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품(棋品)과 인품(人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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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품(棋品)과 인품(人品)

입력
2020.09.07 15:14
수정
2020.09.07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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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박성진서울여대 중문과 교수

©게티이미지뱅크


바둑에서 실력의 고하를 ‘단(段)’으로 표시하는 현행 제도는 일본이 만든 것이다. 바둑의 세계화에 일본이 먼저 성공했기 때문에 중국도 ‘단’을 사용한다. 그렇지만 사실 그 연원은 삼국시대 위(魏)나라 한단순(邯鄲淳, 132~220 추정)이 지은 ‘예경(藝經)’속 ‘기품(棋品)’에 있다.

한단순은 바둑의 품격을 아홉으로 나누었다. ‘예경’은 사라졌지만 원나라 도종의(陶宗儀)의 ‘설부(說郛)’와 송나라 장의(張擬)의 ‘기경(棋經)’에 ‘기품’의 내용이 전해진다.

‘바둑의 아홉 품격(棋九品)’은 다음과 같다. “일품(一品) 입신(入神), 이품 좌조(坐照), 삼품 구체(具體), 사품 통유(通幽), 오품 용지(用智), 육품 소교(小巧), 칠품 투력(鬪力), 팔품 약우(若愚), 구품(九品) 수졸(守拙)”이다. 지금은 ‘구단’이 높지만 옛날에는 ‘구품’이 하수라는 점이 눈에 띈다.

‘구품’에는 각기 다른 속성이 있다. ‘일품 입신’은 판에서 신처럼 노닐기에 그 깊이와 변화를 짐작할 수 없다. 싸우기도 전에 상대를 압도하니 대적할 사람이 없다. 물처럼 움직이고 산처럼 차분하다. ‘이품 좌조’는 애쓰지 않아도 판이 훤하게 보이니 손이 나가는 대로 두어도 모두 합당하다. ‘입신’과 반 점 차이다.

누구나 약점이 있게 마련이거늘 ‘삼품 구체’는 뭇 사람의 장점을 고루 갖추었으니 ‘입신’에 비해 약간의 손색이 있을 뿐이다. 대략 한 점 차이다. ‘사품 통유’는 정진으로 공력을 이루었고 현묘한 깨달음도 스스로 터득했다. 드러남 없이 판을 주도한다. ‘구체’와는 두 점 차이다. ‘오품 용지’는 싸움에는 귀신같지만 머리에만 의지한다. ‘육품 소교’는 큰 포국은 못하지만 기발한 수법으로 전투에 이기는 재주가 있다. ‘칠품 투력’은 치고받는 능력이 뛰어나지만 힘에 의지한다. ‘팔품 약우’는 얼핏 보면 모자란듯한데 내실이 있어 침범하기 힘들다. ‘구품 수졸’은 강적을 만나도 자신을 지킬 줄 안다. 분수를 알아 경거망동 안 하기 때문이다.

‘기품’은 바둑 기량만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경계(境界)도 포착하고 있다. 지금의 ‘단’제도가 승률을 위주로 만들었기에 통속적이고 이해하기 쉽지만 ‘품’이 주는 우아한 맛과 멋은 부족하다.

옛 사람들은 “세상 일이 바둑 한 판(世事棋一局)”이라고 했다. 정조(正祖)도 ‘바둑(棊)’이란 시에서 말했다. “이기고 지는 모든 일이 한 판의 바둑(萬事輸贏一局棊).” 역시 바둑을 세상사와 관련짓고 있다. 그래서인지 바둑 두는 모양도 천태만상이다. ‘입신’부터 ‘수졸’까지 ‘기품’있는 고수의 바둑도 있고, ‘기품’이 아예 없는 하수의 바둑도 있다.

하수의 바둑은 상대를 사지에 모는 게 전부이다. 상대 돌 하나를 잡겠다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귀에서 맞은편 귀까지 뱀처럼 쫒아간다. 상대는 판이 좁은 것을 원망하며 도망치고, 쫒는 자는 돌을 잡을 때까지 멈추지 않겠노라 맹세한다. 이런 바둑은 보고 싶지 않다. 바둑을 둘 때는 판 전체를 볼 줄 알아야 한다. 경중(輕重)과 완급(緩急)을 알아야 하고 작은 곳에 몰두해서 큰 곳을 잊으면 안 된다. 작게 이기고 크게 지면 안 된다.

세상 일 처리와 사람 노릇은 바둑과 닮은 점이 있으므로 ‘기품’과 ‘인품’을 연결해서 보기도 한다. 바둑은 져도 인품에서는 이기는 사람도 있고 정반대인 경우도 있다. 또한 바둑도 지고 인품에서도 지는 사람도 있고, 바둑도 이기고 인품도 빛나는 인물이 있다.

‘기품’이 높은 자는 지혜를 겨루지 힘을 겨루지 않는다. 기품이 낮은 자는 힘을 겨루지 지혜를 겨루지 않는다. 기품이 높은 자는 이겼다고 우쭐대지 않는다. 기품이 낮은 자는 이기면 제 정신을 잃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으스대다가 한번 지게 되면 상대를 원수나 적으로 간주한다. ‘기품’있는 사람은 돌 하나 집 하나에 집착하지 않는다. ‘인품’ 있는 사람은 털 끝 같은 이익을 위해 인간의 도리를 버리지 않는다. 사회에도 바둑 같은 ‘품’이 있다면 작금의 우리는 어디에 해당할지 궁금하다. ‘기품’이 높기를 바라면서, 오늘부터 시작하는 ‘응씨배(應氏杯)’에서 한국을 대표한 기사(棋士)들의 선전을 기대한다.

박성진 서울여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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