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30대 다운증후군 딸에게 배우는 게 훨씬 많아요"

입력
2020.09.10 13:00
수정
2020.09.10 13:59
0 0

<4> 다운증후군? 유튜브 '선쁘' 인기몰이
여동생 귀걸이 챙기고 가족 선물 사는 순수함
'인터뷰'를 '인터규'로 혼동했지만 바로 잡아
"장애인 가족이 불행할 것이란 편견 버려야"

대한민국 장애인은 261만 8,000명(작년 말 기준)에 달한다. 전체 인구 100명 중 5명은 장애인으로 결코 작지 않은 숫자지만, 주변에서 그들을 찾아보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왜 그런 걸까. 아마도 장애인들이 주로 폐쇄된 공간에서 그들끼리만 어울리고, 스스로 비장애인과 교류하는 걸 차단한 것이 원인일 수 있다. 실제로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비장애인 가운데 장애인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비율은 17.9%에 불과하다.

그러나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교류가 활발하지 않으면, 장애 인식개선을 더디게 만들 뿐이다. 특히 장애인이 다큐멘터리 속 안타까움의 대상으로만 계속 비춰지게 되면, 왜곡된 시선이 비장애인의 머리 속에 겹겹이 쌓여 장애인들은 점점 더 위축되고 수동적 존재로 머무르게 된다.

‘이래선 안 되겠다’며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장애인들이 있다. 그들은 ‘불편하지만 불행하진 않다’며 유튜브 영상을 통해 비장애인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자신들의 일상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장애인으로 살아가며 느낀 편견과 생활 속 불편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는 게 소통을 강화하고 오해를 줄일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한국일보는 세상 속으로 당당히 뛰어든 화제의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 지체장애인, 다운증후군 장애인을 차례로 만나 우리가 몰랐던 그들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들어봤다.

성인 다운증후군 유튜브 채널 '선쁘'의 주인공 박모씨가 최근 인천 부평구 카페에서 한국일보에 유튜브 영상의 뒷이야기를 설명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선쁘'는 박씨와 가족이 운영하며 그들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구독자들과 공유한다. 정준희 인턴기자

성인 다운증후군 유튜브 채널 '선쁘'의 주인공 박모씨가 최근 인천 부평구 카페에서 한국일보에 유튜브 영상의 뒷이야기를 설명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선쁘'는 박씨와 가족이 운영하며 그들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구독자들과 공유한다. 정준희 인턴기자


'어른스럽고 순수한' 딸이 집안의 구심점

다운증후군 장애인 박모(33)씨와의 인터뷰에는 박씨의 부모님이 동행했다. 부모님이 운영하는 카페에 들어가기 전에 야외에서 사진촬영을 요청하자, 박씨는 더운 날씨에도 힘든 내색 없이 밝은 표정으로 다양한 포즈를 취했다.

올해 초 개설한 박씨의 유튜브 채널 ‘선쁘’의 구독자 수가 1만명을 넘자 언론에서 인터뷰 요청이 잇따랐다. 그런데 인터뷰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아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언론은 박씨가 장애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다운증후군 장애인 가족이 어떤 시련을 겪었는지 등 주로 ‘불쌍한’ 모습을 담으려고만 했다. 박씨 어머니는 “장애인 가족이 불행할 것이란 편견을 갖고 접근해와 불편했다”고 말했다.

‘선쁘’ 채널에는 박씨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박씨와 함께 살고 있는 부모님이 영상을 찍어 전달하면, 박씨의 여동생이 영상을 편집해 유튜브에 올린다. 때로는 직접 찍었거나 제목을 붙인 영상이 올라오기도 한다.

박씨는 ‘집안의 구심점’이다. 박씨 아버지는 “요즘 딸 덕분에 적적하지 않게 웃고 산다”고 전했다. 어머니도 “아기 같은 모습으로 집안을 밝히고, 가끔은 어른스러운 말로 식구들에게 감동을 준다”며 대견해했다.

박씨를 가까이서 바라본 가족 입장에서 보면, 다운증후군 장애인의 성격이 모두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은 편견이다. 박씨는 학습 욕구가 높아, 방문 학습지를 통해 10년째 읽고 쓰기를 익히고 있다.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에 대해 박씨는 “말을 더 잘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가족들은 박씨를 위해 집안 곳곳에 낱말 카드를 붙여 놓았다. 기자와 대화 도중 ‘인터규’와 ‘인터뷰’를 혼동하자, 어머니는 네 번 정도 박씨에게 ‘인터뷰’가 맞는 표현이라고 설명해줬고, 대화가 끝나기 전에 박씨는 ‘인터뷰’라는 단어를 확실히 알게 됐다.

박씨가 유튜브를 통해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장면을 영상으로 담았다. 유튜브 캡처

박씨가 유튜브를 통해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장면을 영상으로 담았다. 유튜브 캡처


박씨는 주변 사람들을 살뜰히 챙긴다. 예쁜 귀걸이를 보면 여동생을 떠올리고, 월급을 받으면 주변 사람에게 건넬 선물을 산다. 부모님이 운영하는 카페의 아르바이트가 혼자 일하는 날이면 가게에 들러 일을 돕기도 한다. 청소를 도와주는 아주머니의 수고를 덜어주려고 집안 청소를 미리 해놓고 외출할 때도 있다. 어머니는 “딸이 가족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우리가 딸에게 배우는 게 훨씬 많다”고 말한다.

유튜브 영상에는 박씨가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자주 담겨 있지만, 처음부터 의사소통이 원활하진 않았다. 어머니는 수년 전까지만 해도 박씨를 ‘나이 먹은 만큼’ 대했지만, 박씨에게 말을 걸 때는 네 살 아이처럼 대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천천히 쉬운 단어를 골라서 짧은 문장으로 대화를 해야지, 딸과 의사소통이 원활하다는 점을 알게 된 것이다. 박씨 어머니는 “다른 다운증후군 가족이 ‘선쁘’ 채널을 많이 보는데, 그들도 우리가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소통을 더 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박씨 가족은 다운증후군 장애인이 자립할 기회가 부족하다고 강조한다. 박씨의 경우 장애인 복지사업시설인 ‘예림일터’에서 종이컵을 제작하는 일을 맡아, 운이 좋은 편이지만, 대개는 스무 살이 넘으면 일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다운증후군 장애인이 시설에만 머무르는 것도 지양해야 할 점으로 지적됐다. 그럴 경우 장애인끼리만 소통하게 돼, 비장애인과 어울리면서 익힐 수 있는 언어능력과 사회적응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박씨 가족은 정부가 지원하는 활동보조 서비스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도 말했다. 보조사 재량에 서비스가 맡겨져 있다 보니, 단순한 이동 보조 위주의 서비스가 제공되는 등 서비스의 편차가 클 수 있기 때문이다.

박씨 가족의 희망사항은 앞으로도 ‘소소한 행복을 주는 유튜버’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것이다. “앞으로도 딸의 눈높이에 맞춰 성취감을 주고 싶다. 그래서 행복한 미소가 담긴 영상을 꾸준히 올릴 것이다.” 세상과 진솔한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은 박씨의 소박한 소망은 이뤄질까요.

박씨 가족이 한국일보와 인터뷰 도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씨 부모는 "우리가 딸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딸에게 배우는 게 훨씬 많다"고 말했다. 정준희 인턴기자

박씨 가족이 한국일보와 인터뷰 도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씨 부모는 "우리가 딸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딸에게 배우는 게 훨씬 많다"고 말했다. 정준희 인턴기자



이혜인 인턴기자 hanehane0120@naver.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