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한 엄마 따라 베트남행…주홍글씨 된 한국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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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한 엄마 따라 베트남행…주홍글씨 된 한국 국적

입력
2020.09.10 04:30
수정
2020.09.10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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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한ㆍ베트남 교류의 그늘, 귀환여성

편집자주

국내 일간지 최초로 2017년 베트남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가 2020년 2월 부임한 2기 특파원을 통해 두 번째 인사(짜오)를 건넵니다. 베트남 사회 전반을 폭넓게 소개한 3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급변하는 베트남의 오늘을 격주 목요일마다 전달합니다.

한국ㆍ베트남 이혼가정 자녀 A군이 살고 있는 베트남 남부 허우장성의 허름한 움막집 모습. 유엔인권정책센터 제공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열두 살 진규(가명)는 한국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어머니 뚜이(가명)가 2007년 한국 남자와 결혼한 뒤 이듬해 그 곳에서 자신을 낳았지만, 알코올 중독에 직업도 없던 아버지가 폭력만 일삼았다는 얘기를 이따금 전해 들었을 뿐이다. 아버지를 피해 3년 뒤 엄마와 베트남 남부 껀터시로 도망친 그에겐 외갓집이 유일한 삶의 공간이다.

진규의 유년기는 더디게 흘러갔다. 매달 10만원 가량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어머니는 늘 집을 비웠고, 베트남 글자를 가르쳐 줘야 할 외할머니는 아파서 누워만 있었다. 또래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때도 자신은 왜 지저분한 움막집에서 하루 종일 생활해야 하는지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다.

그나마 조용했던 일상도 2016년 집에 들이닥친 지역 공안이 진규에게 불법체류자라는 낙인을 찍으면서 송두리째 무너졌다. 동네 친구들의 괴롭힘이 시작된 것도 그 즈음이었다. 베트남에서 계속 살려면 여권부터 재발급해야 하지만 보증인인 돼야 할 아버지는 여태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 진규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너무 싫다.

'유령'이 된 아이들... 복지 사각지대

한국-베트남 이혼가정 현황. 그래픽=송정근 기자

9일 한국과 베트남 통계청에 따르면 2010~2019년 양국간 국제결혼 규모는 10만5,439건. 진규처럼 한ㆍ베트남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7만7,218명에 이른다. 문제는 이혼율이다. 성혼 사례 다섯 중 하나 꼴(2만1,363건ㆍ20.26%)로 몇 해 살지 못하고 헤어졌다. 아이들 통계는 아예 있지도 않다. 자녀를 낳은 이혼 커플을 전체의 20% 정도로 가정할 때 4,200명 안팎의 아이들이 존재할 것으로 어림짐작할 뿐이다.

결혼 생활에 실패한 유자녀 베트남 여성들은 대부분 모국행 항공기에 몸을 싣는다. 한국에 남아 자식을 키우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한국어에 서툰데다 어린 자녀를 맡길 친척이나 지인도 있을 턱이 없다. 쫓기듯 귀국한 베트남 한부모 가족의 삶은 비참하기 짝이 없다. 2011년부터 베트남 귀환여성을 지원하고 있는 유엔인권정책센터(KOCUNㆍ코쿤)가 2018년 실시한 껀터시와 허우장성 지역 조사 결과를 보면, 이혼 후 데려 온 한국 국적 자녀 중 34.7%가 여권이 만료된 채 살고 있다. 21.1%는 체류비자마저 만료됐다. 또 자신과 자녀의 체류 상태가 무엇인지 인지하지 못한 여성들 역시 13.7%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한ㆍ베트남 이혼가정 자녀 70%가 사실상 불법체류자라는 결론이 나온다.

심지어 불법체류 한국 국적 아이들의 46.2%는 베트남 당국에 출생신고도 안돼 '유령'처럼 살고 있다. 이혼 여성들이 베트남 당국에 출생신고를 할 때 필요한 서류를 한국에서 준비하지 못한 채 황급히 귀국하는 탓이다. 실태 조사를 진행한 부띠짱 코쿤 껀터 센터 연구원은 “귀환 여성들이 외가 호적에 자녀를 편법으로 올리려다 공안 단속에 걸려 벌금을 무는 경우도 많다”며 “한국의 시댁과 소통을 하기도 어려워 불법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하면서도 겨우 서류를 구해 출생신고를 하는 형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ㆍ베트남 이혼가정 자녀 A군이 베트남 허우장성 인근의 움막집에서 잡동사니를 정리하며 소일하고 있다. 유엔인권정책센터 제공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은’ 아이들이다 보니 정규교육과 공공의료 혜택은 꿈도 꾸기 힘들다. 그나마 코쿤이 상주하는 껀터시와 인근 허우장성의 한국 국적 자녀 중 75.2%는 청강 등 형태로 학교에 다니지만, 나머지 지역에 거주하는 아이들에게는 배움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학교 측이 기초 정보가 없다는 이유로 상급 학교 진학을 위한 학생기록부를 작성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병원에도 갈 수 없다. 전체 자녀의 30.1%는 베트남 공공의료 보험에 가입되지 않았고 “어떻게 보험에 가입하는지도 모른다”고 답한 귀환여성(31%)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수치로 드러나지 않는 정서발달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박탈감에 더해 유일하게 의지하는 어머니도 생계를 꾸리기 위해 떨어져 있는 경우(36.2%)가 태반이다. 코쿤 관계자는 “상담이 어려운, 외딴 시골에 사는 아이들의 정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처참히 무너졌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귀환여성 보듬는 교민사회

베트남 남부 껀터시에 위치한 '한ㆍ베트남 돌봄센터'에서 한국인과 이혼하고 현지로 귀환한 베트남 여성들이 재취업 수업을 듣고 있다. 유엔인권정책센터 제공

베트남 교민사회와 유관 단체들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여러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ㆍ코이카)은 내년까지 100만달러의 예산을 들여 하노이, 하이퐁, 껀터 등 5개 지역에서 귀환가족 조사 사업을 실시할 계획이다. 일회성 위로금을 지원하기보다 이혼가정 문제의 꼬인 실타래를 풀려면 정확한 현황 파악이 우선이라는 판단에서다. 한인 상공인연합회(KOCHAMㆍ코참)도 모금을 통해 이들의 생활자금을 지원하기로 했고, 태광그룹 등 현지 진출 우리 기업들은 귀환여성들의 취직을 돕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박노완 주베트남 대사는 “대사관도 귀환 한부모 가족을 위한 한국어 교육 시스템을 각 지역에 만들고 있다”며 “이들의 정착에 필요한 다양한 대안을 강구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할 것”이라고 말했다.

껀터= 정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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