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가가 다시 빙하기를 맞고 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2.5단계 방역 조치 실시 등으로 관객이 크게 줄어들고 있어서다. 관객 급감으로 주요 영화들의 개봉 연기가 잇따르면서 다시 극장 관객이 쪼그라드는 악순환고리가 형성돼 가고 있다. 국내외 대작들까지 개봉 눈치보기에 들어가면서 추석은 물론, 연말 성수기가 사라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2일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 1일 관객수는 6만4,792명이었다. 코로나19가 다시 급증하기 직전인 3주전 일일 관객수(8월 11일ㆍ24만4,881명)보다 75%가량 줄었다.
지난달 중순 이후 극장 관객 수는 급감하고 있다. 1주일 중 가장 관객이 많이 드는 토요일을 기준으로 했을 때 지난달 29일 관객수는 19만139명으로 2주전인 15일(65만7,836명)보다 45만명 가량이 줄었다. 오래 전부터 ‘극장 구원자’로 여겨졌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테넷’이 개봉(26일)했음에도 22일 관객수(19만5,928명)와 큰 차이가 없었다. 국내에 두터운 팬층을 형성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신작 ‘테넷’조차 코로나19 앞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형국이다.
지난달 중순까지만 해도 극장가는 회복세가 뚜렷했다. 충무로 블록버스터 ‘승리호’와 ‘영웅’ 등이 여름 개봉을 미뤘지만,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와 ‘반도’, ‘강철비2: 정상회담’, ‘오케이 마담’ 등 한국 영화들이 7월 중순부터 1주일 간격으로 ‘거리 두기 개봉’을 하면서 관객 몰이에 성공했다. 이들 영화 덕분에 지난달 총 관객수는 883만4,728명으로 7월(561만8,681명)보다 220만명 가량이 늘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2,478만6,121명)에 비해 3분의 1수준에 불과하지만,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된 3월 이후 월 최고치다.
이달은 지난달 하순보다 더 암담하다. ‘국제수사’와 ‘디바’, ‘담보’ 등 지난달 말 이달 초 개봉 예정이었던 영화들이 줄줄이 개봉을 연기한 여파가 클 전망이다. 극장가 대목 중 하나인 추석 연휴 시장도 냉랭한 분위기가 벌써 감지된다. ‘디바’가 23일 개봉으로 가닥을 잡았고, ‘국제수사’와 ‘담보’가 9월말 극장가에 뛰어들 채비지만, 추석 극장가에 흥행 불씨를 지피기에는 경량급이다.
당초 추석 대목을 겨냥했던 대작 ‘승리호’와 ‘싱크홀’은 개봉을 무기 연기했다. 이달 상영키로 했던 할리우드 영화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는 내년 상반기로 개봉 시기를 멀찌감치 옮겼다. 투자배급사 메리크리스마스의 김동현 본부장은 “‘승리호’ 개봉 시기를 내부적으로는 정했지만 환경적 요인이 워낙 커 뭐라 말할 수 없다”며 “영화 개봉 시기를 인간의 힘으로 결정할 수 있는 시장 상황은 이젠 사라졌다”고 말했다. 조성진 CGV 전략담당은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영화들끼리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고 추석 시장도 마찬가지”라며 “개봉 대기 중인 영화들이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 두기 결과를 보고 상영 시기를 결정하게 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가장 큰 문제는 터널의 끝이 안 보인다는 점이다. 안중근 의사 서거 110년을 맞아 올해 개봉하려 했던 ‘영웅’조차 공개 시기를 내년으로 옮길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등이 출연해 화제를 모은 ‘비상선언’은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촬영을 무기 중단해 개봉 시기를 점칠 수 없게 됐다. 흥행 불쏘시개 노릇을 해야 할 대작들이 시장 상황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언제든 개봉을 연기할 수 있다는 점이 극장가를 더 불안하게 하고 있다.
극장가가 다시 불황의 수렁에 빠져들면서 추가 인력 감축과 운영 극장 축소 등 강력한 구조조정이 뒤따를 전망이다. 영화업계에 따르면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체인 CGV의 올해 적자 만도 2,5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길영민 JK필름 대표는 “극장 구조조정은 불가피하고 연간 관객 2억명 시대는 더 이상 없다”며 “제작사들은 극장에서 손익분기점을 맞추고, 부가판권에서 수익을 내는 쪽으로 전략을 짜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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