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웨이브 '갱스 오브 런던'
편집자주
극장 대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작품을 김봉석 문화평론가와 윤이나 칼럼니스트가 번갈아가며 소개합니다.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 에 연재됩니다. 한국일보>
20년간 런던을 장악하고 있던 폭력조직의 보스 핀 월리스가 살해당한다. 라이벌 조직의 음모도 아니고, 대단한 킬러의 솜씨도 아니었다. 알바니아 갱단 구역의 낡은 아파트를 찾은 핀에게 총을 쏜 것은, 트레일러에 살고 있는 웰시 트래블러 집단의 청년이다. 우연이나 실수였을까? 아니면 배후에 누군가 있는 것일까? 핀의 아들인 션은 반드시 범인을 찾아, 모든 것을 걸고 복수하겠다고 다짐한다. 런던을 불바다로 만들어서라도.
'갱스 오브 런던'은 영국 드라마다. 스카이 아틀란틱에서 제작된 오리지널 드라마 중에서는 가장 많은 제작비를 기록했다. 인도네시아에서 화끈한 액션영화 '레이드'를 만들었던 가렛 에반스가 크리에이터로 참여했고, 2개의 에피소드를 연출했다. '프론티어'와 '디바이드' 등을 만들었던 자비에르 젠스 감독이 3개, '더 넌'의 코린 하디 감독이 4개의 에피소드를 연출했다. 모두 연출력을 인정받은 영화감독이다. 갱단, 폭력조직의 암투를 그린 드라마는 많이 있었지만 '갱스 오브 런던'의 스케일은 압도적이다. 설정부터 액션까지 거대하고 화려하다.
설정에서 액션까지 화려하다
핀 월리스의 조직은 런던의 다른 폭력조직 위에 있다. 알바니아계, 파키스탄계, 중국계, 쿠르드계 등등 출신지역으로 나뉜 조직들은 월리스의 통제를 인정하고 따랐다. 핀은 친구인 에드 듀마니와 함께 거대 투자회사와 건설회사 등을 운영했다. 지역사회의 존경받는 사업가다. 파키스탄 갱단의 보스 아시프의 아들 나시르는 런던 시장에 출마했다.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유력한 후보다. 알바니아 갱단의 보스 루안은 나이지리아에 진출하여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동네 유흥가에서 돈을 뜯으며 살아가는 폭력배를 넘어 정재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국제적인 커넥션을 가지고 있는 거물들이다.
내가 갱스터영화에 빠지게 된 작품은 프랜시스 코폴라의 '대부'였다. 자상한 아버지이자 이탈리아인들의 힘든 일을 해결해 주는 ‘대부’의 다른 얼굴은 잔혹하고 거침없는 마피아다.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지 않기 위해 대학을 갔던 셋째 아들 마이클은 조직이 위기에 몰리자 돌아온다. 음모와 배신, 폭력의 아수라장을 거치고 난 마이클은 과거와 다른 인간이 된다. 그건 저 세상의 악마나 괴물이 아니다. 오로지 성공을 위해 헌신하고, 방해되는 것을 모조리 해치우는 우리의 모습이다.
갱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대부' 시리즈는 폭력조직의 성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대부2'에서는 아버지의 과거와 마이클의 현재가 교차된다. 이민자였던 아버지는 성공하고, 가족과 이웃을 지키기 위하여 갱이 된다. 많은 폭력조직의 출발점은 소수집단의 권익보호를 위한 자구책이었다. 그러나 조직이 커지면서 권력을 가지면 같은 민족이나 집단을 등치며 살아가는 흡혈귀가 된다. '대부3'에서는 마피아가 정치와 경제, 종교 등의 권력집단과 결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폭력조직은 사회의 악이지만, 사회를 지배하는 집단은 늘 그들과 이해를 함께 한다. 필요에 따라 이용하고, 위기에 처하면 버린다. 새로운 폭력조직은 끝없이 생겨나니까.
'갱스 오브 런던'의 폭력조직들도 호시탐탐 틈을 노리고 있었다. 정점에 서고 싶은 욕망은 누구나 가득하고, 적의 힘이 약해지고 내가 강해질 때까지 모두 기회만 보고 있다. 랄레 조직은 쿠르드반군에게 무기와 물자를 공급하고 있다. 개인의 치부와 영달보다는 민족이 먼저다. 랄레의 남편은 과거 터키군에게 고문을 받다가 죽었고, 배후에는 아시프가 있었다. 당장이라도 복수하고 싶었지만 아직 힘이 약하기에 평화를 유지해왔다.
핀이 죽자, 랄레는 아시프의 헤로인을 빼돌린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예상외의 사건들이 벌어진다. 덴마크 특수부대 출신의 킬러들이 션을 죽이려 한다. 일반적인 폭력조직 간의 다툼이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뭔가 흑막이 있다. 그러면서 핀의 비밀도 하나둘 드러난다. 은밀하게 젊은 여자와 도망가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었고, 가족과 친구에게 수많은 거짓말을 했다. 점입가경이다.
보스가 된다는 건 견디는 것
'갱스 오브 런던'의 거대한 설정은 매력적이다. 그러면서 캐릭터의 힘이 강하다. 2화의 시작은 션과 빌리의 어린 시절이다. 핀과 마리안은 아이들을 데리고 숲으로 간다. 장남인 션에게 중요한 선택을 하게 한다. 세상에서 싸워 이기려면 원치 않는 일, 나쁜 짓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션은 망설인다. 마지막까지. 마리안의 말처럼 션은 다정하고, 빌리는 강인하다. 그러나 운명은 그들의 인성 혹은 욕망과는 다른 길을 걷게 한다. 다정한 션은 보스가 되기 위해 다짐하고 견디면서 돌진한다.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어떤 과감한 짓도 해버린다. 차남인 빌리는 회피한다. 마약에 취하고, 향락에 빠져든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니까. 그러나 준비한다. 운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그날은 결국 올 것이니까.
그리고 마리안. 배우도 이야기해야 한다. '왕좌의 게임'에서 캐틀린 스타크를 연기했던 미셸 피어리다. 에다드가 억울하게 죽은 후, 복수를 위하여 절치부심하던 강인한 여성. 그러나 ‘피의 결혼식’에서 처참한 배신을 당하며 죽어간 여인. 4개의 시즌에서 캐틀린 스타크는 중심이었다. 그가 이끄는 스타크 가문이라면 능히 승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만큼 처절했고, 카리스마가 있었다. 2014년 한 시즌만 돌아온 잭 바우어의 '24' 시즌9에서 미셸 피어리는 테러조직의 실세를 연기한다. 피도 눈물도 없는, 복수의 여신을 너무나 잘 연기했다. '갱스 오브 런던'의 미셀 피어리도 그들과 거의 같고, 너무나 적역이다.
뭘 해도 악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갱스 오브 런던'의 이야기는 폭력조직의 암투를 중심으로 흘러가지만, 중요한 인물이 이물질처럼 끼어 있다. 혼란의 와중에 션의 심복이 되는 엘리엇은 위장 경찰이다. '무간도'와 '신세계' 등에서 보듯, 역할에 깊이 빠져들면 혼란스러워진다. 언젠가 고발하고 체포해야 할 악당들에게 공감하고, 스스로 악의 손길에 젖어들기도 한다.
매번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것은 션만이 아니다. 4회전 복서였던 아버지는 도박꾼에게 고용되어 중요한 시합마다 패배를 택했다. 엘리엇은 아버지의 길을 걷고 싶지 않다. 하지만 과연 무엇이 승리일까. 선과 악의 문제도 아니다. 어느 것을 택해도, 우리는 이미 악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떤 길을 택해야 할까.
모든 이는 생존을 원하고, 최후의 승자를 갈구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자와 손을 잡아야 하고, 모든 감정을 버리고 패자를 내쳐야 한다. 누가 이길지는 끝까지 봐야만 한다. '갱스 오브 런던'도 씁쓸한 마음으로 지켜본다. 션이나 에드 혹은 아시프, 누가 이길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들 모두 상처를 입고, 궁지에 몰린다.
하지만 보다 보면 알게 된다. 그들은 결국 장기판의 말일 뿐이다. 행동대장 정도다.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갱들이 아니다. 뒤에 있는 누군가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손에 피를 묻히는 졸일 뿐이다. 이 드라마를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승리해도 우린 장기판의 말일 뿐
'갱스 오브 런던'에서 가렛 에반스의 이름을 보고 기대한 것 하나는 액션이다. 인도네시아에서 고유 무술인 실랏에 매혹된 가렛은 다큐멘터리 '인도네시아의 비술: 펜칵 실랏'(2007)을 찍고 무술영화 '메란타우'(2009)를 만든 후, 2012년 선댄스영화제에서 '레이드:첫번째 습격'을 공개하며 찬사를 받았다. 홍콩도, 태국도 아닌 인도네시아의 무술영화에 수많은 관객이 열광했다. '레이드 2'(2014)는 액션도 좋았지만, 범죄조직의 길고 엄혹한 투쟁을 보여주었다. '갱스 오브 런던'을 암시하는 작품이었다.
'갱스 오브 런던'은 서양 갱들의 싸움이기에 무술 액션보다는 총격전과 거친 몸싸움이 위주이지만, 가렛 에반스의 장기도 잘 드러난다. 연출을 맡은 첫 에피소드에서 엘리엇이 핀의 살인범을 찾으러 갔다가 근육남과 1 대 1 대결을 벌이는 장면은 엄청나다. 역시 가렛 에반스의 연출이다. '갱스 오브 런던'은 가렛 에반스의 장점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드라마다. 액션에서도, 이야기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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