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성범죄 등 악성 범죄자의 신상을 웹사이트에 공개하는 디지털교도소가 한 신상 공개자의 죽음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그는 디지털교도소에 게재된 자신의 혐의가 사실이 아니라고 억울함을 호소했었고, 디지털교도소는 주변인 등으로부터 사실 확인을 거쳤다는 입장이다. 범죄자의 신상을 널리 알려 추가 범죄 피해를 막겠다는 게 디지털교도소의 목적이겠지만, 사적 처벌의 정당성이나 또 다른 피해 우려에 대한 논란은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었다.
□해외에서 이런 사이트들이 일찌감치 논란거리가 됐다. 미국에는 상습적으로 바람을 피우는 이들의 신상과 수법을 폭로하는 치터 빌(CheaterVille.com), 리포트 유어 엑스(ReportYourEx.com) 등 사이트가 있다. 명예훼손을 피하려 노력하지만 항의와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2014년부터 아동 성범죄자 신상을 공개해 온 캐나다 크립 캐처스(Creep Catchers)에 대해선 반응이 진지하다. 비판도 있지만 경찰이 제 역할을 다하도록 한다는 지지 여론이 적지 않다.
□최근 국내에선 디지털교도소 같은 자경단(自警團)이 활성화하는 분위기다. 자녀 양육비를 지급하라는 법원 결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양육비를 주지 않는 이혼자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배드 파더스(Bad Fathers)도 활발히 운영 중이다. 넓게 보면 청와대 국민청원도 비슷한 기능을 한다. 경찰의 미진한 수사, 법원의 비상식적인 판결, 억울한 사연 등을 고발해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면, 가해자 처벌 효과와 함께 수사가 확대되고 배당이 변경되는 결과를 낳곤 한다.
□자경단의 활성화는 단순치 않다. 불륜은 애초에 사법의 영역이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국내 자경단들은 형사 사법 시스템의 실패에서 비롯한 면이 있다. 성범죄 엄벌에 대한 요구가 그렇게 높은데도, 며칠 전 초등학생을 강간한 성매매 전과 남성을 집행유예로 내보내고 전자발찌 착용도 기각한 법원이다. 양육비 미지급으로 대놓고 법원을 비웃어도 아무 제재가 없는 현실이다. 사적 처벌은 근절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공적 사법시스템 복원 없이는 어려워 보인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