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입에서 사랑한다는 말보다 미워한다는 말이 더 많이 나왔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장한 내용이다. 억지스럽긴 하지만 성경에 하나님과 예수의 분노가 많이 등장하는 것도 사실이다.
로마제국의 흥망성쇠를 다룬 ‘루비콘’으로 유명한 역사 저술가이자 소설가인 저자는 10대 시절부터 기독교에 흥미를 느꼈다. 기독교의 비합리성에도 불구하고, 서유럽인은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벗어나서 사고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서다. 이런 모순이 이 책의 전제 조건이자,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이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 기독교는 출발 자체가 모순적이고 역설적이다. 십자가형은 오늘날 예수를 용서와 화해의 존재로 만들었지만, 사실 고대 로마에서 가장 경멸적인 최악의 형벌이었다. 십자가형을 받은 예수를 신으로 여긴다는 건 당시 로마인들에겐 매우 혐오스럽고 기괴한 일로 보였다. 기독교인들조차 예수의 십자가형을 시각적으로 묘사하는 걸 한동안 금기시할 정도였다.
모순은 이어진다. 예수의 사망과 부활이 있은 지 1,500년이 지난 뒤 핍박 받던 기독교 교회는 자신들을 박해하던 사회를 감독하게 됐다. 권력을 갖게 된 교회는 사람들의 신앙을 단속하기에 이르렀다.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기독교 신자가 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고대 페르시아, 유대, 그리스, 로마 등 여러 전통을 취합해 형성된 기독교가 “가장 강력한 패권적 문화 체계”가 됐다.
박해받던 소수자, 혁신가이자 진보를 염원하던 기독교인들이 주류 지배 세력이 되자, 기독교의 가르침에 되레 발목을 잡히게 됐다. 저자는 중세 이후 발생한 서양 내부의 갈등을 기독교의 가르침에 어긋난 행위를 한 것에 대한 내적 고뇌로 해석한다.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자들, 그리고 그 가르침을 자신들의 필요에 맞게 받아들인 자들 간 일종의 교리 해석 싸움이었다는 얘기다.
세상은 과거 교회의 주장과 달리 진화론을 받아들이고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렇다면 현대 사회는 기독교에서 벗어난, 다른 사회가 된 걸까. 저자는 여전히 ‘기독교 세계의 연속’이라고 믿는다. 종교와 세속의 분리, 일부일처제, 법률과 과학 같은 것들은 물론, 계몽주의, 인권, 민주주의 같은 진보적 개념과 심지어 무신론에도 기독교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것이다.
세계를 지배하는 서구 문명이 기독교에 근간을 두고 있다는 건 재차 강조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기독교와 거리가 멀어보이는 사상조차도 기독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주장은 흥미롭다. 저자는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눠 주곤 하였다’고 한 성경 ‘사도행전’의 구절은 사회주의적 급진파에 영감을 줬다고 본다. 종교를 아편이라 여기는 반기독교적 좌파 그룹의 운동조차 기독교 영향 아래 있었다는 점은 모순적이고도 역설적이다. 요즘 한창 이슈가 되는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인권 운동에 대해서도 마틴 루서 킹 목사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존중돼야 한다'는 성경적 근거를 내세운다.
저자는 고대 로마 시대 때부터 신앙과 이성 간의 갈등을 빚은 18세기 계몽주의, ‘당신에게 필요한 건 사랑 뿐(All You Need Is Love)’이라고 노래했던 그룹 비틀스를 거쳐 최근의 미투운동까지 2,500년을 연대순으로 21개 장으로 나눠 기독교의 영향이 서구 사회에 얼마나 뿌리 깊이 박혀 있는지 보여준다. 복잡한 사상에 대해 논하기보다 주요 사건과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묵직한 주제이지만 그리 어렵게 읽히지 않는다.
기독교의 영향은 서구 사회에만 한정하지 않는다. 기독교가 주요 종교 중 하나인 우리나라에서도 기독교의 영향은 막강하다. “이 책에서 다뤄진 60여편의 일화는 서양 이야기지만 바로 우리의 얘기로도 읽을 수 있다”는 역자의 말이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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