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인터넷 시대, 친밀한 한국어와 일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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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인터넷 시대, 친밀한 한국어와 일본어

입력
2020.09.1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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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특유의 한자읽기 시스템과 언어 문화의 교류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수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현지 대학에 재직 중인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한국과 다른 일본의 복잡한 한자 읽기 방법에도 불구, 구조적으로 유사한 두 나라 언어의 유사성 때문에 한국어와 일본어의 거리는 인터넷 공간에서 갈수록 가까워지고 있다. 일러스트 김일영



◇ 두 명의 菅 총리, ‘간 총리’와 ‘스가 총리’

새 일본 총리의 이름이 ‘스가 요시히데(菅 義偉)’ 라고 한다. 한자로는 ‘菅’이라고 쓰는 성씨인데 ‘스가’ 라고 읽는단다. 앞으로는 일본 관련 뉴스에서 ‘스가 총리’라는 호칭을 자주 들을 수 있겠다. 그런데 일본에서 ‘菅’이라는 성씨를 가진 총리가 처음이 아니다. 2010년 민주당 정권 시절의 ‘간 나오토(菅 直人)’ 총리도 ‘菅’씨였다. 한자로 쓰면 둘 다 ‘菅 총리’ 인데 부르는 방법은 달라서 그 때는 ‘간 총리’고 지금은 ‘스가 총리’다. 일본에서는 인명을 한자로 쓰는 것이 관행이다 보니, 신문 기사에서 과거의 ‘菅 총리 (간 총리)’와 2020년의 ‘菅 총리 (스가 총리)’를 어떻게 구분해 쓸 지 고민이라고 한다.

그러고보니, 인터넷에서 ‘菅 총리’ 라고 검색하는 경우에도 혼란스러울 수 있겠다. ‘菅 총리’ 라는 검색어로 찾으면 ‘간 총리’와 ‘스가 총리’의 관련 정보가 둘 다 보여질테니 말이다. 실제로 인터넷에서 ‘菅 총리’로 검색해 보니 아직은 ‘간 총리’와 관련된 정보가 압도적으로 많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및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에 내각을 이끌었던 만큼 ‘지진’이나 ‘원전’ 등의 부정적인 연관 검색어가 함께 뜬다. 일본 사회가 맞이한 두번째 ‘菅 총리’가 앞으로 어떤 연관 검색어를 엮어나갈 지 궁금해진다.

◇ 말과 글이 제각각, 일본 특유의 언어 문화

‘菅 총리’가 ‘간 총리’도 되고 ‘스가 총리’도 되는 해프닝은 표의 문자인 한자(漢字)와 표음 문자인 ‘히라가나 (ひらがな)’, ‘가타가나 (カタカナ)’를 섞어 쓰는 일본어 특유의 언어 시스템에서 기인한다. 표의 문자인 한자에 표음 문자의 읽기를 한 자 한 자 대응시키는 방식이다 보니 한자읽기가 특히 복잡하다. 예를 들어, 우리말에서는 집이라는 뜻의 ‘家’라는 한자는 ‘가’라고 읽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일본어에서 ‘家’는 ‘가’로 음독하기도 하고, ‘이에’ (집이라는 뜻의 일본어)로 훈독하기도 한다. 음독인지 훈독인지 家라는 한자가 포함된 단어마다 다르기 때문에 번번이 기억해야 한다. 깊이 들어가면 사정은 더 복잡하다. 한자와 짝을 지어 외워야 하는 음독, 훈독도 하나로 정해진 것이 아니어서, 家의 음독이 ‘가’ 도 되고 ‘케’도 되며, 훈독으로는 대체로 ‘이에’라고 읽지만 때때로 ‘야’라고도 읽는다. 단어와 정황에 따라 쓰기와 읽기의 조합이 일관성이 없다. 쓰임새에 익숙해질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 구조다.

사실 일본어가 모국어인 원어민에게도 한자읽기는 난이도 있는 주제다.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도 전문 서적을 읽다 보면, 읽기 방법이 알쏭달쏭한 한자어와 마주치는 일이 적지 않단다. 총리의 성씨 정도라면 한번 잘 기억하면 되겠지만, 일상 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쉬운 한자도 읽는 방법이 통일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 헷갈릴 만하다. 그런데 일단 글과 말이 제각각인 어법에 익숙해지면 의외의 묘미도 있다. 자유롭게 한자의 읽는 방법을 정해서 고유 명사의 음독을 창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男’(남자 ‘남’)이라고 쓰고 ‘아담’이라고 읽는다든가, 혹은 ‘黄熊’ (노란색 ‘황’, 곰 ‘웅’)이라고 쓰고 ‘푸우’ (동화 속 주인공 곰돌이의 이름) 라고 읽는다는 등 ‘믿거나 말거나’ 수준의 기발한 이름도 실재한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그 정도로 기상천외한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난 적은 없다. 하지만, 한자만으로는 짐작하기 어려운 독창적인 이름을 가진 지인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 ‘○○라고 쓰고 △△라 읽는다,’ 한국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일본식 어법

한국의 인터넷에서 ‘○○라고 쓰고 △△라 읽는다’는 표현을 종종 접한다. 이전에는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 등에서나 보던 표현인데, 요즘에는 뉴스나 광고 카피, TV 예능 프로그램의 자막에도 버젓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젊은이들 사이에는 제법 유행하고 있는 듯하다. 구체적으로 입증할 방법은 없지만, 이 표현이 일본어의 한자 읽기 용법에서 유래했다는 ‘썰’은 그럴 듯하다. 실제로 일본에서 한자어의 읽는 방법을 알려주는 ‘○○라고 쓰고 △△라 읽는다’ 라는 표현을 자주 접한다. 한 발 더 나아가 인명이나 가게 이름을 창작하듯이 ‘○○’의 한자와 ‘△△’의 읽기를 살짝 비틀어 재미를 주는 어법도 있다. 그러니까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 등에 단골로 등장하는 이런 언어 유희가, 어느 사이엔가 마니아들에 의해 한국의 온라인 공간으로 전해진 뒤 인기를 끌고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에서는 ‘○○라고 쓰고 △△라 읽는다’라는 표현이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을 맛깔나게 꼬집는 어법으로 쓰인다. 예를 들어, 음식 맛은 좋은데 값이 비싼 식당에 대해서는 ‘맛집이라 쓰고 청구서라고 읽는다’고 풍자도 하고, 예상 외로 푸짐하고 맛있는 길거리 음식에 대해서는 ‘포장마차라고 쓰고 맛집이라고 읽는다’고 에둘러 칭찬도 한다. 일본에서는 화자의 유머 감각을 은근하게 드러내는 ‘순한 맛’ 언어 유희가, 국경을 넘어서는 전혀 다른 종류의 ‘매운 맛’ 풍자로 변모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더라는 중국 고사도 있지만, 일본식 유머가 대한 해협을 건너자 한국식 풍자가 되었다고나 할까.

◇ 한일 관계는 요원해도 한국어와 일본어는 친밀한 관계

아무리 인터넷 시대라고 해도 언어가 국경을 넘어 수월하게 이주, 정착하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뭐니뭐니해도 한국어와 일본어가 구조적으로 꼭 닮았다는 점이 남다른 교류를 부추기는 배경이었을 것이다. 일본어 문장 속 단어를 그대로 한국어로 치환해도 이질감없이 문장이 성립하니 받아들이기 쉽다. 사실 한국어와 일본어는 닮은 점이 많다. 단어의 배열과 어순이 한글과 같을 뿐 아니라, 조사의 쓰임새, 관용구의 유형이나 표현법도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일본어는 현존하는 외국어 중에 한국어와 가장 유사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고등 교육을 마치면 5,000자의 한자를 사용할 줄 안다는 중국인들도 일본어에 쩔쩔매곤 하는데, 한국인 젊은이들은 한자를 잘 몰라도 일본어를 쉽게 배우고 훨씬 유창하게 구사하는 경우를 수도없이 보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글을 유일한 문자로 채용한 한국어와, 한자-히라가나-가타가나를 혼용하는 일본어의 차이만큼, 표현 문화에는 다른 점도 분명하게 존재한다. 한국의 표현 문화는, 한글이라는 확고한 표음 문자로 동일하게 치환 가능한 만큼 글과 말에 부여되는 권위가 비교적 대등하다. 그에 비해, 일본의 표현 문화에는 변수가 많은 말보다는 고정된 의미를 전달하는 글이 더 권위가 있고 정보로서 신뢰를 받는 경향이 있다. 스마트폰 이용 행태만 비교해도, 한국에서는 통화나 동영상 등 말을 이용한 표현 방식이 비교적 빠르게 확산하는 데에 비해, 일본에서는 기본적으로 SNS 나 채팅 등 문자 미디어에 대한 선호가 크다. 말보다는 글을 더 믿을 수 있는 미디어로 보는 시각이 있는 것이다. ‘○○라고 쓰고 △△라 읽는다’라는 표현이 일본과 한국에서 다른 맥락으로 전개된 것도 말과 글에 대한 문화적 해석의 차이가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표현 문화에 온도 차가 있을지언정, 한국어와 일본어의 은밀한 교류가 소원해질 기미는 별로 없다. 일본의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한국의 젊은이를 중심으로 ‘간지’, ‘낫닝겐’ 등 일본어 발 신종 은어가 오래 전부터 유행했고, 한국 드라마나 케이팝 등에 푹 빠진 일본의 젊은이 사이에는 SNS에 ‘マシソヨ (맛있어요)’ 등 한국어 발 해시태그를 다는 것이 인기다. 한일 관계는 여전히 요원하다지만, 사실 한국어와 일본어의 관계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친밀해 보인다. 적어도, 인터넷에서는.

김경화 칸다외국어대 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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