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여성 선박교통관제사 배출 이후
반세기 만에? '금녀' 벽 허문 '거친 바다 지킴이'
거친 바다 표면의 안전을 책임지는 해양경찰청 해상교통관제센터는 '유리천장'이 높았다. 1973년 여성 선박교통관제사가 배출된 뒤 여성이 관제센터장을 맡은 적은 지난해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남성 중심 조직 문화로 '금녀'의 영역으로 통한 이곳에서 47년 만에 '여성 1호 센터장'이 탄생했다.
주인공은 이순호(45) 신임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여수항 해상교통관제센터장. "선박 사고 없는 안전한 바다를 만들겠습니다." 3일 전화로 만난 이 센터장의 목소리는 따뜻하면서도 힘이 넘쳤다.
이 센터장은 2001년 인천지방해양수산청 소속 인천항 관제센터에서 일을 시작했다. 해양경찰청은 중부지방해양경찰청 평택항 관제센터 시설행정팀장(주사)이었던 이 센터장을 사무관으로 승진한 뒤 여수항 관제센터장으로 지난 2일 전격 배치했다. 남성 선박교통통제사 출신을 센터장에 줄줄이 앉혔던 전례를 고려하면 파격 발탁이었다. 배경은 이 센터장의 다양한 경험과 꼼꼼한 업무 능력이었다. 여수산업단지를 끼고 있는 여수항에는 위험물을 실을 육중한 배들이 수시로 통행한다.
단발머리를 한 이 센터장의 체격은 동료 남성보다 작았지만, 이력은 묵직하다. 이 센터장은 지난해 거대한 크기의 컨테이너 하역용 겐트리 크레인(일명 골리앗 크레인)을 실은 선박이 서해대교를 통과하는 비상관제 상황에서 관제 업무를 이끈 이력이 있다. 앞서 러시아 선박이 광안대교와 출동한 사건이 있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에서 이 센터장의 순발력 있는 판단이 빛을 발했다. 이 센터장은 "서해대교를 통과할 예정인 선박이 거대 크레인을 싣고 있다는 도선사의 보고를 1시간 전에 받고 비상관제에 돌입했다"며 "급히 선박 도면을 구해서 안전하게 통과 가능한 수심부터 계산했고, 최대한 물이 빠졌을 때 지나갈 수 있도록 선박의 속도를 조절해 무사히 통과시킨 뒤에야 긴장을 풀 수 있었다"고 당시 일을 들려줬다.
이 센터장은 지난해 7월부터 올해 1월까지 평택항 관제센터장 직무대리를 맡아 센터장 업무를 미리 경험했다. 관제사 업무는 물론 빈틈없던 관제시설 유지관리 업무 처리도 이 센터장의 장점이었다. 해양경찰청이 남성 선박교통통제사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자리의 적임자로 이 센터장을 낙점한 이유다.
선박교통관제사는 관제센터에서 레이더, 선박자동식별장치(AIS), 초단파무선통신장비 등 선박 위치 탐지와 통신 설비를 이용해 선박의 안전 항해를 지원하는 업무를 한다. 선박교통관제사가 되기 위해선 5급 이상 항해사 면허를 소지하고 1년 이상 승선 경력을 쌓은 뒤 해경청 소속 일반직 공무원 경력경쟁채용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대학에서 정보통신공학을 전공한 이 센터장은 전공을 살려 선박교통관제에 도전했다. 관제사로 일하며 선박 사고를 막지 못했을 때의 아픔을 이 센터장은 마음에 문신처럼 새기며 산다. '여성 1호' 센터장의 책임감은 컸다.
"현장에 강하고 신뢰 받는 관제센터를 만드는 게 제 일이죠. 위험한 화물 운송이 많고 해역이 복잡한 여수항과 인근 해역을 운항하는 선박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1993년 포항항에 처음 설치된 관제센터는 전국 항만과 연안수역 등 20곳에서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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