 편입돼 있다. 그린란드라는 이름으로 국제사회에 등장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그린란드가 국제 뉴스에 등장하는 횟수가 늘었다. 지구온난화라는 세계 공통의 이슈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데다 미ㆍ중 간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지정학적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어서다.

1년간 빙하 5320억톤 녹아

사실 그 동안 그린란드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은 싸늘했다. 긴 겨울과 혹한을 이겨 내야 하는 그린란드 주민들은 술을 가까이 한다. 이 영향 때문인지 자살이나 알코올 중독, 실업, 가정폭력과 성폭력 등 사회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다. 전체 인구 중 3분의 1이 유년기에 성적 학대를 경험한 바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자살률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럼에도 세계가 그린란드를 주목하는 것은 지구온난화 때문이다. 그린란드의 만년 빙하가 가파른 속도로 녹아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2019년 한 해 동안 그린란드에서 녹은 빙하는 5,320억톤으로 한반도 면적의 2배 정도를 1.25m 높이의 물로 채워 놓은 규모다. 이는 최근 16년간 평균 유실량의 2배 수준이다.

그린란드 빙하가 전부 다 녹아 버리면 지구 해수면은 6m 가까이 상승한다. 런던과 도쿄, 상하이, 홍콩 등 해안가 혹은 저지대 도시들이 영향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해발고도가 0m에 가까운 삼각주에 위치한 곡창지대나 거주지역이 수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때문에 그린란드의 빙하가 얼마나 녹느냐가 전 지구적 관심 대상으로 떠오른 상태다.

재미있는 사실은 인류가 처음 그린란드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기후변화 때문이었다는 점이다. 10세기 후반부터 11세기까지 북유럽의 바이킹족 5,000여명이 그린란드로 건너가 터전을 잡았는데, 이들은 바다표범을 사냥하거나 소나 양을 방목하고 작물을 재배하면서 살았다. 당시만 해도 지구가 온난기여서 일부 땅에선 풀이 자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당시 지배계층은 그린란드에 더 많은 사람들을 유입시켜 세력을 확장하고 싶어 했고, 그래서 생각한 것이 ‘그린란드(green land)’라는 이름이다. 하지만 15세기 들어 소빙하기가 도래하며 지구 기온이 다시 낮아져 그린란드에선 더 이상 소나 양을 키우기 어려워졌다. 북유럽인들은 대부분 선조들의 고향으로 돌아갔고, 그린란드에는 바다표범과 고래 사냥을 기반으로 생활하는 이누이트족만이 남게 된다.

2019년 이상 온난 기후로 그린란드의 얼음이 기록적으로 녹아내려 그 양이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1.25m 이상의 물로 덮을 정도라는 연구 결과가 지난달 20일 발표됐다. 2019년 8월16일 그린란드 쿨루스크 인근에 떠다니는 빙하. 새크라멘토=AP/뉴시스

2019년 이상 온난 기후로 그린란드의 얼음이 기록적으로 녹아내려 그 양이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1.25m 이상의 물로 덮을 정도라는 연구 결과가 지난달 20일 발표됐다. 2019년 8월16일 그린란드 쿨루스크 인근에 떠다니는 빙하. 새크라멘토=AP/뉴시스


강대국 사이 전략 요충지로 떠올라

그린란드가 관심을 받는 또 다른 이유는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라서다. 그린란드는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까지 3,600km 거리에 있다. 특히 미사일 기지를 설치하는 데 최적지로 꼽힌다. 북극권을 지나 미국으로 향하는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지나는 최단 경로가 그린란드이기 때문이다.

일찍부터 이 사실을 깨우친 미국은 냉전 시대 이전부터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덴마크와 군사방위조약을 체결했다. 1953년부터는 그린란드에 툴레공군기지를 운영해오고 있고, 미사일 조기경보체계와 우주 감시 체계도 가동 중이다.

미국와 함께 G2 국가로 부상 중인 중국 역시 호시탐탐 그린란드로의 진출을 노리고 있다. 중국이 적극 추진 중인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만 봐도 그린란드는 북극 실크로드 경로에 포함되어 있다. 중국이 최근 그린란드에 공항을 건설하기 위한 자금을 지원하려고 하자, 미국 정부가 이를 무산시킨 바 있다.

최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군사력 증강을 추진하면서 그린란드는 러시아를 견제할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로 다시 부각되고 있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덴마크 정부에 그린란드를 구매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중남미에 위치한 미국령 푸에르토리코를 줄 테니 그린란드와 맞바꾸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최근엔 인구 2만명도 안 되는 그린란드 주도(主都) 누크에 미국 영사관을 다시 설치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사실 그린란드에 대한 미국 대통령의 관심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867년 앤드루 존슨 대통령도 그린란드를 매입하려는 시도를 한 바 있으나 실패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엔 트루먼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1억달러에 매입하겠다고 제안했으나 덴마크의 거부로 성사되지 못했다. 실제로 면적 346.36㎢의 버진 아일랜드는 원래 덴마크의 식민지였으나 1917년 2,500만달러에 매입해 지금까지 미국령이다.

동토층 아래 희토류... '자원의 보고'로 주목

역설적이게도 지구온난화 여파로 그린란드의 경제적 가치가 재평가되는 분위기다. 빙하층이 얇아지면서 동토층 밑에 무엇이 묻혀있는지에 대한 탐사가 본격화되었는데, 반도체와 레이저 등 첨단 제품 생산에 필수 원자재인 희토류가 다량 매장돼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다. 그린란드 남서부 일대에 1,000만톤 정도가 매장돼 있다는 추정치가 사실이라면, 전 세계 희토류 수요량의 4분의1 가량을 대체할 수 있다.

현재 희토류는 전세계 생산의 80%를 중국이 생산하고 있다. 미중 간의 무역 갈등이 점차 고조되면서 미국 입장에서는 희토류를 수급받을 수 있는 다른 대안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린란드에 막대한 양의 희토류가 매장되어 있다면 미국 입장에서는 그린란드를 점유하는 것이 국제사회에서 전략적 우위를 유지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인 셈이다. 그린란드는 이밖에 다이아몬드와 금ㆍ납ㆍ아연ㆍ우라늄 등도 풍부하다.

이러한 위상 변화 때문인지, 그린란드는 덴마크의 영향력을 벗어나 완전한 정치적 독립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그린란드는 1721년부터 덴마크 식민지 아래 놓여 있었으며, 1953년에 식민지 상태를 벗어나긴 했지만 덴마크 왕국에 편입됐다. 2009년에 이르러서야 국방과 외교권을 제외한 자치권을 확보했지만, 아직도 경제적인 측면에선 독립국가라 보기 어렵다. 어업과 관광업에만 의존하는 구조이다 보니, 덴마크로부터 받는 연간 34억크로네(약 6억3,700만달러)의 보조금으로 국가재정의 3분의 1을 충당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 중세시대처럼 날씨가 온난해지면서 다시 많은 사람이 터 잡고 살 수 있는 땅의 면적이 넓어지고 있다. 그란란드에 매장되어 있는 다양한 천연자원에 관심을 두고 투자를 희망하는 나라도 늘고 있다. 이는 그린란드에 많은 사람이 이주해 생활할 수 있는 중요한 터전을 제공해 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선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 온난화가 그린란드인들에게는 1,000년 만에 찾아온 또 다른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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