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촉해보세요, 자꾸 보면 정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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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촉해보세요, 자꾸 보면 정듭니다

입력
2020.09.03 16:24
수정
2020.09.03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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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선
이지선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

©게티이미지뱅크


나는 교통사고로 전신 화상을 입고, 얼굴을 포함한 55% 면적의 피부에 피부 이식 수술을 받았다. 어디 부러지거나 으스러진 곳이 없었으므로 피부 이식 수술만 받으면 이전의 모습과 비슷하게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조각조각 이식된 피부는 시간이 지날수록 수축했고 주변의 피부를 당기면서 변형이 일어나 관절 모양도 달라지게 만들기도 했다. 사고 후 7개월 만에 집에 돌아와서 맞닥뜨린 것은 모든 게 그대로인데 나만 변해 있는 현실이었다. 어두운 밤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은 내가 알던 내가 아니었다. 사람의 형상이라고 하기엔 영화에서 보던 외계인 쪽에 가깝게 보였다. 내가 본 그 얼굴은 내가 아니라고 부정했던 시간도 있었다. 그러나 머릿속에서 지운다 해도 없어질 얼굴도 아니었고, 이제 그 얼굴은 내가 아무리 견디고 더 노력해도 내 힘으로는 되돌릴 수 없는 막막한 현실인 것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런 모습을 한 나를 보고도 같이 웃고, 그저 지금 여기 함께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주며, 너무도 달라진 나를 전과 똑같이 대해주는 가족과 친구가 있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따뜻한 현실이었다. 그 사랑이 나를 다시 거울 앞에 서게 해주었다. 거울에서 멀찍이 떨어져 보는데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을 무척 어색한 순간이었다. 사람을 처음 만나면 인사하라고 배웠으니깐, 인사부터 시작했다. “안녕 이지선?” 처음엔 거울이 보일 때마다 인사만 하고 쓱 지나가곤 했는데, 이상하게도 이 얼굴이 자꾸 보니깐 정이 드는 것이다. 그렇게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새로운 나의 모습을 다시 받아들이게 되고, 이제 나는 이렇게 생겼구나…하고 익숙해져 가며 다시 새롭게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내가 또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받아들여주었다고 해서 세상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집 문밖을 열고 나가면 전에는 한 번도 받아보지 않았던 시선들이 꽂혔고 사람들은 나를 구경했고 하나같이 불쌍히 여겼다. 그러던 중에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출연 제의가 왔고, 그 프로그램이라면 나를 가감 없이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나를 자꾸 보니 정들었던 것처럼, 한두 번은 구경했던 사람들도 네다섯 번씩은 구경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람들이 화면을 통해서 나를 보고 익숙해져 제발 내 앞에서, 또 나와 비슷하게 생긴 (평범한 외모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에게 더는 그런 표현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이런 사람에게도 24시간 슬픔만 있는 게 아니라 희로애락이 있음을 알 수 있기를 바랐다. 첫날 방송이 되고 다음 날 동네 슈퍼마켓에 가서 나는 정말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나를 쳐다보고 구경했던 사람들이 내게 다가와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기 시작한 것이다. 몇달 전 거울 앞의 나처럼 말이다.

만나본 적이 없어서, 잘 몰라서, 두렵기도 하고 어렵기도 해서 멀리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점점 피상적으로 보이는 몇 가지 모습에만 집중하여 기억하게 되고 사실과는 동떨어진 편견과 고정관념을 갖게 된다. 인간은 매일 복잡하고 많은 것을 직면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생각을 경제적으로 하기 위해 모든 것에 직접 반응하기보다는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은 일반화를 하며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원래 가지고 있던 생각에 부응하는 일이 더 자주 일어났다고 생각하며 그 편견을 더욱 견고히 하기도 한다. 이렇게 인지적 게으름으로 만들어진 편견을 다시 사실에 가깝게 되돌아가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접촉’이다. 지속적이고 친밀한 접촉 경험을 통해 새 정보를 접하게 되며, 두렵고 불안한 감정이 아닌 편안하고 익숙한 쪽으로 옮겨 간다는 것이 바로 미국의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의 '접촉 가설'이다.

꼭 장애인이 아니어도 좋다. 내가 그간 잘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생각을 경제적으로 하려고 과도하게 '이 사람은 그런 사람이야'라고 일반화해 버렸던 사람은 없는지, 한두 번 보인 모습만 기억해서 '맞아, 내 말이 맞다니깐' 해버린 적은 없는지 돌아보면 좋겠다. 생각의 게으름에서 벗어나게 해줄 새로운 사람들과의 접촉 경험들을 늘려가면 좋겠다. 그러면 전에는 '그들'이라고 말했던 사람들을 점점 '우리'라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자꾸 보면 정이 드니깐 말이다.

이지선 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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