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위해 “올 추석엔 고향 못가요”?
지자체, 봉안시설 분향실 폐쇄?
귀성객 받지 않기 캠페인도 검토
올해 추석에는 귀성, 귀경행렬은 물론 성묘 행렬이 빠진 ‘초유의 추석’ 풍경이 연출될 것으로 보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일환으로 납골당 등 봉안시설들이 분향실을 폐쇄하고 온라인 성묘 체제 전환에 나서는가 하면 서울에 올라오는 역귀성 포기객은 물론 자녀들의 귀성을 만류하는 어른들도 늘고 있다. KTX도 이번 특별수송기간 좌석 절반을 비운 채 운행하기로 했다. 확진자가 연휴와 휴가철 직후 급증했던 만큼, '일상 포기'에 그치지 않고 올해만큼은 ‘민족 대이동’ 명절도 포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올해 추석 성묘는 온라인으로"
2일 한국장례문화진흥원은 이날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공문을 발송, ‘온라인 추모ㆍ성묘 서비스’ 이용신청 접수에 들어갔다. 진흥원 관계자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추석 명절 봉안시설에 사람들이 운집할 문제가 초래될 수 있다”며 “공립 봉안 시설은 물론 사설시설들도 신청해서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진흥원에 따르면 전국의 봉안시설은 437개, 공동묘지 515개소, 자연장지 132곳 등 1,000여곳에 이른다.
인천시는 일찌감치 ‘언택트 추석’을 예상하고 지난달 인천가족공원에 안치된 고인 유족들을 상대로 온라인 성묘와 차례상 차리기 서비스에 나섰다. 인천가족공원은 하루 평균 이용객이 3,000여명에 이르는 시설이다. 특히 공원은 오는 30일부터 내달 4일까지 분향실 폐쇄는 물론, 시내 주요 지역과 추모공원 사이를 오가는 셔틀버스도 운행하지 않기로 했다. 강릉시도 사전예약을 받아 성묘객을 분산시키고, 명절 연휴 기간 제례실과 휴게실을 폐쇄해 음식물 섭취를 금지할 방침이다. 명절이 코로나19에 희생될지언정, 불행의 씨앗이 되는 것은 막아보겠다는 취지다.
지방 곳곳 "서울 사람들 올해는 오지마라"
이 같은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 제주도가 고향인 회사원 김모(49)씨는 “며칠 전 고향 어른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벌초 때 내려오지 말라고 해 19일 항공편을 취소했다”며 “2대 독자 객지 생활 22년만에 두 번째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현 직장 입사 초기 집안 어른들의 양해로 '열외' 받은 적이 있다. 추석 당일 성묘 풍습이 없는 제주에서는 음력 8월 초하루를 전후해 ‘괸당(친척의 제주어)’들이 모여 벌초한다. 제주에선 벌초 불참을 큰 불효로 여겨 일본 등 해외에서 친척들이 방문할 정도다.
고택과 종가들이 모여 있는 경북 안동 하회마을도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수준의 추석 풍속도를 예고하고 있다. 서애 선생 15대 종손 류창해(64)씨는 "지난달 30일(음력 7월12일) 서애 선생 아버님 제사에 예년 50명 이상이 모였지만, 올해는 먼 거리에 사는 사람은 오지 말라고 하고 인근에 사는 후손들만 참석해서 지냈다”며 “추석 명절 차례(중구절, 음력 9월9일)도 안동에 있는 사람들만 모여서 지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퇴계 선생 17대 종손 이치억(44)씨 입장도 같다. 또 학봉 선생 종손 김종길씨는 "매년 50~100명의 문중 어른들과 후손이 각 집안 성묘를 다녀와서 종택에 방문하는데 올해는 규모 조정이 불가피 할 것 같다”며 “정부 발표를 보고 각 소문중에 연락해 행사를 대폭 줄일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방 어른들 "역귀성도 포기했다"
출향민들의 고향 방문을 앞두고 ‘귀성객 받지 않기 캠페인’ 카드를 테이블 위에 올려 놓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도 있다. 전남 무안군 관계자는 “선제적 방역 차원에서 수도권 귀성객 접촉을 최소화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며 “군민들을 상대로 귀성객 이동 자제를 요청해줄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계획은 무안에 전남도청, 경찰청, 교육청 등 행정기관이 밀집해 코로나19 확산시 타격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녀가 사는 서울로 역귀성 하던 어르신 행렬도 이번 추석에는 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확진자 추이를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확진자 대부분이 서울과 경기 수도권에서 발생하고 있는 만큼 지역에서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싣기 어려운 상황이다. 경남 진주에 사는 김모(75)씨는 “명절 때마다 큰 아들이 사는 서울로 올라가면 근처 사는 딸네들 가족, 손주까지 한데 모여 즐겁게 지냈다”며 “그러나 뉴스를 보고 올해 추석 회동은 포기했다. 코로나19가 빨리 잡히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연휴ㆍ휴가 직후 확산 '학습효과'
앞으로 한 달이나 남은 추석 명절을 앞두고 일반 국민들은 물론, 지자체들이 비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데에는 사람들의 이동과 모임이 빈번한 연휴, 휴가철을 기점으로 코로나19가 확산했다는 학습효과가 있다. 지난 4월 30일(부처님오신날)부터 5월 5일(어린이날)까지 6일간 황금연휴의 후유증은 막대했다. 서울 이태원 클럽발 집단감염이 확인된 5월 7일 이전 20여일 동안 신종 코로나 지역발생 확진자는 한 자릿수에 머물렀고, 이 가운데 5일은 0명이었다. 하지만 연휴기간 클럽에서 노출된 바이러스는 무증상 환자 등을 통해 삽시간에 퍼졌고, 9일부터 5월말까지 일일 평균 22명의 확진자가 지역에서 발생했다. 이후 소규모 집단감염을 고리로 6월에는 일일 평균 33.5명으로 껑충 뛴 지역발생 사례는 7월 말 한 자릿수로 줄어들 때까지 산발했다.
또 현재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폭증 수준의 바이러스 확산세도 여름 휴가철과 방학 시즌과 맞물린다는 평가다. 7말8초 휴가철인 7월 27일부터 8월 9일까지 2주간 일일 평균 확진자 수는 13.4명에 불과했지만, 이후 2주는 무려 187.7명까지 급증했다. 지난달 15일부터 2일까지 지역발생 확진자만 5,347명으로 하루 확진자 281.4명이 발생하고 있다. 현재의 확산세가 누그러지더라도 방역당국이 이달 30일부터 5일간의 추석 연휴에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부 나서서 '민족 대이동' 막아야
이 같은 문제가 제기되자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1일 오후 긴급공지를 통해 2,3일로 예정됐던 추석 승차권 예매일정을 1주일씩 연기하면서 오는 29일부터 내달 4일까지 추석 대수송기간 창 측 좌석만 발매하기로 했다. 객차 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위해 절반의 좌석은 비운 채 운행하겠다는 것이다. 남은 좌석은 확진자 추이를 봐가며 판매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현재로선 가능성이 작다.
기모란 국립암센터 예방의학과 교수는 “추석은 각지에 흩어졌던 가족, 동네 지인들이 서로 만나 인사하고 앉아서 음식을 나누는 등 현재 ‘하지 말라’는 모든 행위를 다 하게 되는 때”라며 “정부가 나서 이동제한령 등 초강력 조치를 내려서 민족 대이동을 막지 않으면 더 높은 3차 ‘파도’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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