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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굵게'가 먹히려면

입력
2020.09.08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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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서울=뉴스1) 이광호 기자 = (서울=뉴스1) 이광호 기자 =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강화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조치를 1주일 연장하며 방역 수칙 확대 적용으로 오는 7일 부터 프랜차이즈형 제과제빵점과 아이스크림·빙수점에서도 영업시간 내내 실내 취식이 금지되고 포장과 배달만 허용된다. 6일 서울의 한 프랜차이즈형 제과제빵점에서 직원이 객석 사용 불가 안내문 게시를 준비하고 있다.2020.9.6/뉴스1

(서울=뉴스1) 이광호 기자 = (서울=뉴스1) 이광호 기자 =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강화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조치를 1주일 연장하며 방역 수칙 확대 적용으로 오는 7일 부터 프랜차이즈형 제과제빵점과 아이스크림·빙수점에서도 영업시간 내내 실내 취식이 금지되고 포장과 배달만 허용된다. 6일 서울의 한 프랜차이즈형 제과제빵점에서 직원이 객석 사용 불가 안내문 게시를 준비하고 있다.2020.9.6/뉴스1

며칠 전 일행과 음료 포장(테이크 아웃)을 위해 카페를 찾았다가 직원에게 핀잔을 들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마음에 드는 메뉴가 없어 그냥 나가려고 하자, 직원은 “들어오신 이상 출입명부를 작성해 주셔야 한다”고 요구했다. 다시 “대표자 한 명만 하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모두 다 하셔야 합니다”라고 채근했다. 이후 카페에 갈 때마다 출입명부 쓰기가 껄끄러워 아예 휴대폰으로 QR코드 생성하는 법을 익혔다. 커피 한잔 테이크 아웃도 힘든 요즘의 서울 모습이다.

카페의 작은 소동이 있던 바로 전날, 지방에 다녀오는 길에 한 고속도로 휴게소를 찾았다. 휴게소 식당은 주전부리를 사러 온 사람들로 북적댔다. 다른 사람과 몸을 부대껴야 하는 상황도 피하기 어려웠다. 입구에 비치된 출입명부를 작성하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일부는 마스크를 턱이나 코에 걸친 채 활보했지만 제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야외 파라솔 테이블은 만원이었다. 고속도로 휴게소는 일종의 사회적 거리두기 해방구와도 같았다.

두 장소 모두 수도권이다. 다시 말해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똑같이 적용받는 곳이다. 하루 차이로 목격한 이 두 장면은 정부의 방역대책이 원칙이 아니라 현장 상황에 따라 얼마나 천차만별의 수위로 적용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거리두기 2.5단계 적용 직후 방역당국 수장은 거리두기 효과도 내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짧고 굵은 거리두기”를 역설했다. 그러나 일선의 방역 현실은 △업주의 노력이나 재량 △관할 공무원의 단속 빈도 △‘랜덤’에 가까운 행인들의 시민 의식 등에 좌우되고 있다.

정부 정책, 특히나 이번 코로나 사태처럼 사람 목숨이 달린 정책이 그때그때 다르게 적용된다면 불만과 뒷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정책에 대한 신뢰 하락도 불가피하다. 코로나 재확산 과정에서 거리두기 단계를 설정하느라 우왕좌왕한 정부의 모습을 보면, 실제 당국자들이 식당 카페 휴게소 PC방 노래방 독서실 등의 사정을 제대로 파악하고서 이런 정책을 국민에게 강제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경기 파주시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확진자가 쏟아지자 정부는 프렌차이즈형 카페에 대해 착석 금지령을 내렸다. 손님들이 개인 카페로 몰리는 ‘풍선 효과’가 발생하자 당국은 또 그제서야 개인 카페에도 같은 제한을 걸었다. 카페에서 밀려난 이들이 제과ㆍ제빵점, 아이스크림ㆍ빙수 전문점 등 디저트 카페로 몰리자, 또 여기에 추가 착석 금지령이 떨어졌다. 가뜩이나 어려운 자영업자들의 반발을 의식한 단계적 조치였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충분히 풍선효과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부의 거리두기 조치엔 빈 구멍이 너무 많았다.

식당과 주점 영업을 오후 9시로 제한한 조치도 정교하게 설계되지 못했다. 식당과 주점의 문이 닫히자 9시 이후에도 술을 앉아 마실 수 있는 편의점 매출이 급증했다. 한강공원이나 근린공원에는 밤마다 거대한 술판이 벌어졌다.

정부나 국민 모두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상황이라 항상 완벽한 정책이 나오기는 어렵다. 방역이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책이 아니라 국민들의 자발적인 실행이라는 점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정책이 시민의식이나 인간의 선의에만 의지하는 건 곤란하다. 부동산 정책에서 그랬던 것처럼 인간의 욕망은 한 곳을 누르면 또 다른 곳에서 부풀어 오를 수밖에 없는 법이다. 방역당국의 바람처럼 ‘굵고 짧게’ 끝내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정교한 대응이 필요하다.

얼마 후면 코로나 사태 이후 사실상 처음 맞는 ‘민족 대이동’의 명절이 온다. 지금처럼 계속 디테일에 실패한다면, 이 사태는 굵고도 길게 갈지 모른다.

정민승 지역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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