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전방위 제재에 '반도체 공급망'서 배제 위기
'비축ㆍ공조ㆍ육성ㆍ애국' 전략으로 활로 모색
中 공룡기업의 '늑대' 신화는 지속될 수 있을까
중국 화웨이를 표적으로 모든 반도체 공급을 차단하는 미국의 전방위 제재가 15일 발효된다. 세계 통신장비 1위, 스마트폰 2위인 정보기술(IT) 공룡기업이 자칫 존립 기반을 걱정해야 하는 사상 초유의 위기에 몰렸다. 화웨이는 미국의 고사 작전에 맞서 △재고를 비축하고 △협력사와 공조하고 △중국 정부의 반도체 육성 정책에 편승하고 △중국인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생존전략을 고민 중이다.
①비축 - 일단 美 대선까지 버티자
화웨이의 반도체 조달선인 대만 TSMC와 미국 마이크론에 이어 한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15일 이후 거래를 중단할 방침이다. 외교 소식통은 10일 "미국의 제재 발표 이후 화웨이는 반도체 재고를 최대한 확보하는 데 주력해 왔다"고 전했다. 반도체를 포함한 중국의 지난달 집적회로 수입액은 311억달러(약 36조9,0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11% 증가했다. 화웨이의 사재기로 인해 대만의 지난달 수출도 예상보다 15억~20억달러(약 1조7,000억~2조3,000억원) 늘었다.
업계에서는 11월 미국 대선을 거쳐 새 정부가 출범하는 내년 1월 사이를 분수령으로 보고 있다. 다른 소식통은 "대선 결과에 따라 미국의 제재가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화웨이의 스마트폰 생산을 놓고 "버텨봐야 연말 정도일 것"(샹리강 통신전문가), "부품이 충분해 향후 1년은 끄덕없다"(마지화 IT 애널리스트) 등 전망이 엇갈린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는 "화웨이가 비축한 반도체가 소진돼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이 올해 15.1%에서 내년 4.3%로 추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②공조 - "美가 더 손해" 경고 속 우군 늘리기
중국의 반도체 해외 거래량은 지난해 3,000억달러(약 345조원)에 달한다. 중국과 이해관계가 걸린 전 세계 반도체 생산업체가 그만큼 많다. 이에 미 마이크론과 대만 미디어텍 등 관련 기업들은 미 상무부에 화웨이에 대한 수출 승인을 요청한 상태다. 제재에는 동참하지만 예외를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중국은 "글로벌 기업들이 세계 최대 시장을 잃게 될 것"이라고 역공을 펴고 있다. 특히 미국을 향해 "퀄컴 매출의 65%는 중국이 차지하고, 마이크론이 화웨이와 거래를 끊으면 매년 매출의 10%인 20억달러를 손해 볼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무역전쟁 과정에서 "미 농가의 피해가 가장 클 것"이라며 유권자들의 표심을 공략한 것과 유사하다.
화웨이는 궁여지책으로 사업다각화도 꾀하고 있다. 지난달 새 노트북을 출시해 기존 모바일 사업의 타격을 상쇄하기 위한 시장 개척에 나섰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화웨이가 가방을 비롯한 부수제품 제작에도 뛰어드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
③육성 - 中 "5년 후 반도체 70% 자급"
하지만 미국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틀어막는 한 중국은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다. 중국 정부의 '중국제조 2025'를 통해 근본적인 해법을 찾으려는 이유다. 그 핵심 중 하나는 2025년까지 반도체 수요의 70%를 국내에서 충당하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3세대 반도체 산업을 14차 5개년 계획(2021~2025년)의 주력으로 선정해 올해 말까지 세부전략을 완성할 계획도 갖고 있다. 원자재에서 생산에 이르는 전 과정을 해외에 의존해야 하는 2세대의 한계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다. 지난해 2,000억위안(약 34조원)이 넘는 국부펀드를 조성해 중국 반도체 육성을 위한 기반도 갖췄다.
이 같은 중장기 구상의 실현 가능성과는 별개로 당장이 문제다. 중국의 대표적 반도체 생산업체 SMIC의 기술력이 삼성전자나 대만 TSMC에 비해 2~3년 뒤처질 뿐만 아니라 화웨이가 개발ㆍ설계한 반도체를 생산해 납품하는 것조차 미 정부의 강화된 제재에 저촉된다. 설상가상으로 미 정부는 SMIC를 제재 명단에 올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에 위청둥(余承東) 화웨이 소비자부문 대표는 "더 이상 고급 칩을 만들 수 없어 9월 출시하는 메이트40이 기린 칩으로 구동하는 마지막 스마트폰이 될 것"이라고 사실상 포기를 선언했다.
④애국 - 몰락 위기서 反美 열풍이 약 될까
화웨이 창업자 런정페이(任正非)는 '늑대'로 불린다. 무역전쟁의 최전선에서 미국의 온갖 압박에도 물러서지 않는 강인함으로 중국인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그 결과 화웨이는 중국인의 '긍지'를 상징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에 힘입어 화웨이는 올해 2분기 삼성전자를 제치고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사상 첫 생산량 1위에 올랐다. 세계 시장 판매량은 지난해보다 3% 줄었지만 중국 내 소비가 11%나 증가한 덕분이다.
화웨이 관계자들은 "출구가 없다"거나 "사업에 막대한 차질을 빚을 것"이라고 위기감을 토로하면서도 내심 중국인의 애국 열풍을 기대하고 있다. 자금을 융통하기 위해 직원들이 향후 5년간 월급의 25%를 떼내 자사주를 매입하도록 독려할 정도로 화웨이는 벼랑 끝에 섰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미국이 화웨이를 죽이려 목을 조를수록 애국심이 불타오를 것"이라고 앞장서 분위기를 조성하며 반전을 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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