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를 적으로 돌리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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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를 적으로 돌리는 정부

입력
2020.09.04 18:00
수정
2020.09.04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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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그릇 싸움’ 이긴 의사들 승리 아니다
어설픈 정책 추진하다 백기투항한 정부 
편가르기로 전문가 내친 업보는 어쩌나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4일 오후 서울 회현동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서 열린 최대집 의사협회장과의 합의 서명식을 위해 식장으로 향하자 전공의들이 저지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사 파업은 일반 노동자 파업과는 다르다고 한다. 노동자들이 사용자를 상대로 근로계약을 다투는 반면, 개인 사업자인 의사들이 정부 의료정책이라는 공적 담론을 상대로 싸우는 건 맞다. 그래도 자신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집단 행동이라는 점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다. 노동자가 임금을 포함한 근로조건 개선을 사용자에게 요구한다면, 의사들은 영역을 방어하기 위해 정부를 상대한다. 자신들의 파이를 키우고 몫을 지키겠다는 의미에서 ‘밥그룻 싸움’의 속성을 무시할 수 없다. 의사들이 정부의 4대 의료정책(공공의대 설립과 의대정원 확대, 한방 첩약 급여화, 원격의료) 폐지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은 공급 확대와 유사 직역 진입으로 인한 수익 악화를 걱정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코로나 정국에서 국민 불안을 키웠던 전공의·전임의 파업이 예상보다 길지 않게 끝났다. 정부가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키로 하면서 의사들은 밥그릇을 지켜낸 결과가 됐다. 그렇다고 의사들이 승전가를 부를 입장은 아니다. 코로나 전선에서 이탈해 파업하는 순간 이미 의사들의 대의명분은 사라졌다. 집단 휴진 여파로 병원을 전전하던 응급환자가 사망한 사건에 대해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밥그릇은 지켜냈지만 ‘인종, 종교, 국적, 정당정파 또는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의무를 지키겠다’고 다짐한 히포크라테스의 맹세는 빛이 바래고 말았다.

정부는 더 큰 상처를 입었다. 의사 파업을 비판하는 압도적 여론을 등에 업고 어설픈 정책을 밀어붙이던 복지부는 백기투항한 모양새가 됐다. 얼마 전까지 ‘K방역은 의료진 덕분’이라며 의사를 치켜세웠던 정부 아닌가. 의사들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한 공공의대와 의대정원 카드를 들고 나왔다가 원점 재검토로 후퇴한 갈지자 정책의 책임을 누군가는 져야 마땅하다.

애초 정부가 정책 발표 전에 의사단체와 머리를 맞댔다면 없었을 혼란이다. 의대정원이나 공공의대 문제는 각론에서 의견이 다를지 몰라도 부족한 현실을 개혁해야 한다는 데는 양측 이견이 없었다. 며칠 전 TV토론에서 “수가를 올려 의료비 부담이 증가하는 상황을 원하는 게 아니다. 전달 및 이용체계를 개혁하고 의료환경을 선진화하자는 데 있다”고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장이 입장을 밝히자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 또한 “의대정원 확대나 공공의대 설립 또한 의료환경 개선과 무관치 않다”고 화답한 것을 봤다.

문제는 서로에 대한 신뢰 부족이다. 정부가 모든 현안을 원점에서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하는데도 전공의들이 끝까지 ‘문서 보증’을 요구한 건 정부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정부여당이 의대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을 발표하면서 의사단체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게 불신의 싹이었다. 파업이 시작되자마자 업무복귀 명령을 내리고 저항하는 전공의들을 수사기관에 고발하면서 불신은 적대감으로 변했다.

의사들이 병원으로 복귀한 뒤에도 정부를 향한 불신과 적대감은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다. 파업 말미에 문재인 대통령이 뿌린 분열의 소금 때문이다. 코로나와 사투 중인 간호사들을 격려하기 위한 메시지라지만 정작 간호사 단체도 크게 반기지 않았다. 도리어 방역의 짐을 벗어던진 의사와 그 짐을 떠맡게 된 간호사의 편을 가르는 분열적 언어만 가득하다.

의사와 간호사 모두 공익에 기여하는 전문가 집단이다. 전문가 집단의 편을 가르는 전략이 어떤 정치적 목적에 부합하는지 모르겠다. 의사를 적으로 돌려 간호사의 지지를 얻으려 했다면 그 메시지 정치는 실패한 게 분명하다. 편을 갈라 지지세력을 동원하는 기본전략의 재점검이 필요해 보인다.






김정곤 뉴스룸2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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