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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경의 무비시크릿] '기기괴괴 성형수', 기괴한 결말이 품은 깊은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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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경의 무비시크릿] '기기괴괴 성형수', 기괴한 결말이 품은 깊은 뜻

입력
2020.09.10 10:41
수정
2020.09.10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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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괴괴 성형수' 예고편 캡처

'기기괴괴 성형수' 예고편 캡처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며 발레리나를 꿈꾸던 소녀 예지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꿈을 포기하고 만다. 예쁘지 않은 얼굴 때문에 만년 2위로 밀려나야 했던 것. 어느덧 성인이 되어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일하게 되지만,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예지는 엄청난 거구가 되어버렸다. 함께 일하는 톱스타 미리의 모욕적인 말들을 견디며 가슴속에 분노가 쌓여가고, 그런 예지에게 어느 날 한 통의 문자가 온다. "성형수 이벤트에 당첨됐다"는 내용에 혹하는 것도 잠시, 스팸 문자로 치부해버리고 휴대폰을 내던진 예지. 그런데 며칠 후 진짜 성형수가 배달된다. 마법의 성형수를 접한 예지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질까.

지난 9일 개봉한 '기기괴괴 성형수'는 네이버 레전드 웹툰 '기기괴괴'의 최강 에피소드 '기기괴괴-성형수'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조경훈 감독은 원작 속 주인공의 감정선을 보다 풍성하게 애니메이션에 담아내면서 관객들의 공감을 유도했다. 우리 사회의 외모에 대한 엄격한 잣대와 보이지 않는 폭력들, 그로 인해 비뚤어진 한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냈다. 원작 웹툰 속 기괴하고 음산한 분위기 역시 애니메이션에 고스란히 옮겨졌다.

조경훈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외모는 결국 껍데기인데 이 껍데기를 잘못 타고난 죄가 너무 크지 않나. 사람들은 껍데기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서열을 나누고 경제적인 부도 나눠 가진다"고 꼬집기도 했다. 이러한 감독의 시선은 작품 곳곳에 묻어난다. 아름다운 여성이 받는 뜨거운 시선과 대접, 앞다투어 지갑을 여는 남자들의 모습이 담겼고, 여성들은 미(美)에 집착하고 경쟁을 벌인다. "세상에서 제일 예뻐질 거야"라고 소리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도 얼마나 무의미한 경쟁에 몸을 내던지고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다시 주인공 예지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의 심리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악성 댓글이었다. 우연히 출연하게 된 홈쇼핑 방송에서 '먹방'을 선보이게 된 예지는 '극혐 영상'으로 자신의 모습이 인터넷에 떠도는 것을 발견한다. "밥 먹으며 보다가 토했다" 등 자신을 공격하고 비웃는 댓글을 보며 예지는 괴성을 내지르며 좌절한다.

'기기괴괴 성형수' 예고편 캡처

'기기괴괴 성형수' 예고편 캡처

이후 정체불명의 성형수가 집으로 배달되고, 예지는 크게 흔들린다. 사실 이는 성형수 전문 시술사가 성형수의 홍보를 위해 예지의 연락처와 집 주소를 수소문해 보냈던 것. 예지는 그를 찾아가고, "10분의 1 가격에 해주겠다"는 말을 듣고 부모님을 닦달해 2억 원을 전신 성형에 투자한다. 180도 변신한 예지는 설혜라는 인물로 새롭게 태어난다.

"엄마 내가 정말 잘할게"라고 말하는 설혜는 마음까지 예뻐진 듯했지만, 180도 달라진 주변의 대우와 함께 연예인 데뷔 기회까지 얻으며 점점 외모에 더 집착하게 된다. 살이 조금 쪘다는 이유로 성형수에 다시 손을 대고, 실수로 잠이 들면서 정해진 시간(20분)을 넘겨 피부가 녹아내리고 만다. 해골처럼 변해버린 딸을 살리기 위해 부모는 자신의 살까지 내어주지만, 의식을 회복한 설혜는 시술사를 다시 찾아가 예쁜 얼굴과 몸매를 복구해달라고 애원한다. 결국 설혜는 미모를 되찾지만 그의 삶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점점 흘러가게 된다.

'기기괴괴 성형수'는 외모지상주의를 강렬하게 비판·풍자하면서 인간의 욕망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시험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85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도 관객들의 몰입도를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극단적으로 표현된 이미지들과 음산한 음향효과 덕에 호러라는 장르의 특성에도 충실했다.

섬뜩한 반전을 품은 결말에 대한 호불호는 갈린다. 그러나 다소 기괴한 결말 덕에 오히려 찝찝한 구석을 씻어내는 효과도 있다. 작품은 초반부에 '여자는 예쁜 게 최고'라는 분위기를 풍겨 유쾌하지만은 않은 지점들이 있는 게 사실이다. 남성들의 음흉한 시선이나 아파트 경비원의 "예쁜 냄새"라는 발언도 불편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후반부에서 세상에 미인은 수없이 많다는 점을 꼬집으면서 외모가 주는 환희는 일시적일 뿐이라고 우회적인 일침을 가한다.

더불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악성 댓글'과 관련해서도 생각해볼 부분이 있다. 못생기고 뚱뚱해 핍박받던 예지가 어두운 방 안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며 '짜릿한 손맛'을 느끼는 모습은 자칫 악플러의 심리를 이해하게 되는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으나, 부메랑처럼 악성 댓글의 칼끝이 자신을 향하자 예지 또한 죽고 싶을 만큼의 고통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기기괴괴 성형수'를 향한 해외의 관심도 뜨겁다. 애니메이션계의 칸영화제로 불리는 제44회 안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장편 경쟁부문 초청에 이어 제26회 프랑스 에뜨랑제국제영화제, 제24회 캐나다 판타지아 인터내셔널 필름 페스티벌, 제19회 뉴욕 아시아영화제, 제53회 시체스 국제판타스틱 영화제까지 전세계 영화제에서 초청이 잇따르고 있다.

'성형 강국'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의 애니메이션이라는 점도 해외 관객들의 관심을 끄는데 일조하지 않을까 싶다. 국제미용성형학회 보고에 따르면 한국은 전 세계 인구 대비 성형 건수 1위를 차지하며 인구 대비 성형외과 의사 수도 한국이 1위다. 성형 시장은 연간 5조원의 규모로, 세계시장의 4분의 1을 차지할 만큼 활성화되어있다는 통계가 이미 오래 전에 나왔다.

'기기괴괴 성형수'는 "마음이 예뻐야 진짜 미인"이라는 식상한 멘트를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게 하는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반전 외에는 예상 가능한 스토리로 흘러가지만, 장르적 재미 측면에선 제법 훌륭하다고 볼 수 있다.

유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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