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간쑤 남부와 칭하이 동부 ④ 먼위엔과 장예
칭하이성 시닝(西寧)과 간쑤성 장예(張掖)를 잇는 227번 국도를 따라간다. 총 길이 347km이며 고산을 두 번이나 넘어야 한다. 2007년 중국 전역을 취재 다닐 때, 이다지도 예쁜 도로가 또 있을까 싶어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국도’라 이름을 붙였다. 틈만 나면 가고 또 갔는데 변함없이 좋다. 주로 한여름에 간다. 지대가 높고 날씨는 건조해 시원한 편이다. 해발 2,261m의 시닝을 출발하면 곧바로 바오쿠허(寶庫河)를 따라 형성된 초원이다. 창문으로 바라보면 양떼가 풀 뜯는 장면이 평화롭지만, 산허리를 깎아 만든 도로는 험준하다.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인 듯...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초원을 벗어나면 강도 사라진다. 지그재그로 달려 5,248m의 다반산(達阪山)을 오른다. 차량마다 조심스레 전진한다. 숨소리도 거칠어지고 호흡 곤란이 오거나 멀미 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다. 다반은 몽골어가 기원으로 산을 넘어가는 고개라는 뜻이다. 톨게이트가 나오면 행정구역이 바뀐다. 곧바로 해발 3,792.75m의 터널로 이어진다. 1,530m 길이다. 타퉁(大通)과 먼위엔(門源)현의 경계다. 4년 동안 공사를 해 1999년 8월 18일 정식으로 개통했다.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 만든 터널이었다.
터널을 빠져나가면 하강을 시작한다. 거꾸로 올라오는 차량도 힘들어 보인다. 시닝에서 출발해 2시간을 달렸다. 고생한 보람이 있다. 미지의 세계에 느닷없이 발을 디딘 듯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불그스레한 땅이 보이고 유채로 물들었다. 멀리 바라보면 구름 위로 고산의 봉우리가 이어진다. 시야가 확 트인 전망대에 서니 구름을 경계로 아래는 유채, 위는 설산이 등장한다. 꿈에서나 볼만한 풍광이 아닌가? 한 화면에 계절을 초월하는 풍광이 어떻게 연출되는지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온몸이 정지된 듯하다. 설산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봉우리는 해발 5,254m의 강선카(崗什?) 설봉이다. 칭하이와 간쑤를 가르는 치렌산(祁連山) 동쪽 최고봉이다.
내려갈수록 유채의 향기가 진하다. 시내로 들어가도 유채가 만발하다. 세계 최대의 유채 생산지다. 유채밭 면적이 50만 무(?), 333km²가량이다. 서울 면적의 절반이 넘는다. 먼위엔으로 들어가는 도로의 광고판에 텐여우더(天佑德) 칭커주(??酒)가 보인다. 칭커주는 티베트 고원에서 재배되는 청보리를 원료로 만든 바이주(白酒)다. 2017년 티베트 라싸에서 구입한 후 귀국해서 마셨는데 향과 맛이 최상이었던 기억이 난다. 술병 디자인도 티베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술병에 ‘3000’이라고 적어 고원을 연상시킨다. 소위 해발 시리즈다. 알코올 도수로 ‘2600’부터 ‘4600’까지 구분한다. 최근에 광고를 많이 하긴 해도 칭하이 시골에까지 대형 광고판을 세울 줄은 몰랐다.
국도를 벗어나 백리유채화(百里油菜花) 풍경구로 간다. 들판 가운데 야트막한 산을 따라 유료 관광지를 조성했다. 입구가 1km 이상 떨어져 있어 공원 차량을 타고 들어간다. 놀이동산이라 말이나 낙타도 있고 7월 중순부터 보름 동안 성수기에는 사람도 많아 약간 번잡하다. 마을 뒷동산에 오르면 유채가 수놓은 바다 같은 풍경을 조망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유채 사이를 나무 계단으로 등산로를 꾸몄다. 유채의 향기를 코앞에서 들이키면 주위의 맑은 공기까지 덩달아 따라온다.
동산 꼭대기에 오르니 동서남북 모두 유채다. 동쪽으로 시선을 두면 고속열차가 가끔 빠르게 지나간다. 기차 창문을 통해 유채의 바다를 바라보는 승객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상상된다. 기차가 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봉우리가 줄지어 나타난다. 유채와 설산 사이에 정지한 구름도 새하얗다. 고산이 둘러싸서 쾌청한 날에는 바람도 거의 불지 않는다. 서쪽에는 유채 사이를 지나가는 도로가 보인다. 남쪽이 입구이자 출구다. 계단을 내려오다가 청보리밭과 만났다. 광고판이 왜 서 있었는지 이해가 된다. 유채로 만든 식용유보다 술이 비싸다. 술 홍보를 겸해 유채 대신에 청보리를 심으라고 꼬시는 뜻이 아닐까? 유채와 청보리를 함께 심은 농부는 주판알을 튕기고 있을 듯하다.
다시 국도를 달린다. 관광지가 아니라도 유채의 바다는 끝이 없다. 경치가 좋으면 그냥 정차해도 된다. 날씨가 좋으면 더 자주 멈춘다. 유채 속으로 들어가도 좋고 길을 걸어도 좋다. 유채를 생산하는 농가도 많이 나타난다. 유채기름은 식당이나 가정집에서 필수품이다. 30km 이상 벗어나야 유채가 사라진다. 고산이 병풍처럼 가로막는다. 기찻길이 계속 따라오다가 갑자기 사라진다. 터널을 뚫고 지나간다. 어둠과 함께 빠르게 산을 넘어가는 동안 세상 어디보다 아름다운 길은 이어지고 있다. 오르막이 시작된다. 양떼가 나타나는가 싶더니 해발 3,767m의 징양링(景陽嶺) 고개에 도착한다.
징양링 고개에 타르초가 휘날린다. 오색찬란하게 바람에 흔들리지만 구름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해발고도가 높아 심장이 두근거리지만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을 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낭떠러지도 아랑곳하지 않고 설산과 잘 어울린다. 토번(티베트) 왕조는 8세기에 이르러 사주(沙洲ㆍ현 둔황)를 비롯해 실크로드 주요 지역을 장악했다. 실크로드에서 라싸로 가기 위해 거치는 길이기도 했다. 징양링 고개를 넘으면 먼위엔을 벗어난다.
시닝을 출발해 198km 위치라는 표지석이 보인다. 5분 만에 치렌현 어바오진(峨堡?)으로 접어든다. 치렌과 장예로 갈라지는 길에 위치한 티베트 마을이다. 2007년에 본 어바오는 눈 쌓인 치렌산 아래 동화 속 마을로 느껴졌다. 2015년에 다시 갔더니 갑자기 고성이 생겼다. 실크로드 교역으로 번성했던 마을이라며 성곽을 신축하고 관광객을 불러모으니 당황스러웠다. 이왕이면 고성 옆에 화장실이나 만들면 좋으련만 볼 일을 보기 위해 100m를 왕복해야 한다. 이제 치렌산을 넘는 동안 화장실은 없다.
칠채단하, 억겁의 시간이 빚은 자연의 선물
치렌산을 넘어 간쑤로 간다. 동서로 800km이고 평균 해발이 4,000m가 넘는 산맥이다. 치렌산을 넘어야 실크로드의 하서주랑(河西走廊)과 만난다. 국도는 능선을 따라 우회전과 좌회전을 반복하며 길게 회전한다. 양과 야크가 자주 출몰하는 도로다. 언제 넘었는지 모르게 부드럽게 산을 넘는다. 1시간가량 지났다. 간쑤성 민러현(民樂縣)으로 들어선다. 도로 양쪽에 세차게 흐르는 물길이 보인다. 설산에서 내려온 물을 모아 척박한 땅의 농업용수로 사용하고 있다. 1시간을 더 가면 장예다. 온종일 달려온 국도도 드디어 끝이다. 40km를 더 달려 린쩌현(臨澤縣)에서 숙박을 한다. 조금이라도 일찍 칠채단하(七彩丹霞)를 보기 위해서다.
호텔에서 20분이면 칠채단하 정문인 북문에 도착한다. 울퉁불퉁 주름진 산이 가로막고 있다. 단하는 붉은 퇴적암이 융기와 침식으로 인해 형성된 지형을 말한다. 중국에 단하 지형이 많다. 칠채단하는 간쑤를 대표하는 자연 풍광으로 유명하다. 2020년부터 최상위 관광지인 5A급으로 승격했다는 소식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으나 입장료가 올랐다는 말로 들린다. 해발 1,850m로 높지 않고 언덕에 전망대를 설치했다.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면 전망대를 순환하는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순서대로 2호, 1호, 5호, 4호 전망대를 차례로 관람한다. 전망대 이름도 있다.
2호 전망대는 선연대(仙緣臺)다. 버스로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계단을 따라 언덕에 올라서면 영롱한 색감을 지닌 토양이 시선을 제압한다. 평소에 볼 수 없던 느낌이라 첫인상은 신비롭다. 바탕색은 붉어도 야릇하게 조금씩 다른 색감이다. 버스가 이동하는 도로도 붉은 계통이라 원래 산과 함께 있었던 듯하다. 기분이 붕붕 떠다니더니 힘껏 날아오르고 싶어진다. 전파 방해 장치가 있어서 드론을 날리고 싶어도 불가능하다. 선연대는 그저 맛보기일 뿐이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버스가 이동한다. 가장 넓고 사람도 늘 붐비는 1호 전망대는 운해대(雲海臺)다. 언덕을 오르면 평지가 나타난다. 계단을 따라 가장 높은 곳까지 가면 단하 지형의 참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색깔을 딱 꼬집어 구분하기 어려운 토양이다. 일곱 색깔 무지개처럼 아름답다고 칠채산으로도 불린다. 안내판이 있어 친절하게 일곱 가지 색깔을 알려주고 있다. 진홍색인 심홍(深紅), 자홍색에 가까운 저홍(?紅)과 황(?)ㆍ녹(綠)ㆍ청회(?灰)ㆍ회흑(灰黑)ㆍ회백(灰白)이다. 귀신이 다듬어 놓은 풍광이라는 자랑도 있다. 붉은색ㆍ노란색 ㆍ녹색ㆍ회색처럼 단색에 적응된 눈으로는 구분하기 쉽지 않다.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면 불의 바다가 돼 화해(火海)로 변한다는 설명도 있다.
5호 전망대인 금수대(錦繡臺)로 이동한다. 비단에 자수를 놓았다는 이름에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금수대는 계단을 올라갔다가 능선을 따라 내려오면서 관람한다. 능선 아래 협곡에서 낙타 체험을 하는 사람이 보인다. 햇볕이 다소 따갑지만 바람이 솔솔 부는 능선에서 유람이나 하지 왜 답답하게 낙타를 타는지 모르겠다. 불현듯 생각난 영화 한 편, ‘태양은 언제나 떠오른다(太陽照常升起)’ 촬영지가 바로 이곳이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추억을 담으려는 관광객은 어디에나 있다.
2007년 부산국제영화제에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는 제목으로 소개됐다. ‘다시’보다는 ‘언제나’가 훨씬 적절해 ‘중국 영화 최고의 영상미로 태양처럼 떠오르다’는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어쨌든, 영화는 ‘붉은 수수밭’의 주인공인 장원이 감독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시대와 공간이 서로 다른 4편으로 구성된 폴립티크(polyptych) 형식의 영화다. 4편이 서로 밀접하게 병풍처럼 연결된 이야기 구조를 지녀 옴니버스와는 다르다. ‘색계’와 개봉 시기가 비슷하지만 10배는 더 훌륭한 영화다. 4번째 이야기인 ‘몽(夢)’은 1958년 겨울의 중국 서부를 배경으로 한다. 여주인공이 러시아 연인의 유품을 찾으러 간다. 헤아리기 힘든 아픔을 숨긴 채 낙타를 타고 칠채단하를 지나간다.
가장 경관이 멋진 4호 전망대인 홍하대(虹霞臺)로 간다. ‘홍’은 무지개, ‘하’는 노을이다. 칠채단하와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입구에서 열기구가 날아오른다. 열기구 체험은 최근에 생겼다. 약 10분 정도 체험하는데 200위안(약 3만5,000원)이다. 버스에서 내려 계단을 따라가는데 열기구의 행진이 등장한다. 열기구가 자꾸 시야를 가린다. 약간 부럽기도 하다. 혼자라면 몰라도 초행인 사람들과 동행하느라 아직 타보지 못했다. 다음에 가면 꼭 창공에서 단하를 보고야 말리라.
홍하대에서 비몽사몽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멀리 산을 넘어가는 헬리콥터가 보인다. 자꾸 헬리콥터 소리가 거슬린다. 헬리콥터는 1인 880위안(약 15만원)으로 따로 예약은 받지 않고 2호 전망대 부근에 가면 된다. 시끄럽기도 하고 비상했다가 금방 내려오니 별로 인기가 없는 편이다. 밉상인 헬리콥터가 사라지니 고요가 찾아온다. 변화무쌍한 장면에 다시 몰입할 수 있다.
칠채단하 풍광 중 최고는 홍하대에 다 모였다. 홍하대를 먼저 보고 나면 다른 전망대로 갈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버스 연결을 따라가라는 이유가 있다. 너무 붉지 않고 담백한 맛이 풍기는 장면도 있다. 붉은 물감에 흰 물감을 섞은 듯한 느낌과 비슷하다. 겨우 일곱 색깔로만 다 담기에는 무리다. 도대체 몇 가지 색깔이 나올지 모를 일이다. 화가라면 유한한 물감으로 단하의 진한 맛을 있는 그대로 화폭에 옮길 수 있으려나? 인간에게 무한한 행복을 선사한 자연에 감사를 전할 수밖에 없다. 수없이 많은 시간을 투자한 대자연의 고마운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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