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고교 3학년 모의평가에 이런 문제가 출제된 적이 있었다. 'The skillful mechanic has been replaced by a teenager in a uniform [who/which] doesn't know anything about cars'. 관계대명사절이 어떤 선행사를 받는 것인지 맞는 관계대명사를 고르는 문제다. 영어 선행사는 대부분 관계대명사 바로 앞에 오지만 이 경우 'uniform'은 뒤의 설명과 어울리지 않는다. 관계대명사와 떨어져 있어도 전치사구 수식을 받는 'a teenager'가 선행사가 된다.
□북미 협상의 이면을 담은 밥 우드워드의 신간 '격노(Rage)'의 한 대목 해석이 논란이다. 2017년 북미 군사 충돌 위기감이 번지던 당시를 설명하며 우드워드는 'the U.S. response to an attack that could include the use of 80 nuclear weapons'라고 썼다. 여기서도 선행사가 문제다. 관계대명사(that) 바로 앞에 오는 'attack'을 선행사로 보면 북한이 핵공격 하는 것이고, 떨어진 'response'를 선행사로 생각하면 미국의 핵무기 사용이 된다.
□이 문장 직전 트럼프 정부가 핵무기 사용을 고민한 내용이 등장하므로 'response'를 선행사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모의시험처럼 관계대명사 앞 'attack'이 선행사가 될 다른 말을 꾸미는 게 아니므로 문법적으로는 'attack'을 선행사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내용 호응인데 미국의 핵공격이라면 갑자기 '80개'라는 표현이 왜 나왔는지 알기 어렵다. 우드워드가 앞서 북한의 핵무기를 '수십 개'라고 했으니 북한 쪽이 더 어울리긴 하지만 '80'은 현재 추정 최대치이지 2017년과 맞지 않다.
□어느 번역이 맞는지는 우드워드에게 물어보면 풀릴 것이다. 이해 못할 것은 엇갈린 해석이 가능한 이 문장을 왜 우리 언론의 99%는 한결같이 미국의 공격으로 번역했느냐는 점이다. 북한이 핵을 사용할 리 없고 트럼프는 여차하면 핵공격도 불사할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인가. 이 번역을 포함한 첫 기사를 너도나도 베끼다 벌어진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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