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의 적' 미얀마 정부 맞서 화해 모색하는 로힝야ㆍ라카인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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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의 적' 미얀마 정부 맞서 화해 모색하는 로힝야ㆍ라카인 공동체

입력
2020.09.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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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카인 반군 '아라칸군' 성명 발표
"불교 근본주의자 아냐" 화해 손짓
'아라칸 정체성' 내세워 화합 추진

7일 인도네시아 아체주 록세우마웨 소재 난민 캠프에서 로힝야족 난민들이 좁은 공간에 한 데 뒤엉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록세우마웨=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7월 9일(현지시간)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州)의 라카인족 반군 아라칸군(AA)은 ‘정치적 자유를 향한 우리의 투쟁에 대해 국제언론에 알립니다’라는 긴 제목의 영문 성명서를 발표했다.

단호한 문체의 성명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라칸연맹(AA 정치국)과 AA는 아라칸에 거주하는 모든 이들이 함께 결성한 혁명조직으로 종교 인종 종족 소수 혹은 다수에 관계없이, 버마(주류 종족)로부터 억압받는 모든 아라칸 거주민들의 해방을 위한 정치적 목적을 갖고 있다.” 성명은 이어 “우리 조직을 불교도에만 기반한 것으로 묘사한다든가, 근본주의자로 수식하지 말기를 바란다”고 요구했다. 성명의 주체 아라칸은 1974년 버마사회주의공화국의 군부 독재자 네윈 정권이 라카인으로 변경하기 전 이름이다. AA는 과거 찬란한 독립왕국 시절의 이름인 아라칸을 고수하고 있다.

국제언론과 싱크탱크 보고서들이 AA를 ‘불교도 반군’으로 단언, 혹은 부연 설명해온 건 사실이다. AA의 주 구성원인 라카인족 주류가 불교도인데다, 최근 급격히 고조된 미얀마 정부의 로힝야족 대학살 과정에서 라카인 커뮤니티의 불교 민족주의와 이슬람 포비아는 국가폭력을 정당화하고 응원하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라카인 공동체 일부가 학살에 동참하면서 이들을 지지 기반으로 하는 반군 AA를 언론이 불교도 반군으로 묘사한 것은 딱히 왜곡된 표현은 아니었던 셈이다.

2016년 7월 미얀마 카친주에서 열린 소수민족 반군간 평화 회담에 트완 므랏 나잉(오른쪽 두 번째) 아라칸군(AA) 사령관이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행사장에 들어서고 있다. 미얀마 매체 이라와디 홈페이지 캡처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AA의 달라진 기류가 미디어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올해 6월 24일 AA는 동남아시아 프랜차이즈 언론인 ‘코코넛’의 미얀마 담당 매체(코코넛 양곤)와 인터뷰에서 “최선의 해결책은 화합을 이루고 서로 도우면서 공존하는 것이다. 우리는 로힝야를 지원하고 특히 그들을 대대적으로 탄압한 가해자들이 처벌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이달 8일 터져 나온 대형 속보 하나가 이런 변화와 맞물려 주목을 받았다. 로힝야족에 대한 무력진압이 최고조에 달했던 2017년 8월 상부의 명령을 받고 학살을 자행한 미얀마 군인 2명의 신병이 방글라데시 당국에 의해 국제형사재판소(ICC)로 넘겨졌다는 소식이었다. 이들이 앞서 5월 정부군에서 이탈한 뒤 AA 진영으로 넘어왔고, AA 측이 학살 가담 군인의 자백을 영상 녹화한 후 영문 자막을 달아 세상에 선보인 사실도 다시금 조명 받았다. AA가 공개한 영상 자백과 두 군인은 앞으로 ICC가 주관하는 로힝야 제노사이드(대량 학살) 재판에서 핵심 증거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련의 흐름은 최근 조심스럽게 시작된 로힝야ㆍ라카인 화해 논의에도 동력을 불어 넣을 전망이다. 7월 16일 로힝야 디아스포라(이산) 활동가 단체인 자유로힝야연합(FRC)이 영국 런던 소아스대(SOAS)와 ‘라카인의 미래’라는 주제를 놓고 공동 주최한 웨비나 포럼은 두 커뮤니티의 화해를 모색한 첫 논의의 장이었다. 이날 포럼에서 CR 아브라르 방글라데시 난민ㆍ이주연구소(RMMRU) 소장은 미얀마 정부의 종족 분열 전략을 열거하고, 이를 타파해야만 로힝야들이 현재 직면한 어려움을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가폭력에 가담한 커뮤니티와 폭력의 타깃이 된 커뮤니티가 화해하려면 철저한 진상규명은 물론, 가해자 스스로의 반성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포럼에 참석한 라카인 활동가 아웅 테인은 “일부 라카인 정치 지도자들이 가짜뉴스를 앞세워 대중을 선동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가령 ‘만일 버마군이 우리 땅을 수호하지 않으면 벵갈리 테러리스트(로힝야)세력이 득세해 아라칸은 이슬람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라는 식의 반(反)로힝야 담론을 퍼뜨려 혐오 확산을 부채질했다는 것이다.

지난달 26일 방글라데시 우키아 난민 캠프에서 로힝야족 난민 어린이들이 노동을 하고 있다. 우키아=AFP 연합뉴스

라카인 디아스포라 그룹에서도 두 커뮤니티간 ‘협력’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사무소를 두고 미얀마 정부군과 AA간 내전 상황을 실시간 전하고 있는 니 니 르윈 아라칸인포메이션센터(AiC) 국장은 일찍부터 로힝야ㆍ라카인의 협력을 주장해온 인물이다. 그는 기자에게 보낸 메신저 답신에서 “라카인과 로힝야는 커뮤니티를 분열시키는 주범이 미얀마 중앙정부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양쪽 공동체 모두 현장사살, 고문, 체포, 방화, 마을에서의 축출 등과 같은 정부군의 무차별적이고 잔혹한 박해 아래 놓여 있다”고 증언했다. 현재 급박하게 돌아가는 라카인주 내전 상황은 지금까지 로힝야족이 겪었던 핍박과 비슷한 유형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르윈 국장은 “미얀마 군과 정부가 저지르는 상상을 초월한 잔학행위는 두 커뮤니티가 단결해 맞서 싸우지 않는 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사실 로힝야ㆍ라카인의 화해 무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절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협력 논의가 싹트기 시작한 데는 두 가지 배경이 있다. 하나는 2018년 이래 격화한 라카인주 내전이다. 네이 산 르윈 FRC 코디네이터는 “불교 민족주의와 이슬람 포비아로 무장한 라카인 공동체가 오랜 내전을 겪으며 미세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자와 온라인 인터뷰를 통해 “라카인들도 인권이 유린당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서서히 깨닫고 이해하는 것 같다. 바라건대 두 공동체 사이에 확실한 연대가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방글라데시 난민 캠프에 거주하는 100만명 넘는 로힝야 난민들의 본국 귀환 이슈도 또 다른 배경이 됐다. 안전하고, 존엄성이 지켜지며, 또 자발적인 귀환이 이뤄지려면 이들이 돌아갈 본향, 라카인 땅에서 로힝야를 향한 라카인 이웃들의 증오와 잠재적 폭력이 사라져야 한다. 물론 시민권 이슈 등의 제도ㆍ정책적 결단은 여전히 미얀마 정부 몫이다.

“우린 최소 600년간(1400년대부터 존재한 므야욱 왕국 기준) 평화롭게 공존해왔다. 로힝야와 라카인이 충돌한 건 현대사의 몇 장면 정도다. 1942년(제2차 세계대전 기간 로힝야는 영국 편에, 라카인은 일본 쪽에 섰다), 2012년 그리고 2016~2017년이다. 그 외 더불어 지낸 기간은 이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길다. 여전히 가능하다.”

11월 8일 미얀마 총선에 무소속 후보로 출사표를 던진 로힝야 정치인 아부 타헤이의 말이다. 그러나 미얀마 선거관리위원회는 그의 출생 당시 부모님이 시민권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후보 등록을 거부했다. 타헤이가 태어난 그 해(1964) 시민권 카드인 국민등록카드(NRCㆍ일명 녹색카드)는 유일한 신분 증명 수단이었고, 그의 부모 역시 녹색카드 소지자였으니 선관위의 거부 사유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 아웅산 수치 정부조차 시민권 카드로 정치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7일 인도네시아 아체주 록세우마웨의 한 난민캠프에서 로힝야족 여성들이 코로나19 감염에 대비해 마스크를 쓰고 이동하고 있다. 록세우마웨=로이터 연합뉴스

이처럼 제약이 적지 않은 만큼 인권단체들은 두 커뮤니티의 진정한 화해를 위해 로힝야족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호칭을 새로 정하는 작업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칼라(검둥이)’ ‘벵갈리 테러리스트’ 등의 인종차별적 명칭을 버리고, 아라칸 주민 모두를 ‘아라카니즈’로 부르는 아이디어가 그것이다. 네이 산 르윈은 “아라카니즈는 아라칸에 속한 모든 이들의 공통된 정체성”이라며 “로힝야들도 이 호명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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