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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대규모 집회에 참가한 보수단체. 뉴시스
감염병 방역은 증거기반(evidence-based) 정책 모델이 가정하는 이상적 조건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코로나19와 같은 신종 감염병의 경우, 바이러스의 특성 분석, 진단과 치료, 역학조사, 환자ㆍ접촉자 추적과 관리, 확산 예측, 백신 개발, 예방과 감염 차단 조치 등 방역의 전 단계에서 과학적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과학적 이해가 확보되기를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통제된 실험조건 밖 바이러스의 양상에 관한 불확실성을 제거하기란 애초 쉬운 일이 아니기도 하다. 방역에 핵심적인 사람의 행동은 더 말할 나위 없다. 반면 이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의사결정은 개별 시민과 각 사회 집단의 이해관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여건에서 사실/가치, 과학적/사회ㆍ정치적 판단을 엄격히 분리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과학-사회 관계와 위험평가ㆍ관리를 연구해온 제롬 라베츠의 말을 빌자면 방역은 ‘탈정상(post-normal)과학’의 영역이다. 일반적으로 과학적 판단은 관련 전문가 공동체가 평가해야 하지만, 과학적/사회ㆍ정치적 판단이 얽혀 있는 탈정상과학의 조건에서는 동일한 접근이 적용되기 어렵다. 과학적 사안에 대해서도 그에 내포된 사회ㆍ정치적 함의를 온전히 검토하기 위해서는 과학ㆍ의학 전문가뿐 아니라 해당 의사결정에 영향 받는 시민과 이해집단을 포함하는 확장된 동료 공동체(extended peer communities)가 요구된다.
탈정상과학의 조건이 과학ㆍ의학 전문성의 역할과 의사결정을 저해하는 것만은 아니다. 지구환경문제 해결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몬트리올 의정서(1987)를 생각해보자. 당시 다수의 과학자들은 염화불화탄소(CFCs) 등의 생산ㆍ소비가 오존층을 파괴할 잠재적 위험이 크다고 판단했지만, 인과관계를 입증하기에는 과학적 불확실성이 컸다. 그러나 의정서 당사국 대표들은 불확실성의 해소를 기다리기보다 과학적 정보를 참고하되 위험 예방이라는 사회ㆍ정치적 판단을 내려 CFCs 등의 감축과 규제를 결정한다. 이 결정은 정부 대표, 산업체와 과학자들만이 아니라 환경운동 등 NGO가 참여한 협상 과정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최근의 코로나19 2차 유행은 사랑제일교회와 광화문 집회가 감염 전파의 고리로 작용하고 있지만, 교회 소모임 제한 해제 등 정부의 방역 완화 조치가 가져온 결과이기도 하다. 이는 정부가 과학적 판단보다 사회ㆍ경제적 여파에 대한 정치적 고려를 앞세웠기 때문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방역의 속성상 전자와 후자가 분리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문제는 정부의 사회·정치적 고려가 협소하고 편향되었다는데 있다. 보건의료단체들은 지난 2월 이래 사회정의에 입각한 방역을 위해 공공병원과 병상 확대, 보건의료·돌봄인력 확충, 유급병가·상병수당 도입, 노동현장 방역환경 개선, 의료급여 부양의무제 폐지 등을 주장해왔지만, 정부는 이를 외면했다. 그보다는 소위 K-방역의 성과를 디지털·바이오산업 육성의 계기로 삼는데 열중했다. 4월에 출범한 생활방역위원회에는 정작 생활방역을 이행할 노동자·자영업자·소상공인 등이 참여할 수 있는 경로 자체가 부재하다. 시민의 안전과 생활보다 산업이 우선인가? K-방역의 원칙으로 설파해온 개방성·투명성·민주성은 어디에 있는가? 사회정의에 부합되는 민주적 방역의 모색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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