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뉴타운'은 반세기만에 다시 빈 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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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뉴타운'은 반세기만에 다시 빈 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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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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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덕
김시덕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

편집자주

도시는 생명이다. 형성되고 성장하고 쇠락하고 다시 탄생하는 생로병사의 과정을 겪는다. 우리는 그 도시 안에서 매일매일 살아가고 있다. 과연 우리에게 도시란 무엇일까, 도시의 주인은 누구일까. 문헌학자 김시덕 교수가 도시의 의미를 새롭게 던져준다.

재건축을 둘러싼 갈등이 진행 중인 서울 서초구 방배중앙로 방배 5구역(왼쪽)과 6구역 모습. 김시덕 제공


(2) 서울 서초구 방배중앙로

오늘 답사할 길은 서울 서초구 방배동을 관통하는 방배중앙로다. 이 길을 따라 걸으면 1960년대 서울시의 확장과 영동 개발의 초기 모습, 그리고 이수단지라 불리던 1970년대의 뉴타운이 최근 재건축되면서 대량으로 발생한 세입자들의 현실을 목격할 수 있다.


경기 시흥에서 서울 영등포, 관악·강남 거쳐 서초구로

경기도 시흥군 신동면에 속해 있던 지금의 서울시 서초구 방배동 지역은 1963년 1월에 서울시가 시흥군 일대를 합병하면서 영등포구에 속하게 되었다. 관악구가 영등포구에서 독립하면서 1973~1980년 사이에 방배동은 관악구에 속했다. 오늘날 강남이라고 불리는 서울시 동남부 대부분이 옛 경기도 광주군 땅이었던 것과는 달리, 방배동은 대부분의 서울시 서남부 지역과 마찬가지로 경기도 시흥군 땅이었던 것이다. 1976년 2월 5일에는 "서울의 한강 남쪽 이수단지를 포함한 관악구・강남구의 주택지구"에 "금년 안으로 도시가스가 새로 공급된다"는 뉴스가 보도되기도 했다(동아일보 '이수단지·강남외인주택지역에 도시가스 연내공급'). 강남 지역에서 방배동이 차지하는 독특한 성격, 경계적 특성은 이러한 근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방배동 일대에서 아직 '관악구 방배동'이라고 적힌 문패를 본 적은 없다. 방배동의 오래된 구역들이 대체로 모두 철거되었기 때문에, 이제 찾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 후 1980~1987년 사이, 방배동이 강남구이던 시절을 증언하는 '강남구 방배동' 문패는 방배중앙로 남쪽의 방배5구역 재건축지역에서 몇 개 확인했다. 시나 국가가 현대 한국의 역사적 기록이자 도시화석으로서, 재개발・재건축이 시행되는 지역에서 옛 문패들을 체계적으로 수집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늘 갖고 있다.

방배 5구역의 '도시화석'들. 문패는 강남구이던 시절 제작됐고, 광고판에는 5공화국 초기의 구호들이 적혀있다. 김시덕 제공

방배동에서 확인되는 근현대 한국의 도시화석으로서 문패와 함께 독특한 것이 독서실과 옛 양복점의 광고판이다. 독서실 광고판에는 '의식개혁 국민운동/ 선진조국 창조의 지름길'이라는 구호와 함께 '관인 상아탑 독서실/ 주택은행 방배동지점 앞'이라는 광고 문구가 적혀 있다. 장안의 화제였던 KBS 다큐멘터리 '모던 코리아' 시리즈를 기획한 이태웅 PD의 견해로는, 88올림픽 엠블럼이 확인되지 않고 제5공화국 초기의 구호들이 확인되므로 1982년경에 제작된 것 같다.

방배 5구역의 '도시화석' 광고판. 70년대초 개업한 곳으로 추정된다. 김시덕 제공



도시화석된 광고판 곳곳에

'365일 불조심'이라는 구호와 함께 '1급 기능사의 집/ 신사의 전당, 예복 전문, 염가 제공/ 부림양복점'이라고 적힌 양복점 광고판도 흥미로운 도시화석이다. 광고판 왼쪽 아래에 실려 있는 지도 속에, 이제는 재건축된 경원아파트가 표시되어 있는 점이 우선 중요하다. 다음으로, 독서실 광고판에도 등장했던 주택은행 방배동지점이 이 양복점 광고판 지도에도 보이는데, 지금의 방배초교입구 사거리 서북쪽에 있던 주택은행 방배동지점은, 2001년에 주택은행이 국민은행과 통합된 뒤에도 한동안 같은 위치에 있다가 최근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다. 이처럼 시민들이 자신들의 관점에서 도시 공간을 이해해서 제작한 지도 역시, 현대 한국의 옛 모습을 추적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 부림양복점은 아마도 1970년대 초 방배동 지역에 이수단지라 불리는 뉴타운이 조성되면서, 신흥 중산층의 수요를 예측하고 이곳에 개업한 것일 테이다. 매일경제 1976년 7월 2일자에는 '서울의 뉴타운 ①이수단지-60여만평의 중산층 마을로 맨션·고급주택 잇달아 등장'이라는 기사가 실려 있다. '도심에서 먼 변두리에 구성된' '이들 뉴타운'이 '도시문제로 고생하는 현재의 서울 모든 것을 대변해'주리라는 취지에서 시작된 기획기사 제1탄이 방배동 이수단지였다. 분당이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뉴타운이었다면, 이수단지는 20세기 중반을 대표하는 뉴타운이었던 것이다.

방배6구역 소재 케이크처럼 생긴 양옥집이 재건축에 들어간 모습. 김시덕 제공

이수단지를 비롯한 영동 신도시에 들어선 보급형 양옥집들은, 당시 서울 강북 사람들의 눈에는 '집 같지가 않고 고급 양과점 진열장의 데코레이션 케이크'처럼 보였다(박해천 '아수라장의 모더니티'에서 재인용). 서울 강북을 가득 채웠던 근대식 기와집과는 전혀 다르게 생긴 케이크 모양의 양옥집들은, 한때 방배중앙로를 따라 방배동을 가득 채웠었고 이제는 재건축의 대상이 되어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한때는 양옥집이 가득했던 이수단지의 중산층 주민 수요에 부응하고자 양복점이 들어섰고, 또 가구단지가 들어섰다.

사당동 가구단지라고도 불리는 방배동의 가구 업체들은, 이수단지 서쪽을 흐르는 방배천(또는 사당천)을 복개한 인근에 형성되었다. 가구단지는 신도시 주변의 특수한 사연이 있는 위치에 들어서는 경우가 많은데, 방배동의 경우에는 하천변에 들어선 것이다. 관악산과 우면산에서 발원한 방배천은 1982~1991년 사이에 복개되었으니(라펜트 2010년4월19일자 '사당천 복개도로가 확 달라진다'), 이수단지가 조성되고 가구 업체들이 자리 잡기 시작하던 시점에는 아직 지상에 노출되어 반포천으로, 그리고 한강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방배천이 반포천과 만나는 부근이, 한때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얻은 카페골목이다. 지금은 골목 초입에 커피잔 모양의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방배동 카페골목 초입의 조형물. 김시덕 제공



카페골목 근처에는 남부종합시장이라는 상가 건물이 있고, 이 상가에서 방배중앙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남서울시장이라는 상가 건물이 있다. 방배동뿐 아니라 영동 신도시 일대에는 지금도 '남부' '남서울'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시장이나 지명이 많이 남아 있는데, 이는 오늘날의 강남 지역이 1963년에 새로이 서울에 편입된 한강 남쪽 땅이라는 시민들의 심리를 드러낸다. 이 두 개의 시장 말고도 이수단지 주변에는 이수중앙시장과 방림시장이라는 상가 건물이 있었는데, 현재 이수중앙시장은 버스정류장 이름으로서, 방림시장은 '방림'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가게 이름들을 통해 그 기억을 오늘에 전하고 있다.

방배중앙로 소재 남부종합시장과 남서울시장. 김시덕 제공


이수중앙시장과 방림시장의 흔적을 버스정류장 이름과 가게 간판에서 찾을 수 있다. 김시덕 제공

한국사회의 갈등 표출된 재개발 현장

남부종합시장・이수중앙시장과 남서울시장・방림시장 사이의 옛 이수단지 곳곳에서는 현재 재건축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 가운데 재건축을 둘러싼 갈등이 특히 첨예한 곳이 남서울시장 북쪽의 방배6구역과 서남쪽의 방배5구역이다. 상당부분 철거가 진행된 방배6구역 일각에 자리한 자동차 정비업체에서는 재건축에 반대하는 플래카드를 전면에 내걸고 있는데, 재건축 조합이 재건축에 대한 동의를 구하지 않았고, 시세의 절반만을 보상하겠다고 제안한 것에 반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에서 조합 측과 상가 조합원들 사이에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매일경제 2019년 11월 26일 '조합·상가 갈등, 재건축사업에 직격탄').

재건축 보상액에 반발해 플래카드를 여럿 내건 방배 6구역 자동차 정비업소. 김시덕 제공

방배6구역의 남쪽, 남서울시장의 서남쪽에 자리한 방배5구역에서는 조합측과 세입자들 간의 갈등이 더욱 첨예해서, 지난 5월 11일에는 명도집행 과정에서 양측에서 다수의 부상자와 체포자가 발생했다(KBS 2020년 5월 11일 ‘재건축’ 방배5구역 명도집행으로 충돌…시위대 32명 체포). 올해 2월에 내가 이곳을 답사하던 중에도 상인 측과 조합 측이 충돌하는 모습을 목격한 바 있는데, 그로부터 3개월 뒤에 큰 충돌이 발생한 것이다. 이때의 명도집행 이후 방배5구역 전체에는 펜스가 쳐졌지만 아직 건물 철거는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보이며, 세입자 분들과 철거민 운동 단체가 현재도 농성 중이다. 며칠 전 일요일 밤에 이곳을 들렀을 때에도 몇몇 사람이 농성장의 가건물 앞에 앉아 있었고, 그 옆으로는 조합 측으로 보이는 주민이 나를 노려보면서 지나갔다. 방배5구역의 갈등은 아직도 진행 중임을 실감했다. 재건축을 둘러싼 움직임이 아직 크게 보이지 않는 방배중앙로 남쪽 끝의 방배13구역에서도 언제든지 갈등이 폭발할 수 있어서,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방배 5구역 곳곳에 재개발・재건축에 강하게 반발하는 플래카드가 자리잡고 있다. 김시덕 제공

나는 재개발・재건축 구역을 답사할 때마다 도축장(屠畜場)에 서 있는 느낌을 받는다. 그곳에서는 현대 한국 시민들의 생각과 감정이 가장 날 것인 상태로 충돌하고, 그 충돌을 거쳐 새 아파트가 지어진다. 그리하여 재개발・재건축이 끝나고 세워지는 아파트에 입주하는 시민들은, 그 아파트가 세워지기까지 무슨 싸움이 있었고 누가 쫓겨났는지 굳이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식당에서 고기 요리를 먹는 사람들이, 그 고기가 어떤 동물의 일부를 어떻게 도축해서 얻어진 것인지를 굳이 따지지 않는 것과 같다. 나는 고기 요리를 즐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재개발・재건축을 통해 새로운 건물이 한국의 도시에 들어서는 것에도 반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재개발・재건축 과정에서 드러나는 현대 한국 사회의 날것으로서의 모습을 직시하고 기록해야, 미래의 한국 사회에서는 재개발・재건축으로 인해 피눈물 흘리는 분들이 줄어들 것이라고 믿는다.

같은 도시를 세 번 답사하는 이유

현대 한국의 도시를 살필 때에는 최소한 세 번 들를 필요가 있다. 재개발・재건축 전에는 그곳에서 날것으로서 표출되는 한국 사회의 갈등을 확인하고, 철거 중에는 불법 주차된 차량이 없는 골목처럼 한국의 도시에서 평소에 좀처럼 볼 수 없는 독특한 풍경을 사진으로 남긴다. 방배동의 경우에는 1970년대까지 빈 땅이었다가 빽빽하게 건물이 들어섰던 일부 지역이, 거의 50년 만에 잠시나마 다시 빈 땅으로 되돌아간 모습을 최근 확인할 수 있다. 이번에 다시 건물이 들어서면, 다음에 다시 빈 땅이 드러나기까지 얼마나 더 걸릴지 모른다.

50여년 만에 다시 빈땅으로 돌아간 방배 6구역 모습. 김시덕 제공

마지막으로 재개발・재건축 후에는, 도대체 뭘 지으려고 사람들이 그 싸움을 했던가 확인하러 간다.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훌륭한 건물이 세워졌으면 다행이지만, 겨우 이런 결과를 만들어내려고 그 싸움을 하고 사람들을 쫓아냈던가 하는 느낌을 받는 경우도 있다. 다음 회에는 그런 사례 가운데 하나로서, 김포공항 동남쪽의 철거된 옛 마을 오쇠리에 대해 말씀드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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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덕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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