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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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칼럼

입력
2020.09.10 16:08
수정
2020.09.10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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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주
백승주전남대 국문학과 교수

©게티이미지뱅크


이 칼럼은 금지되어 있다. 금지된 것을 읽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고, 신나고 멋진 일이기도 하다. 물론 금지되었다니 내용이 무엇인지 상상하면서 자꾸 읽고 싶어지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보기가 상당히 민망할 정도로 적나라할 수 있고 심하면 조기 축구회 가입의 우려(응?)까지 있는 노골적인 표현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러니 읽기 전에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이 칼럼을 쓰는 것은 금지되어 있는데, 손은 자꾸 칼럼을 쓰고 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나도 정말 안타깝다. 이게 모두 아이들을 걱정하는 어느 국회의원의 말씀 때문이다. 의원께서는 50년 전에 출판된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라는 아동 성인지 감수성 교육 도서에 대해 ‘조기 성애화 우려(응?)까지 있는 노골적 표현’이 있으며 성교 자체를 ‘재미있는 일’ ‘신나고 멋진 일’ ‘하고 싶어지거든’ 등으로 표현하여 ‘보기가 상당히 민망할 정도로 적나라하다’고 평가하시었다. 그리고 의원의 말씀에 여성가족부는 대오각성하여 7종의 책을 후다닥 회수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해서 7종의 책은 이 시대의 금서가 되었다.

금서로 유명한 책들은 많지만 개인적으로 내게 의미 있는 금서는 ‘성자가 된 청소부’라는 책이다. 군생활을 했던 부대에서 지정한 불온서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이 금서가 된 과정은 이렇다. 어느 날 행정병에게 한 장교가 사무실 청소를 명했고, 그 행정병은 청소를 하다 말고 ‘성자가 된 청소부’를 읽었다. 그런데 장교가 우연히 그 광경을 보고 대노하였다. 그리하여 그 책은 부대 내에서는 읽을 수 없는 불온서적이 되었다.

이 세상 모든 금서는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에서 만들어진다. 앞선 이야기의 장교 역시 통제되지 않는 부하(정확히는 청소하지 않는 부하)에 대해 분노했고, 그 결과로 ‘청소부’를 금서로 지정했을 것이다. 국회의원의 입을 스피커로 삼은 보수 종교 단체와 언론도 같은 마음이었을 터이다. 그들에게 성이란 통제될 수 없는 것이며, 저쪽 구석에 치워져야 하는 것, 가리고 숨겨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읽기 과정을 연구한 케네스 굿맨은 좋은 읽기란 ‘올바른 기대’를 가지고 그 기대를 검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읽기란 단순히 글씨를 해독하는 과정이 아니다. 독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세상에 대한 지식과 기대라는 틀로 새로운 정보를 이해한다. 무슨 소리냐? 어떤 것을 읽기 전에 요상한 것을 기대하면 요상한 것을 읽게 된다는 말이다. 발표된 지 벌써 50년이나 된 오래된 발견이다. (굿맨은 정말 좋은 사람이다.)

다시 통제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인간은 언어를 통해 끊임없이 세상을 통제하려 한다. 실험을 하나 해 보자. 여기 두 사건이 있다. 철수는 배가 아팠다. 철수는 차를 마셨다. 이 두 개의 사건은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는 별개의 사건이다. 이 두 사건을 순서를 바꾸고 ‘그리고’라는 말로 이어보자. ‘철수는 차를 마셨다. 그리고 철수는 배가 아팠다.’ 이렇게 두 개의 문장이 이어지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두 개의 사태를 인과관계- 차를 마셨기 때문에 배가 아팠다-로 묶어 버린다. 이렇게 해서 세상은 이해할 수 있는 것, 다시 말해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된다.

언론의 보도문에서는 이처럼 문장이나 정보를 재배열하여 사실을 재구성하거나 정보를 왜곡시키기도 하는데 이러한 수법을 ‘절합’(articulation)이라고 한다.(장경현, 절합에 의한 신문 보도 텍스트의 사건 재구성 방법 연구) 이 기법의 끝판왕은 요즘 우리가 수없이 목도하고 있는 가짜 뉴스들이다. 위에서 소개한 국회의원의 발언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은 맥락을 무시하고 추출한 책 내용에 자신의 발언을 슬쩍 끼워 인과관계의 서사를 만들어 냈다. 7종의 책을 읽으면(원인!) 그 결과(!)로 ‘조기 성애화’(이 칼럼을 읽으면 조기 축구회에 가입하게 된다는 헛소리만큼이나 실체가 없는, 텅 비어 있는 허수아비 같은 개념이다)가 되고, 동성애가 ‘조장’되며, ‘수간’을 정상적인 것으로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7종의 책은 이렇게 창조과학적으로 재창작되었다.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해당 발언을 한 국회의원은 TV 뉴스의 앵커와 같은 역할을 했다. 바다를 떠다니는 배를 닻(앵커)으로 정박시키듯이, 뉴스에서 앵커는 많은 정보로 가득 찬 뉴스에서 핵심을 뽑아 시청자들의 뇌리에 고정시킨다. 책을 읽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국회의원 앵커는 책을 ‘초등학생 성관계를 장려’하는 것으로 정박시켰다. 그 과정에서 성평등 교육을 위한 책을 선정하기 위해 많은 창작자, 비평가, 교육 전문가가 거쳤던 치열한 연구와 토론의 과정은 깨끗하게 증발되었다. 국회의원 앵커가 만들어낸 텍스트는 언론을 통해 유통되었고, 7종의 책에 대한 창조과학적 해설은 사실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텍스트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이 텍스트를 완성시키는 것은 이 내용을 다룬 언론 기사에 달리는 혐오 댓글이다. 댓글의 내용들은 여지없이 ‘동성애 반대’(현대 과학은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이 어떤 이의 눈동자 색깔을 반대하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다는 사실을 밝혀냈다.)와 ‘차별금지법 반대’의 내용으로 채워진다. 이렇게 완성된 텍스트는 많은 블로그와 인터넷 카페로 재유입되어 다시 혐오에 대한 담론을 만들어낸다. 참으로 은혜로운 순환이다.

국회의원은 나다움 어린이책을 혐오스러운 것으로 분류했고, 이를 바탕으로 국회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나는 그가 문제를 제기한 것 자체에 대해서는 큰 이의가 없다. 정치란 세상에 질서를 가져온다고 믿는 범주에 따라 세상사를 분류하는 일이고, 그래서 그는 자신의 정치를 했을 뿐이다. 내가 문제 삼고 싶은 것은 여성가족부와 교육부, 그리고 그 수장들의 직무유기이다. 국회의원의 문제 제기에 대해 여성가족부와 교육부는 그 분류가 수많은 여성들, 더 나아가 남성들을 억압한다고 따졌어야 했다. 많은 이들을 굴레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다른 분류가 있다고 설득했어야 했다. 그리하여 그 이야기가 세상으로 퍼져나가게 해야 했다.

이 금지된 칼럼을 쓰기 전 움베르토 에코의 인터뷰를 읽었다. 에코는 가짜나 실수가 실제적인 역사적 사건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동방에 존재한다는 기독교 왕국을 묘사한 프레스터 존의 가짜 편지가 유럽인들을 아시아로 이끌었고, 지구가 작다고 착각한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당도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가짜는 지옥의 문을 열기도 한다. 히틀러는 유대인들이 세계를 지배하려 한다는 시온 장로들의 협약서라는 가짜 서류를 진짜로 믿었고, 그 신실한 믿음에 따라 유대인들을 불태웠다.

나는 아무런 저항 없이 가짜에 물들어가는 이 세상이 또 다른 지옥을 불러오지 않을까 두렵다. 그래서 그 두려움을 이겨보고자 조용히 입 다물지 못하고 이렇게 금지된 칼럼을 쓴다. 아 맞다. 이 불온한 칼럼을 읽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그러니 이제라도 이 칼럼을 읽는 것을 그만두시기 바란다. 아울러 여성가족부는 이 칼럼이 실린 신문을 모두 사서 빨리 회수하시기 바란다. 아니면 이 칼럼을 읽지 말라고 널리 널리 알려주시기 바란다. 그런데, 혹시, 여기까지 다 읽으신 분?

백승주 전남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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