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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의 ‘적과 동지’

입력
2020.09.07 18:5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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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철
장인철수석논설위원

대권행보 나서며 ‘정치의 품격’ 선언
‘혁명’보다 국민 공감 얻는 개혁에 무게
급진 강경세력 견제할 국민 지지 절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정치인은 미디어 영상 속에서 ‘빛의 허상(虛像)’으로 존재한다. 그 허상은 인간적 실체와 동떨어진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뉴스 속 이미지는 안쓰러울 정도였다. 늘 찌푸린 표정과 혹독한 언행 탓인지는 몰라도 대중에게 짜증을 불러 일으키는 캐릭터에 가까웠다. 그래서 나는 이낙연 신임 당 대표가 그의 바통을 이어받은 걸 매우 다행스럽게 여긴다.

이 신임 대표는 여야 간 육탄전이 일상사인 국회에서도 상대에 대한 존중과 담담한 여유로 ‘저열한 싸움’을 피해왔다. 총리 시절인 2017년 대정부질문에서 “최근 MBC나 KBS의 불공정한 보도 기억나는 것 있느냐”는 야당 의원의 의도적 질의에 그는 “잘 안 본다”고 했다. 의원이 “뉴스 좀 보라”고 힐난하자, “꽤 오래 전부터 좀 더 공정한 채널로 보고 있다”며 장내에 파다한 웃음을 유도하기도 했다.

이 대표가 ‘대권 행보’인 총선에 나서며 밝힌 포부는 ‘무엇을 하겠다’는 목표가 아니고, ‘어떻게 하겠다’는 과정이었다. 그는 “국민이 갈증을 느끼는 것은 정치의 품격 아닐까 생각한다”며 “진중한 정치를 하겠다”고 했다. 언제부턴가 저열함이 일상이 돼버린 정치판에서 그가 거론한 ‘정치의 품격’은 자칫 복고풍 스타일리스트의 한가로운 넋두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게 스타일 얘기만은 아니라고 본다.

현 정권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귀결된 일련의 과정을 ‘촛불혁명’으로 규정하면서 ‘혁명정부’를 자처해왔다. 그건 박 정권에 대한 염증과 보다 유능하고 공정한 정부를 바라는 국민의 여망을 동력 삼아 아예 기존 사회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혁명’을 도모하려는 정치적 급진주의였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던 문 대통령의 취임사에도 그런 ‘혁명적 자의식’이 담겨 있다.

혁명은 소수 강경파가 주도한다. 소수 강경파가 타협 없이 혁명을 관철하려면 말은 거칠어지고 행동은 과격해질 수밖에 없다. 비판에 아예 귀를 닫고, 반대파를 적으로 돌리는 선동과 ‘갈라치기’가 판을 치게 된다. 합리적 절충을 모색하는 정상적 정치과정은 소멸되고,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는 저열함 밖에 남지 않는다. 이 대표의 ‘정치의 품격’과 ‘진중한 정치’는 막장으로 전락한 정치 현실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흔히 더불어민주당을 진보로, 국민의힘을 보수로 재단한다. 하지만 국내 정파를 진보나 보수로 나누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양극화 해소, 복지 확대 같은 진보 아젠다까지도 이미 모든 정파에서 전략적 가치로 공유되는 현실이다. 남은 건 그 목표를 향한 정책의 속도와 방법에서 급진적 변혁을 택할 거냐, 보다 점진적이고 신중한 방식을 쓸 거냐의 차이에 불과하다. 이 대표의 ‘진중한 정치’는 굳이 ‘혁명’이 아닌 신뢰받는 정치과정을 통해서도 충분히 시대정신을 구현해 나갈 수 있다는 새로운 정치적 입장을 반영한다.

그런 점에서 이 대표가 7일 첫 국회 대표연설에서 “대한민국의 지향에 대한 최소한의 정치적 합의를 이루자”며 야당에 손을 내민 건 소신이 담긴 ‘행동’이다. 그러나 이 대표의 그런 행보는 벌써부터 당 내외의 거센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이미 ‘의ㆍ정 합의’나 ‘2차 재난지원금’ 문제에서 당내 야심가나 강경파들은 시비를 걸고 있고, 야당은 호시탐탐 빈틈을 노리고 있다.

이 대표는 진작 정치판을 “정글 같은 곳”이라고 했다. 그 말대로 그의 주변엔 이미 사방에서 치명적인 적들이 몸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적들에 대항하기 위해 “국민께서 신망을 보내주신 그런 정치를 하겠다”고 했다. 우리 사회가 그의 바람대로 든든한 우군이 되어 ‘정치의 품격’과 ‘진중한 정치’를 옹호해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장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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