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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코로나 블루’란 말이 부쩍 많이 나돈다. ‘우울하다’는 영어 형용사 ‘Blue’를 코로나19 상황에 붙였으니, ‘코로나로 인한 우울’ 정도의 뜻이다. 엊그제는 영국에서 자가 격리 중이던 50대 남성이 코로나 블루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그곳 경찰서장 출신이고 자택 마당엔 오두막집까지 있을 정도로 생활 형편도 넉넉했으나, 코로나로 인한 우울증을 유서에 남겼다고 한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국내에서도 코로나 블루 경고가 잇따른다.
▦ 코로나 블루는 감염 우려와 함께,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한 전반적 일상 변화에 따른 심신의 스트레스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외부 활동 위축에서 비롯되는 답답함과 무기력감, 교류 단절의 고립감, 코로나19 소식 폭증에 따른 압박감, 사람과 장소에 대한 경계감 등이 주요 증상으로 꼽힌다. 특히 사회적 거리 두기가 2.5단계로 강화되면서 저녁 술자리는 물론, 실내 스포츠와 오락까지 어려워지면서 ‘사는 낙’이 사라졌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 하지만 올해 우리를 짓누르는 스트레스는 비단 코로나19뿐만 아니다. 코로나19 사태 전부터 우리 사회에 두껍게 드리운 불황의 먹구름과, 코로나 사태 속에서 평년보다 22일(중부지방 기준)이나 길었던 장마, 그리고 잇단 막바지 태풍은 모두에게 진창 속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을 줬다. ‘조국 사태’에 이어 끊임 없이 불거지는 권력층의 비리 의혹, 그걸 감싸고 도는 집권 세력의 ‘내로남불’도 대다수 보통 사람들에게 좌절과 분노의 스트레스를 떠넘겼다.
▦ 마음을 짓누르는 일이 첩첩산중인 올해는 가히 ‘블루 2020’이라 할 만하다. 이 짙은 우울의 시간을 지나는 비법으로 ‘규칙적인 수면’을 강조한 의학계의 권고가 눈에 들어온다. 이생진 시인은 ‘잠을 자야’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잠을 자야/먼 거리도 좁아지는 거다//잠을 자야/물에 빠진 척척한 운명을/건질 수 있는 거다//잠을 자야/너와 내가 이 세상을/빠져 나갈 수 있는 거다’라고. 만사 힘에 부치면 그저 단잠에 푹 빠져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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