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대체텍스트
치킨은 통에, 결혼식도 간소하게 ... 코로나19가 불 붙인 '제로 웨이스트 라이프'

알림

치킨은 통에, 결혼식도 간소하게 ... 코로나19가 불 붙인 '제로 웨이스트 라이프'

입력
2020.09.11 04:30
수정
2020.09.11 18:49
17면
0 0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식자재 포장용기 쓰레기 배출량이 많아짐에 따라 분리수거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자그마치북스 제공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식자재 포장용기 쓰레기 배출량이 많아짐에 따라 분리수거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자그마치북스 제공


두 아이를 키우는 주부 박민경(36)씨는 최근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다 깜짝 놀랐다. 평소 버리던 양보다 훨씬 쓰레기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때문에 네 식구가 집에서 식사를 해결하다 보니 식재료 포장용기가 엄청 쌓였던 것.

박씨는 쓰레기 줄이기 작업에 나섰다. 생수 페트병을 줄이기 위해 정수기를 설치하고 장을 볼 때도 포장이 적은 것 위주로 고른다. 수세미나 칫솔 같은 생활용품도 친환경 제품으로 바꿨다. 장난감과 책은 온라인 중고시장에 내놨다. 박씨는 “코로나19가 환경 변화에 따른 위기인데, 번거로워도 신호등 지키듯이 쓰레기도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제로 웨이스트(Zero-Waste)’ 바람이 불고 있다. 제로 웨이스트란, 일회용품 사용을 최소화하는 등의 방식으로 쓰레기 배출량을 ‘0’에 가깝게 하자는 운동이다. 예전에도 커피전문점에서 텀블러를 내밀거나 마트에서 에코백을 사용하는 이들은 많았다. 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환경을 고민하는 건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일회용품을 줄이기 위해 음식점에서 판매하는 음식을 개인 용기에 담아 포장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자그마치북스 제공

일회용품을 줄이기 위해 음식점에서 판매하는 음식을 개인 용기에 담아 포장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자그마치북스 제공


음식을 포장할 때 다회용 개인 용기를 사용하면 쓰레기 배출을 줄일 수 있다. 자그마치북스 제공

음식을 포장할 때 다회용 개인 용기를 사용하면 쓰레기 배출을 줄일 수 있다. 자그마치북스 제공


생활 속에서 제일 먼저 할 수 있는 건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치킨이나 떡볶이 같은 포장배달 대표 음식들을 개인 용기에다 담아가는 것이다. 직장인 최혜리(30)씨는 “바깥 출입을 줄이다 보니 샌드위치나 도시락을 사먹는 걸로 식사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음식물이 묻은 포장지는 재활용이 안된다고 해서 죄책감이 들었다"며 "그 뒤론 아예 개인 도시락 통을 들고 가서 싸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제로웨이스트 매장 '더 피커'에서 한 고객이 포장재 사용을 줄이기 위해 개인 용기에 식재료를 담고 있다. 더 피커 제공

제로웨이스트 매장 '더 피커'에서 한 고객이 포장재 사용을 줄이기 위해 개인 용기에 식재료를 담고 있다. 더 피커 제공


비누와 샴푸, 화장품과 각종 세제, 커피원두와 곡식 등을 살 때도 포장 없이 산다. 지난 6월 서울 망원동에 문을 연 제로웨이스트 매장 ‘알맹상점’은 포장 없이 향신료와 세제 등을 판다. 여기서 물건을 사려는 고객은 담아갈 용기를 직접 챙겨와 필요한 만큼 담은 뒤 계산해야 한다. 그 귀찮은 일을 누가 할까 싶은데, 하루 평균 40~70명 정도가 찾는단다. 주말에는 제법 긴 줄이 늘어서기까지 한다.

물론 사람이 살아가는 이상, 쓰레기가 아예 없는 삶은 불가능하다. 차선책으로 그나마 환경에 덜 해로운 것들을 찾는다. 일회용 비닐봉투 대신 천연밀랍으로 만든 랩, 천연실크로 만든 치실, 대나무로 만든 칫솔, 천연 수세미 열매로 만든 수세미와 목욕타월, 옥수수 전분과 순면으로 만든 생리대 등이 대표적이다.



일회용 비닐봉투를 대체해 개발된 천연밀랍으로 만든 무화학, 생분해, 재사용 식품 주머니. 더 피커 제공

일회용 비닐봉투를 대체해 개발된 천연밀랍으로 만든 무화학, 생분해, 재사용 식품 주머니. 더 피커 제공


수세미 열매의 섬유질을 화학 처리없이 자연 그대로 활용한 수세미는 버려도 자연 그대로 돌아간다. 더 피커 제공

수세미 열매의 섬유질을 화학 처리없이 자연 그대로 활용한 수세미는 버려도 자연 그대로 돌아간다. 더 피커 제공


재활용마저 세심해졌다. 페트병 뚜껑이나 작은 장난감 부품, 화장품 용기 등의 경우 플라스틱이면서 유리이기도 하면서 쇠이기도 한 복합소재를 쓰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재활용이 어렵다는 이유로 업체들의 수거를 거부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래서 생긴 게 '플라스틱 방앗간'. 업체들이 곤란해 하는 병뚜껑이나 작은 플라스틱 제품 등을 모아 재활용하는데, 7월부터 홀수달에 2,000명 제한으로 참여 신청을 받았다. 9월 참가자의 경우 하루 만에 신청이 마감됐다.

알맹상점이 운영하는 자원회수센터도 인기다. 커피가루와 우유팩, 소형 플라스틱 등이 주요 품목인데, 7월에만 300명이 참여해 52㎏을 모은 데 이어 지난달에는 400명이 110㎏을 모았다. 모인 커피가루는 화분으로, 병뚜껑은 치약 짜개로, 우유팩은 화장지로 다시 쓰인다.


병뚜껑과 작은 플 등으 수 있다. 플라스틱 간 제공

병뚜껑과 작은 플 등으 수 있다. 플라스틱 간 제공


이 새로운 흐름은 코로나19가 준 각성 효과다. 고금숙 ‘알맹상점’ 공동대표는 “코로나19에다 긴 장마를 겪으면서 ‘적어도 이렇게 살지는 말아야겠다'고 고민하는 분들이 늘었다"며 "이런 분들이 '일상에서라도 내가 조금씩이라도 할 수 있는게 뭘까' 찾아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제로 웨이스트 매장 ‘더 피커’를 운영하는 송경호(‘오늘을 조금 바꿉니다’ 공동저자) 대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는지 따져보는 분들이 늘고 있다"며 "이런 분들은 일회용품을 안 쓰는 걸 넘어 제품의 생산, 유통, 폐기 전 과정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물어보신다"고 말했다. 실제 ‘더 피커’는 코로나19가 발생 초기인 지난 2~3월 매출이 직전(12~1월) 대비 50%이상 늘어났다.

오은경씨는 최근 독일에서 '제로 웨이스트 결혼식'을 올렸다. 자그마치북스 제공

오은경씨는 최근 독일에서 '제로 웨이스트 결혼식'을 올렸다. 자그마치북스 제공


코로나19로 인한 각성은 결혼식 풍경마저 바꾸고 있다. 인스타그램 계정 무포장(@mupojang)을 운영하는 번역가 오은경씨는 종이 청첩장 대신 온라인 청첩장을, 재활용한 재료로 만든 결혼반지를, 하객들이 직접 준비한 간소한 음식들로 조촐하게 '제로 웨이스트 결혼식'을 올렸다. 서울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원래 환경에 관심이 있었지만 실천이나 동기가 없으면 제로 웨이스트를 하기 어렵다"라며 "일상에서 하나씩 가장 쉬운 것부터 하다 보면 점차 삶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강지원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