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정부 시위 지지하는 유럽사회
러시아 개입 빌미 안줄 해법 고심
'조지아ㆍ우크라이나' 선례 영향

벨라루스에서 대선 결과에 불복한 반정부 시위가 4주차로 접어든 지난달 31일 민스크 독립광장에서 시민들이 항의하는 의미로 서로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돌고 있다. 민스크=타스 연합뉴스
벨라루스의 반(反)정부 시위가 한달 가까이 계속되면서 유럽사회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러시아에 치우친 독재자를 몰아내고 벨라루스에 민주정부를 세울 절호의 기회지만, 자칫 잘못하다간 오히려 벨라루스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만 강화하는 빌미를 줄 수 있어서다. 서방과 러시아의 대립 속에 회색지대로 남은 조지아나 우크라이나의 선례도 유럽국가들이 묘수 찾기에 골몰하는 이유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에 따르면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등 ‘발틱 3국’은 이날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고위 인사 29명에 대해 입국 금지를 결정했다. 이들에게는 이번 시위를 촉발한 부정선거 의혹에 연루된 혐의가 적용됐다. DW는 “서방국가들이 겁을 내듯 벨라루스 문제에 접근하자 (발틱 3국이) 조급하게 결정했다”고 분석했다. 유럽연합(EU)이나 회원국 차원에서 루카셴코를 비난하고 시위대를 지지하는 성명을 내긴 했으나 딱 거기까지였다는 얘기다.
유럽은 벨라루스가 제2의 조지아, 우크라이나가 될까봐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구 소련의 일원이었던 두 나라는 섣부른 서방의 개입이 러시아를 자극해 전쟁으로 이어졌던 뼈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2003년 부패 정권을 몰아낸 ‘장미혁명’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가입을 코 앞에 뒀던 조지아의 경우 러시아의 간섭으로 전쟁이 터졌고, 지금까지도 친러시아냐 친서방이냐를 놓고 정정 불안이 지속되고 있다. 당시 나토의 성급한 개입이 러시아를 움직인 결정적 원인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이번에도 러시아는 민심의 타도 대상인 루카셴코 정권을 굳게 지지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루카셴코의 생일인 지난달 30일 생일 축하 메시지를 전화로 직접 전하기도 했다. 이날 역대 최대 규모인 10만명에 가까운 반정부 시위대가 운집했음에도 푸틴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루카셴코도 앞서 푸틴에 러시아 보안기관 요원들로 구성된 예비대 준비를 요청해 필요 시 군사적 개입을 허용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현재로선 해법을 벨라루스 내부에서 찾기도 요원한 상황이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시위대에 줄곧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달 30일에도 탱크 8대를 투입해 시위 참가자 125명을 체포했다. 반정부 세력 역시 결사 항전을 공언하고 있다. 루카셴코의 정적인 야당 지도자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가 4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행할 연설은 반독재 민심을 하나로 모으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유럽은 “지난 20년간 러시아와 서방의 지배권 싸움으로 조지아, 우크라이나 등 많은 동유럽 국민들이 불안과 빈곤에 빠졌다”며 “벨라루스 시위를 지지하면서도 러시아의 입김을 배제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도 “유럽은 러시아가 시위대 진압에 나설 시나리오까지 고려해야 한다”며 세밀한 대응책 수립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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