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타항공 4년 차 객실승무원인 A씨는 최근 회사가 발표한 605명 정리해고 명단에 포함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3월 말부터는 비행이 없었고, 4월부터는 비자발적 휴직에 들어갔다. 자녀가 있는 동료들은 육아휴직을 신청하기도 했지만, 미혼인 A씨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희망퇴직과 무급휴직이 전부였다. 그는 제주항공과의 인수합병(M&A)이 성사되면 다시 근무를 할 수 있다는 믿음에 6개월 넘게 월급 한 푼 받지 못하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기다렸다. 하지만 A씨에게 돌아온 건 정리해고 명단이 첨부된 전자우편 한 통이었다. A씨는 “어릴 적부터 객실승무원이 꿈이었고, 항공학과를 나와서 그 꿈을 이뤘다는 자부심으로 힘든 일정도 버텨내며 청춘을 바쳐 일해왔는데, 이제는 다시 꿀 수 없는 꿈이 된 것만 같다”며 “객실승무원은 다른 직군과 달리 이직도 어려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고 울먹였다.
제주항공과의 M&A 무산으로 파산위기에 몰린 이스타항공 직원들의 속앓이가 깊어지고 있다. 당장 임금은 7개월째 밀린 데다, 장기간 4대 보험료 미납으로 고용유지지원금조차 못 받고 있다. 갑작스러운 정리해고 개별 통보에 직장인 전용 익명게시판 응용 소프트어(앱)인 '블라인드'엔 일부 직원들의 극단적인 선택까지 암시하는 내용도 올려진 상태다.
이번 정리해고는 피했지만, 남겨진 직원들의 삶도 팍팍하긴 마찬가지다. 이스타항공 7년차 정비사인 B씨는 3월부터 월급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출근은 근무 일정대로 하고 있다. 하루라도 정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감항성(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비행할 가능성) 유지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추후 운항 재개 시 필요한 항공운항증명(AOC)을 받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어서다. 이로 인해 회사에선 매일 30여명의 정비사 출근을 요구하고 있다. B씨는 이번 정리해고 대상자 명단에서도 필수인력으로 꼽혀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B씨는 “근무를 스케줄에 맞춰 유동적으로 하기 때문에 고정적인 아르바이트조차 어렵다”며 “올 1월 부인이 출산하며 받기 시작한 육아휴직 수당으로 근근이 생활하고 있는데,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사측의 장기간 임금체불에 육아휴직 신청자들도 늘고 있다. 이스타항공에서 10년 째 근무 중인 C씨는 고심 끝에 이번 달부터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월급이 없는 상황에서 육아휴직 수당을 받아 생활비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C씨는 육아휴직 직전까지 매일 출근했지만, 평소의 40%에 불과했던 2월 급여를 마지막으로 3월부터 지난 달까지 월급을 단 한 푼도 받지 못했다. C씨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주말마다 건설현장 일용직을 전전했지만 턱 없이 부족했다. 그간 모아 놓은 돈도 바닥을 드러내면서 대출까지 받아야만 했다. C씨는 “이젠 육아휴직 수당에 아르바이트까지 할 수 있어 생활이 조금 나아질 수 있지만, 3개월 밖에 신청하지 못해 벌써부터 복직이 걱정된다”며 “만약 회사가 파산하면 체당금을 받아야 하는데, 산정 기준이 최종 3개월 급여이기 때문에 4개월 이상 육아휴직을 쓰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시간이 갈수록 이스타항공 직원들의 어려움이 가중되자, 창업자이자 실소유주인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뿐만 아니라 정부와 여당도 사태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동조합은 15일 오전 11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스타항공이 이지경이 된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뿐만 아니라, 이 의원이 매각대금 챙기려고 구조조정ㆍ인력감축에만 몰두했기 때문”이라며 “이 의원이 사재를 출연해 운항재개와 고용유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고, 여당과 당 대표도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이날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지금까지 1,000여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희망퇴직, 권고사직, 정리해고 등으로 이스타항공을 떠났다”며 “이 의원이 해당 문제에 대한 책임을 계속해서 회피한다면 국정감사 증인으로 요청해 책임을 규명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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