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국회의원 4연임 금지’ 법안이 여의도의 뜨거운 감자다. 여야 일각에서 공히 ‘4선 이상 의원은 존재하지 않는 국회’을 꿈꾸는 상황이다. ‘정치 경력’ 자체를 스스로 문제라 여기는 국회를 보고 있자니 입맛이 몹시 쓰다.
정치권이 선진국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극약처방’을 꺼낸 취지는, 알면 알수록 더욱 갸우뚱하다.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조롱의 대상이 됐기 때문’이란 이유만 해도 그렇다. 사고, 갑질, 막말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의원이 대개 다선 의원이기만 했던가. 되레 최근 재산신고 누락, 갑질 논란을 빚은 건 초선 의원들이었다. 막말 논란도 있었다. 새로 이름을 알려야 해 선명성 경쟁에 쉽게 노출된 탓이란 분석도 있다. 누가 더 문제냐의 경쟁은 물론 아니다. 굳이 다시 언급하지 않아도 ‘선수(選數)와 말썽’ 사이의 공식은 단순하다. 요즘 말로 케바케(case by case), 사바사(사람 by 사람)이다.
‘다선은 지역구 관리에만 몰두한다’거나 ‘선수가 깡패’라는 논리도 쉽게 납득하긴 어렵다. 오히려 당무를 맡으면 지역구 한번 찾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상임위 배정도 최근 여당에선 ‘초선이 먼저’란 새 공식이 적용됐다. “초선은 전공 분야를 살려 활약하고, 중진들은 어디서든 알아서 자기 내공으로 살아남으라”는 분위기다.
민의의 전당인 국회가 오로지 ‘검은 양복을 입은 50ㆍ60대 엘리트 남성’으로만 가득 찬 것은 확실히 문제다. 국민을 닮은데다 활기 찬 국회를 만들기 위해 젊고 다양한 이들의 정치 참여 문을 넓혀야 한다는 얘기도 지당하다. 하지만 가장 효과적 수단이 과연 ‘중진 일괄 퇴출’이라는 둔기일까. 젊은 정치 실종의 주범은 다선 의원이라는 눈에 보이는 손쉬운 타깃만이 아니다. 명망가 영입을 선호하는 인재 수혈, 신인 발탁ㆍ 교육ㆍ육성에 무심한 정당 구조, 도전을 망설이게 하는 여러 공천 리스크, 기득권 남성 의원을 선호하는 전체 유권자의 의식 등이 켜켜이 작용해 정치를 노쇠하게 한다.
더 큰 문제는 이 극약처방이 국회 기능 강화에 도움을 줄지 불확실하다는 데에 있다. 애초에 젊고 다채로운 표정의 국회를 만들 이유는 국민의 인기를 끌기 위해서가 아니다. 예산ㆍ입법을 더 전문적으로 하고, 행정부를 더 제대로 감시ㆍ견제하기 위해서다. 중진이 사라지면 갑자기 국회 기능이 강화될 수 있을까. 노장이 다 노장답거나 숙련공, 베테랑인 것은 아니지만 ‘노장 퇴출’이 국회를 자동으로 강화시킬 리도 없다. 이런데도 ‘연임 금지’가 연신 거론되는 이유는 어쩌면 간단하다. 국민들이 “시원하다”며 환호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지독한 사이다인 셈이다.
4ㆍ15 총선을 앞두고 불출마를 선언하며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은 원혜영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연신 했던 당부가 하나 있다. “어디서든 노장청(노년ㆍ장년ㆍ청년)의 조화는 중요하고 국회야말로 이 조화가 필요한 곳이다. 의원도 잠깐 들어왔다 휩쓸려 나가면 지속성, 책임성이 결여된다. 물갈이로만 국민 기대를 모아보겠다는 것은 무책임하고 가벼운 대처다.”
‘연임 금지’에 박수치는 국민들을 마주하는 정치권 앞에 놓인 가장 도전적인 숙제는 ‘이 정치혐오를 어떻게 보다 근본적으로 극복할 것이냐’가 아닐까. 검은 양복 물결의 국회 본회의장 풍경에 때때로 숨이 턱 막히는 내가 이런 중진 옹호론을 펼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노장은 죄가 없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