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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나오자 나랏빚 논란이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555조8,000억원 규모인 정부안이 그대로 국회를 통과할 경우, 내년 국가채무액은 올해보다 105조6,000억원이 급증해 945조원에 이르고, 올해 이미 43.5%까지 오른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도 내년엔 단숨에 46.7%로 급등하기 때문이다. 국가채무 급증은 매년 재정지출은 팽창하는데 비해, 세수는 거의 늘지 않는데 따른 현상이다.
▦ 비판론자들은 문재인 정부 들어 국가 채무가 급증하고 있으며, 이대로 가다간 재정 위기를 맞을 위험이 크다고 주장한다. 실제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약 9년간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27%에서 36%로 약 9%포인트 상승하는데 그쳤다. 반면 내년 말 46.7%가 된다면, 현 정부는 집권 불과 4년 반여 만에 국가 채무 비율을 10.7%포인트나 올려놓는 셈이 된다. 전문가들은 나랏빚 규모보다도 ‘증가 속도’에 특히 우려하고 있다.
▦ 현 정부의 국가 채무 급증은 복지 확대나, 불황 타개를 위한 확장 재정 같은 정책 요인 때문만은 아니다. 이번 정권은 당초 ‘큰 정부’나 ‘공공일자리 확대’ 등을 선언했을 때부터 이미 전통적인 건전 재정 정책의 틀에서 벗어날 각오를 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지난해 문 대통령은 “(GDP 대비)40%가 (건전 재정의) 마지노선이라는 근거가 뭐냐”며 기획재정부를 질책함으로써 ‘재정 준칙’ 속에 유지돼 온 나랏빚 방벽을 직접 무너뜨렸다.
▦ 현 정권이 나랏빚을 겁내지 않게 된 데는 ‘현대통화이론(MMT)’이 작용했을 수 있다. 주류 재정학에서는 정부 지출이 세수를 초과하는 적자재정을 금기시해 왔다. 반면 MMT는 인플레이션 위험이 크지 않다면, 경기 부양을 위해 나랏빚이나 재정적자 걱정 말고 최대한 돈을 푸는 게 좋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국, 일본 같은 기축통화국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재정 적자 확대로 국가신용도가 하락하면 통화 위기 위험이 급격히 커질 수 있다. 따라서 나랏빚을 늘려도 반드시 국가신용도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관리돼야 할 필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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