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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게임’에 멍드는 한국 체육

입력
2020.09.11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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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이기흥(왼쪽) 대한체육회장이 7월 29일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이사회 참석에 앞서 고 최숙현 선수의 아버지 최영희씨를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

이기흥(왼쪽) 대한체육회장이 7월 29일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이사회 참석에 앞서 고 최숙현 선수의 아버지 최영희씨를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31일 스포츠 전문지에 뜬금없는 광고가 게재됐다. '대한체육회-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분리'를 반대하는 대한체육회 대의원들의 결의문이었다.

보도자료 대신 대문짝만한 광고를 택한 건 위기를 감지한 그들의 마지막 카드였다. 체육회의 'KOC 분리'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지난해 1월 '조재범 사건'이 터지면서부터다. 당시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성폭력 근절 등 스포츠계 비리 척결 대책을 발표하면서 KOC 분리를 추진하겠다는 말을 꺼냈다. 7개월 후 문체부 주도의 스포츠혁신위원회가 체육회에서 KOC를 분리하라고 권고하고 체육회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뇌관'이 터졌다.

체육회와 KOC, 문체부는 어떤 관계인가. 체육회는 우리나라 스포츠를 총괄하는 비영리 민간단체다. KOC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속한 각 국가올림픽위원회(NOC)의 일원으로 스포츠 외교 단체다. 체육회와 KOC는 2009년 통합돼 체육회장이 KOC 위원장을 겸하고 있다. 정부 기관인 문체부는 체육정책과 예산의 전권을 쥐고 대한체육회를 지휘 감독하는 입장이다.

KOC는 체육회와 통합됐지만 IOC 산하라 정부가 개입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논쟁은 출발한다. KOC가 체육회에서 분리되지 않으면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대통령도 해임할 수 없다. 이 회장은 지난해 6월 IOC 위원에 선출되며 날개까지 달았다. 그가 지난해 정부의 KOC 분리 움직임에 대해 "애들 장난도 아니고 말도 안 된다"며 수위 높은 발언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문체부는 '눈엣가시'인 체육회에 강력한 통제력을 발휘하려, 체육회는 IOC를 등에 업고 자율성을 보장 받으려 뻔한 샅바 싸움 중이다.

이런 와중에 차기 대한체육회장 선거 일정이 다가오면서 문체부는 딜레마에 빠진 듯하다. 연임 의지를 보인 이 회장이 내년 1월 선거에 나오려면 임기 만료 90일 전인 올해 11월까지는 회장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하지만 체육회 수장을 내려놓으면 IOC 위원 자격도 잃게 된다. 다급해진 체육회는 입후보자가 90일 이전 사퇴하는 대신 직무 정지를 하는 것으로 정관을 개정했다. 그런데 주무 부처인 문체부는 체육회 정관 개정이 가결된 지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개정 승인을 미루고 있다. 이 회장이 스스로 분리를 받아들이도록 '정치적 딜'을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흘러나왔다. 즉 IOC 위원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이 회장에게 KOC 회장직을 주고, 생활 체육 중심의 체육회장은 새로 뽑는 시나리오다. 그러자 이 회장은 언론을 통해 체육회장 출마를 위해 IOC 위원직을 포기할 수도 있다고 '선제 공격'을 날렸다. IOC 위원직 유지가 더 절박한 쪽은 이 회장 개인이 아니라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국익을 수호할 수 있는 정부라고 판단한 노림수였는지도 모른다.

체육회로부터 KOC를 분리하는 게 맞는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마다 상이한 체육 환경에 따라 선택하면 되는 사안이다. 독일과 프랑스는 통합돼 있고 미국과 영국, 일본은 분리돼 있다. 다만 이들 국가는 모두 탄탄한 생활 체육 저변에서 엘리트 선수들이 나온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자연스러운 균형이 아닌 인위적인 간섭은 부작용을 낳을 우려가 크다. 갈등과 분열만 양산하며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치킨 게임'의 피해는 고스란히 선수와 체육인이 떠안는다.

[기자사진] 성환희

[기자사진] 성환희


성환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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