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태 제과제빵 직종 대구시 달구벌 명인
'달구벌 명인' 박기태(48ㆍ피쉐프코리아 대표)씨는 제빵업계에서 ‘개구리 왕눈이’로 통한다. 14살에 가출을 감행해 빵을 접하고 스무 살에 처음으로 빵 가게를 연 뒤로 2013년까지 노래 가사처럼 7번 실패했다. 신용불량의 나락에 떨어진 것도 2번이었다. 롤러코스트처럼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던 여정은 2013년에야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대구시 중구 동인동에 빵 가게를 열어 현재 6곳의 직영점을 열었고 직원 70명, 아르바이트생 50명에 이르는 체인으로 성장시켰다. 박 명인은 "유통사업을 하다가 망하면 다시 빵을 만들어 팔고, 빵을 팔다 다시 유통업으로 뛰어드는 식이었는데, 숱한 실패를 반복하면서 성공의 열쇠를 하나씩 얻었다"면서 "재료상이나 원료회사에서 일하지 않고 조용히 빵만 만들었다면 경영을 배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100과 300의 차이를 만드는 결정적 요인
박 명인은 스무 살에 처음 연 빵 가게를 3년 만에 접었다. 재료공급업체를 창업했다. 워낙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게 '전생의 한' 수준이었던 자신에게 딱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재료상은 몇 번이나 실패를 안겨준 사업이 되었지만, 정말 중요한 것들을 배웠다.
"빵 가게를 하도 다니다 보니까 잘 되는 가게와 안 되는 가게의 차이가 보이더군요. 안 되는 가게가 왜 안 되는지, 잘 되는 가게의 비결은 뭔지 현장에서 보고 깨달은 것들을 마음에 하나하나 쟁였죠."
박 명인이 정립한 빵집 경영론의 핵심은 '100대 300 이론'이다. 하루 100만 매출도 못 올리는 가게와 300만원 이상을 파는 가게의 차이점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100만 원 가게와 300만 원 가게는 한눈에도 차이가 나지만 가게 주인은 절대로 모른다"고 말했다.
"300만 원 판매되는 가게에 100만 원 가게 사장을 앉혀놓으면 몇 달 안 가 매출이 100만 원으로 주저앉습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100만 원과 300만 원을 가르는 원칙은 '가격'과 '맛'이다. 여기서 가격은 크기와도 연관이 된다. 박 명인에 따르면 고가의 빵은 남는 게 많지만, 손님들이 선뜻 구매하기 꺼리기 때문에 결국 손해다. 가족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큰 빵은 선뜻 집어 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박 명인의 결론은 "빵 중에서 60% 이상을 3,500원 이하의 가격으로 구성하라"는 것이다.
"1만 원으로 될 수 있으면 다양한 맛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것이 소비자의 심리입니다. 소비자의 욕구를 제대로 파악해야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한 달에 10여 가지 이상의 신제품을 내놓는 것도 다양성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박 명인의 이러한 분석이 잘 담긴 빵이 '팡도르'다. 팡도르는 이탈리아 베네토 주 베로나(Verona)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전통 빵으로 귀족들이 먹는 빵이었다. 우리나라에는 2~3만 원대에 판매했다. '맛'은 매력적이었으나 가격과 크기 모두 부담스러웠다. 박 명인은 2013년에 가게를 열면서 팡도르의 크기를 본래 크기에서 1/3로 줄였다. 박 명인의 팡도르가 전국으로 퍼져나간 덕분에 소비자들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팡도르를 접할 수 있게 됐다.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맛’이 승부의 관건
크기와 가격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맛’이다. 박 명인은 "맛은 곧 소비자 연령대와 연관이 있다"고 설명했다. 10대와 20대가 좋아하는 맛이 있고, 30대, 40대, 그리고 그 이상의 나이대가 선호하는 맛이 있다는 뜻이다.
"10대와 20대를 집중 공략하는 가게들이 있습니다. 100만 원을 절대 넘길 수 없습니다. 단골을 확보하면 30대, 40대, 그리고 그 이상의 연령대로 맛을 확장해 가야 300만 원을 버는 가게로 갈 수 있습니다."
박 명인은 최근 어르신들을 겨냥한 '강냉이빵'을 개발했다. 60, 70년대 옥수수빵에 영감을 받아 달지 않고 고소한 빵을 고안해낸 것이다. '맛'의 최종 목표는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메뉴를 모두 갖춘 빵 가게다. ‘300’을 맞출 수 있는 조건이다.
박 명인이 생각하는 실패 해도 실패하지 않는 마지막 비결은 '사람'이다. 그는 잘나갈 때도, 엎어질 때도 신용을 지키려고 애썼다. 이를테면, 빌린 돈은 반드시 갚고 너무 큰 부담을 만들지 않겠다는 원칙이다.
"주머니가 텅 비고, 마이너스까지 내려가면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죠. 그럴 때 믿을 수 있는 건 내가 가진 경험과 노하우, 그리고 주변의 도움입니다. 그 도움이란 것도 신뢰가 없이는 절대 받을 수 없습니다."
2013년 동인동에 빵 가게를 열 때 1,000만 원도 없이 시작했다. 1,000만 원을 빌려서 가게를 얻고, 1억 원에 달하는 제빵기계도 신용으로 들여놨다. 빵 재료는 6개월 동안 외상으로 했다. 재료상은 "돈을 벌 거든 그때 재룟값을 내라"고 했다. 박 명인은 "그렇게 제가 일어서길 바라고 기꺼이 도와준 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성공이 가능했다"면서 "동종업계에 몸담은 동료들에게 신뢰를 잃으면 실패는 말 그대로 끝장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터뷰하는 중에도 박 명인의 휴대폰이 쉴 새 없이 울렸다. 몇 번이나 "인터뷰 중입니다" 하고 통화를 뒤로 미루었다. 지인의 전화도 있지만, 컨설팅을 요청하는 전화가 더 많았다. 그가 현장에서 얻은 다양한 노하우를 배우려는 예비창업자들이나 매출로 고전하는 기존 가게의 사장님들이다. 박 명인 다양한 대형체인에서 자문위원직을 맡고 있기도 하다.
"자영업자가 살아남는 비율은 6% 남짓입니다. 제가 가진 노하우를 통해 이 비율이 조금이라도 올라갈 수 있다면 대만족입니다. 저의 '경영'이 제가 운영하는 가게를 넘어 동료와 후배들에게도 두루 적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의 마지막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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