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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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방탄소년단(BTS)은 전 세계 대중음악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인 HOT100에서 신곡 'Dynamite(다이너마이트)'로 2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 BTS는 미국에서 차곡차곡 성장세를 보이며 서구 음악 산업에서 무시할 수 없는 주류로 자리 잡아 가고 있었으나, 특히 이번 성취는 그들의 커리어에 정점을 찍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빌보드 역사상 43번째로 발매 첫 주에 HOT100 차트 1위를 차지한 ‘다이너마이트’는 2위에서 50위까지 곡들의 판매량을 모두 더한 수치를 상회하는 압도적 판매량을 보였다. 2주 연속 정상을 유지한 곡도 역대 20곡에 불과하다. BTS 이전에 빌보드 HOT100 차트에 1위로 입성한 가수가 모두 미국, 영국, 캐나다 출신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성취는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꿈이었다. 이 꿈이 현실이 된 배경에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팬덤’으로 불리는 방탄소년단의 팬덤 ‘아미(ARMY)’가 있다.
아미는 누구인가
먼저 아미의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으나 BTS의 트위터 계정 팔로어 숫자(약 2,900만명)와 YouTube 'BANGTAN TV' 채널 구독자 수(약 3,600만명)를 바탕으로 추산한다면, 아미들로 작은 나라를 하나 세울 정도는 될 것이다. 게다가 팬덤 구성원들의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군, 전 세계에 걸친 거주 지역 등을 고려하면 “아미는 어디에나 있다(ARMY is everywhere)”라는 말은 결코 과언이 아니다. 아미는 아이돌 팬덤이 10대 소녀 팬들 위주로 구성됐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정면으로 맞선다. 이는 BTS가 광고하는 상품들의 종류(자동차, 고가의 안마의자, 음료 등)와 아미들의 다양한 활동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아미 팬덤의 다양성은 BTS의 영향력이 어느 특정 세대나 지역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증거다.
무엇을 하는가
이처럼 인구통계학적으로 다양한 아미는 어떤 일들을 할까. 다른 가수들의 팬덤과 마찬가지로 아미 역시 일상적으로는 BTS가 수상을 하도록 투표하고, 뮤직비디오와 음원의 스트리밍, 음반 판매량에서 기록을 세우기 위한 활동을 한다. 이는 기록 경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BTS라는 아티스트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음악활동을 위한 실질적 기반을 다지는 활동이다. 나아가 아미는 BTS가 전달하는 음악적 메시지와 가치를 세상에 구현하기 위한 일종의 '가치 지향적 커뮤니티'의 형태로 진화해 왔다. 전 세계의 많은 학자가 BTS와 아미에 대해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아미 내에는 다양한 집단 혹은 개인들이 존재한다. 그중 일부를 소개하자면 소외계층이나 사회적 문제에 도움이 되고자 매달 기부를 조직하는 집단, 아미 언론의 역할을 수행하는 웹사이트, 학술 저널 등이 조직돼 있다. 올해 초에는 영국 런던 킹스턴대학교에서 아미 학자들이 참여하는 ‘BTS 국제 학제간 콘퍼런스’라는 콘퍼런스가 열렸고, 8월에는 아미 학술저널(Rhizomatic Revolution Review) 주최의 온라인 콘퍼런스도 개최됐다.
그 외에도 아미 학생들에게 무료로 공부를 가르쳐 줄 아미 선생님을 연결해 주거나, 아미들의 고민을 상담해 주는 상담심리 전문가들의 모임도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의료진, 법조인 등 아미 내부의 다양한 전문가 집단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BTS의 메시지를 구현하기 위한 모임을 만들어 커뮤니티를 이뤄 가고 있다. 특히 트위터처럼 다양한 사람이 연결-접속하는 네트워크 망 안에서 탈중심적으로 연결된 개인과 집단들은 사안에 따라 흩어지거나 모이며 유연한 연대를 조직함으로써 거대한 아미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갱신하고 있다.
장벽을 뛰어넘다
이러한 전 지구적 아미 커뮤니티의 형성에는 번역 계정들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들은 BTS의 트윗, 콘텐츠, 관련 기사나 소식이 있을 때마다 거의 실시간으로 영어 및 외국어로 번역하거나 반대로 방탄소년단 관련 외국 소식이나 기사 등을 한국어로 번역하기도 한다. 자원봉사로 번역 활동을 하는 이들은 단순한 문장 번역뿐 아니라, 설명을 덧붙여야만 이해할 수 있는 한국의 특수한 사회문화적 맥락을 전달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이를테면 'Ma City'라는 곡에 등장하는 “062-518”이라는 가사는 광주의 지역번호와 5·18 민주항쟁을 암시하는데, 이런 맥락을 외국 아미들에게 소개함으로써 BTS의 노래 가사와 한국의 역사를 전달한다. 이처럼 이들은 한국 아미들과 외국 아미들로 하여금 그들 사이의 언어·문화적 장벽을 넘을 수 있도록 문화적 교량 역할을 한다.
이러한 번역 계정들 덕분에 외국 아미들은 한국어 노래 가사를 여러 번역본을 비교해가며 그 의미를 깊게 이해할 수 있고, 투표, 스트리밍, 자선활동 등 공동의 목표가 있을 경우 전 세계 아미들이 함께 협력할 수 있도록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2018년 11월 방탄소년단의 한 멤버가 비공식석상에서 입었던 티셔츠 뒷면의 원폭 이미지가 국제적으로 문제가 되었을 때, 번역 계정들을 중심으로 5개 대륙의 26명의 아미가 모여 그 사건의 역사적, 정치적 배경을 설명하는 A4 106페이지 분량의 백서를 발간한 것은 번역 계정들의 사회 문화적 교량으로서의 역할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기부 활동 역시 아미의 중요한 특징들을 선명하게 드러내 준다. 첫째, 아미는 BTS의 메시지와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기부처를 찾아 매달 정기적으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세우고 기부 활동을 조직한다. 이 과정을 통해 기부가 아미들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데, 여기에서 BTS의 메시지를 구현하려는 가치지향적 공동체로서의 성격이 두드러진다. 둘째, 전 지구적으로 이루어지는 기부의 규모가 압도적이라는 점도 중요한 지점이다. 흔히들 이를 양적 차이로만 환원하곤 하는데, 그러한 판단은 양적 변화가 질적 변화로도 이어지곤 한다는 점을 놓친다.
편견을 깨뜨리다
양적 변화가 일정 단계에 이르게 되면 질적인 비약을 불러일으켜 새로운 질적 상태로 이행하게 된다는 것을 ‘양질전화(量質轉化)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이 거대한 규모의 전 세계적 움직임은 다양한 영역에서 나타난다. 앨범이 발매될 때마다 기네스 기록을 깨뜨리는 놀라운 스트리밍 기록과 음악상 투표에서의 압도적인 표 차이, 여러 영역에서 주기적으로 이뤄지는 큰 규모의 기부 등 BTS의 메시지와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게 하고 그것을 구현하고자 하는 아미의 집단행동들은 이미 사회에 질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원래 서구 음악 시장은 영미권 중심으로 굴러가는데, 여기에는 영어만을 언어라고 생각하는 서구 리스너들의 뿌리 깊은 편견도 작용한다. 그런데 BTS와 아미는 바로 여기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빌보드 HOT100 차트의 순위는 음원 판매량, 스트리밍 수, 라디오 스핀 수와 같은 기준으로 결정된다. 특히 라디오 스핀 수는 영어 노래를 부르는 영어권 국가의 가수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지표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번 빌보드 HOT100의 2주 연속 1위는 BTS를 향한 아미의 적극적인 신뢰와 지지가 만들어 온 양적 변화가 영미권 및 영어 중심주의의 균열이라는 질적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이 곡은 팬데믹을 살아내는 모두를 위로하고자 쓰였지만, BTS가 수년에 걸쳐 전달해 온 메시지를 아는 이들, 즉 아미에게는 곡에 담긴 위로와 긍정이 더욱 빛을 발한다. 팬덤의 활동으로 수년에 걸쳐 태운 도화선이 다 닳아 다이너마이트를 폭발시켜 BTS를 막아온 견고한 벽에 행복과 기쁨으로 균열을 내는 순간이다.
이지영 세종대 대양휴머니티칼리지 교수
서울대 철학과에서 프랑스 철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영화이론과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영화미학을 공부했다. 현재 세종대에서 철학을 가르치며 영화철학과 영상미학을 연구하고 있다. 2018년 방탄소년단과 아미가 이뤄내는 새로운 예술 형식을 분석한 'BTS 예술혁명'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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