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 '정책서민금융상품 평가와 개선방안' 보고서
"신용상태 개선 없인 고금리 대출 다시 쓰는 악순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부는 신용등급이 낮은 서민을 대상으로 햇살론, 새희망홀씨 등 다수의 '정책서민금융상품'을 내놓았다. 제도권 금융사를 이용하기 어려운 이들이 대부업체 등에서 고금리 대출로 고통 받자, 정부가 저리 대출을 제공해 기존 대출을 갚도록 돕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런 ‘착한 정책’이 정작 서민의 채무구조 개선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서민금융상품 이용자들이 현금서비스 같은 고금리 대출을 줄이는 효과는 단기간에 그쳤고, 이들의 채무조정 시기를 다소 늦췄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오윤해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15일 이 같은 내용의 ‘정책서민금융상품에 대한 평가와 개선방안’ 보고서를 발표했다.
오 연구위원은 서민금융상품 이용자의 '고금리' 카드론 이용 잔액이 감소했는지, 서민상품을 이용하지 않은 대조군과 비교했다. 그 결과 햇살론, 새희망홀씨 이용자들이 고금리 대출을 줄이는 효과는 단기간에 그쳤고, 1년 가량 지나면 오히려 더 많은 고금리 대출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서민금융상품 이용자가 햇살론을 받기 한 달 전 갖고 있던 카드론 잔액은, 햇살론을 받은 직후 서민금융상품을 이용하지 않은 대조군의 카드론 잔액보다 90만7,000원 줄었다. 하지만 이 차이는 햇살론 이용 6개월 후에는 25만8,000원으로 축소됐고, 이용 1년이 지난 시점에는 오히려 햇살론 이용자가 9만원 이상 카드론 대출을 더 받았다. 햇살론을 빌려 당장은 기존 카드론을 갚았지만 1년 뒤에는 과거보다 더 많은 돈을 빌렸다는 의미다.
마찬가지로 새희망홀씨 이용자 역시 대출 직후 한 달 전 가지고 있던 108만5,000원의 카드론 대출을 갚았지만, 1년이 지난 시점에는 새희망홀씨 이용 전보다 오히려 카드론 잔액이 늘었다.
이 같은 양상은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저축은행 신용대출 등 다른 고금리 대출의 경우에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햇살론, 새희망홀씨 이용자들은 이용하지 않은 대조군보다 매달 10만~15만원 가량 신용카드를 더 썼고, 신용등급점수도 대조군보다 더 낮았다.
오 연구위원은 “서민금융상품 이용자가 오히려 더 높은 소비 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수입ㆍ지출 관리가 부족하다는 것”이라며 “이들의 장기적인 신용상태가 개선되지 못하면 이후 고금리 대출을 다시 이용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결국 '이용자의 채무 구조를 개선한다'는 정책 목표는 상실한 채 이들의 채무조정 시기만 지연시켰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오 연구위원은 "대출 후 1년까지는 감소했던 햇살론 이용자의 채무조정 신청 확률은 2년이 지나면 크게 증가했다"며 "이들의 부채 구조가 더 악화되기 전에 채무조정 제도를 이용하면, 돈을 갚기 위해 새 부채를 누적시키는 악순환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