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평등 개선속도 여성변화속도에 못미쳐
여성 능력 비해 당면 현실은 과거 수준
기본적 인권 문제이자 인구문제 해결책
양성평등 주간을 맞아 지난주 통계청이 펴낸 '2020 통계로 본 여성의 삶'의 내용은 여성고용률의 증가, 경력단절 여성의 감소, 공공기관 및 대기업 여성관리자 비율의 상승 등 긍정적인 방향의 변화를 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양성평등에 대한 여성들의 인식과 평가는 그 어느 때보다 부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왜 그럴까? 그것은 아마도 양성평등 개선의 속도가 우리 사회와 여성의 변화를 따라가기엔 턱없이 느리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 노동시장 커리어에 대한 여성들의 기대와 의지는 굳건해졌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준비는 탄탄해졌다. 이러한 변화의 결과는 교육 성과와 명시적인 성차별이 적은 노동시장 영역에서 특히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2009년부터 여성은 대학진학률에서 남성을 앞지르기 시작했고, 전공선택에서의 남녀 간 차이도 크게 줄었다. 1990년대 말부터 사법, 행정, 외무 등 국가고시 합격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비약적으로 증가하여 일부 시험에서는 남성을 앞지르게 되었다. 사법연수원에서 임용되는 판검사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도 2000년대를 통해 20%에서 3분의 2로 높아졌다.
여성의 역할에 관한 문화적인 규범도 빠르게 변했다. 1993년의 한 조사결과를 보면 부모가 원하는 딸의 직업이 교사, 주부, 약사, 공무원, 예술가 순으로 나타나 아들의 희망 직업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반면, 2014년 실시된 직업능력개발원의 조사결과는 부모가 원하는 딸과 아들의 직업이 거의 비슷해졌음을 알려 준다. 근래의 실증적인 연구결과에 따르면 부모의 성 역할 규범이 변화하면서 딸의 인적자본에 대한 상대적인 투자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가정과 사회의 문화적인 변화는 여성들이 일찍부터 일하는 생애를 내다보고 그에 맞는 준비를 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이렇듯 기대치와 능력이 확연하게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여성들이 당면하는 현실은 과거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맞벌이 가구 여성은 20년 전과 다름없이 남성에 비해 세 배 넘는 시간을 가사노동에 쓰고 있다. 지난해 여성 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은 남성 대비 70%를 넘지 못했다. 6세 이하 자녀가 있는 여성의 경력단절 비율은 여전히 40%에 달한다. 이러한 통계가 보여 주는 현실을 어떤 여성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더디게나마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도 위로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양성평등은 현실적인 문제보다 상위의 가치를 갖는 기본적인 인권의 문제다. 여기에 더하여 양성평등 실현은 우리 사회가 당면한 인구변화 문제를 풀어가기 위한 핵심적인 방안이기도 하다. 가정과 직장에서 여성이 직면하는 불리함은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기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일과 가정이 충돌할 때 다수의 여성은 과거와 달리 일을 선택할 것이다. 필자의 최근 연구결과는 여성의 상대적인 노동시장 여건이 개선되면 여성 취업자의 혼인율과 출산율이 높아진다는 것을 보여 준다. 여성 경력단절 감소는 인구변화가 초래할 수 있는 노동시장 불균형을 완화하는 효과적인 방안이기도 하다.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이 현재의 일본 수준으로 높아지면 2042년까지 노동인구가 약 83만명 늘어날 것이다. 특히 30대와 40대 초반 여성고용 확대는 청년 인력 감소의 좋은 대응책이다.
아직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조차 제정되지 않은 현실은 양성평등 실현이 그리 쉽지는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평등한 사회로 가기 위한 노력에 적지 않은 경제적 비용과 사회적 갈등이 수반될 수 있지만, 이는 충분히 감내할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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