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목마식 교체.” “미 정부, 넌덜머리내다.”
2011년 9월 일본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취임하자 미 주요 언론들은 냉소적인 반응들을 쏟아냈다. 2006년 아베 신조에서 간 나오토까지 5년간 5명의 총리가 거쳐간 일본 정치 현실을 비꼰 것이다. 빅토리아 뉼런드 당시 미 국무부 대변인이 “도대체 최근 수년간 몇 번째 총리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모르겠다”며 쓴웃음을 지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2012년 12월 아베 총리가 재등판해 7년8개월이라는 최장수 기록을 남겼지만, 역대 장수 총리는 그다지 많지 않은 게 일본 정치의 현주소다. 단임제인 한국의 대통령 임기(1,826일)를 넘긴 총리는 고작 7명 정도다. 4년 연임이 가능한 미국 대통령 임기는 아베 총리(1기내각 포함)가 유일하다.
일본에서 장수 총리를 보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4년에 한번 치러지는 중의원선거와 3년마다 열리는 참의원선거의 구원투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총리의 국회해산권까지 더해지니 선거 횟수는 더욱 늘어난다. 매 선거마다 대중 인기도가 높은 정치인을 총리로 내세워야 승률이 높다 보니, 수시로 총리를 갈아 치워 선거에 임하는 게 일본 정치의 일상이다.
적어도 일본 자민당 의원들에게 아베 총리는 구세주에 다름아니었다. 일본 최고의 정치 명망가 집안 출신인데다, 매 선거를 압승으로 이끄는 카리스마까지 갖췄다. 증세, 가케학원 비리 등 정치적 위기 때마다 중의원 해산 및 재선거라는 전가의 보도를 활용,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했으니 선거의 얼굴마담으로 이보다 적임자가 없었을 테다.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이 재발, 총리직을 물러나겠다고 발표한 아베를 능가할 카리스마 정치인을 한동안 찾기 어려운 게 자민당의 현실이다. 자민당으로서는 각 파벌의 이익을 대변해 줄 총리를 내세워 선거전에 나설 공산이 크다. 파벌들이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에 나설 경우 단명 총리가 속출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일본 정치의 위기이지만 우리로서는 기회다. 최악의 상황에 놓인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총리 후보의 성향에 맞춘 정밀한 접근방법이 요구된다. 우선 차기 총리가 유력한 스가 장관과는 이른바 일본의 소재ㆍ부품ㆍ장비 수출규제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게 좋다. 이 문제는 아베 총리가 일본내 기업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강행한 만큼, 차별화 전략 차원에서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대신 아베의 정치 유산을 물려받겠다는 그와 과거사 문제를 논의한들 시원한 답을 얻어내기 어려울 것이다.
스가의 임기가 아베 총리의 잔여 임기인 1년을 넘지 못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내년 10월로 다가온 중의원 선거의 간판 스타로는 스가의 인지도가 너무 떨어진다는 것이다. 아베의 라이벌로, 높은 대중적 인기를 가진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에게 차차기 총리 기회가 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평소 아베와 잦은 대립각을 세워 온 이시바는 독실한 기독교 신도로 유명하다. 그가 재임하면 최소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할 일은 없다. 과거사 문제에도 전향적이다.
실타래처럼 꼬인 한일관계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다 정교한 핀셋전략으로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단명 총리시대 가능성이 높아진 일본과의 외교협상에서 우리 정부의 실력을 보여줄 때다.
한창만 지식콘텐츠부장 cm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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