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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의 시무

입력
2020.09.01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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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비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시무책 패러디’가 화제다. 문 대통령 사진은 지난달 31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시작 전 착석을 권하는 모습. ‘깡’ 뮤직비디오 화면 캡처ㆍ뉴시스

비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시무책 패러디’가 화제다. 문 대통령 사진은 지난달 31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시작 전 착석을 권하는 모습. ‘깡’ 뮤직비디오 화면 캡처ㆍ뉴시스

한국사 교과서 속 시무(時務)가 예능과 시사를 넘나들어 인기다. ‘그 시대에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일’이라는 뜻으로 신하가 임금에게 상서하는 충언을 일컫는다. 우리가 가장 잘 아는 건 고려 때 문신 최승로가 성종에게 올린 ‘시무 28조’다. ‘교만하지 말고 아랫사람을 공손히 대하라’는 새길 만한 대목도 있으나 폐단도 있었다. 선대인 광종의 개혁을 후퇴시키고 문벌귀족의 특권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 예능의 시무책 패러디는 비(RAIN)의 역주행곡 ‘깡’에서 비롯됐다. 2017년 발표됐지만 팬들은 물론, 비를 키운 박진영조차 “이건 아니다”라며 외면했던 곡이다. 허세를 스웨그로 포장한 1인칭 시점의 가사, 과하게 파격적인 댄스와 의상은 조롱의 대상이 됐다. ‘10년 차 진성팬’이라고 밝힌 네티즌이 ‘시무 20조’를 쓰기에 이르렀다. ‘꾸러기 표정 금지’ ‘자아도취 금지’ 같은 직언들이다. 놀라운 건 비의 태도. 이를 방송에서 읊으며 답한 거다. ‘1일 N깡’ 신드롬을 만들어 낸 비의 진짜 깡이었다.

□ 정치에선 필명 ‘진인 조은산’의 ‘시무 7조’가 화제다.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부동산정책을 포함한 국정 전 분야의 기조 변화를 촉구한 글이다. 시인 림태주가 하교 형식의 반박문을 쓰자 조은산이 재반박하기도 했다. 시무 7조 역시 비정규직 철폐나 경제민주화를 ‘세상 물정 모르는 것들의 뜬구름 잡는 소리’로 몰아붙인 대목 등은 논쟁의 소지가 많다. 그런데도 41만여명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동의를 눌렀다.

□ 문 대통령도 읽었을까. 글의 옳고 그름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이를 사이다처럼 여기는 여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가 궁금해서다. 임기 후반 대통령에겐 내편보단 반대편에 선 민심과의 소통이 중요하다. 더욱이 그토록 강조하는 ‘촛불민심’의 절반이 이미 돌아섰다. 비는 ‘진성팬’의 상소를 소통의 도구로 활용해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정치인의 도량은 직언을 대하는 태도에서 가늠된다. 이제껏 청와대에서 그 같은 상소는 없었다고? ‘예스’만 하는 참모의 가치는 과연 무엇인지 먼저 돌아볼 때다.

김지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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